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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 Young Dec 14. 2024

(33) 병원에서 느낀 나눔과 헌신의 가치

병원의 발전을 이끈 기부 천사

 처음으로 혜화동 대학병원 1층 로비에 들어섰을 때, 벽면에 걸린 수십 개의 명패가 눈에 들어왔다. 고급무늬목에 새겨진 명패들은 병원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품 같아 보였다. 무심코 지나치며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그것들이 내게 전하는 메시지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며칠 후, 다시 병원을 방문해 검사와 진료를 받았다. 처음에는 병원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에 마음이 움츠러들었지만, 이내 의료진의 친절한 태도와 세심한 배려에 안도감이 들었다. 접수에서 시작해 진료, 검사까지 이어지는 모든 과정은 체계적이고 효율적이었다. 진료 중에는 의사가 내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며 내 건강 상태를 꼼꼼히 짚어 주었다. 필요한 검사를 받을 때도 의료진은 최선을 다해 편안함을 제공하려 애썼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병원비를 결제하러 갔다. 그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왜 이렇게 저렴합니까? 계산이 잘못된 거 아닙니까?"


 검사비가 수십만 원은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었다. 내심 실수를 지적받을까 두려워했지만, 직원은 차분히 이유를 설명했다. 내가 중증 환자로 인정받아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검사비의 90%를 정부가 부담한다고 했다. 순간, 그동안 내가 성실히 납부했던 세금이 이런 형태로 나를 돕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이 밀려왔다. 세금은 의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나를 포함한 모두를 위한 보살핌의 기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 경험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반면에 미국에 오래 거주 중인 내 지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몸이 많이 아프면 고국에 와서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미국에서 치료받으려면 중병에 걸릴 경우 집을 팔아야 할 정도로 의료비가 비싸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질 높은 서비스와 저렴한 비용을 극찬하며, 고국으로 돌아올 때마다 큰 안도감을 느낀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보험이 없으면 간단한 응급 치료조차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하며, 보험이 있다 해도 모든 비용을 보장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내 지인은 미국에서 의사가 권하는 치료를 거절해야 했던 경험도 있다고 했다. 비싼 의료비 부담이 환자의 생명보다 우선시 되는 현실이 충격적이었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은 시민 누구나 기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우수하다.

병원 발전 기부자 명패

 병원을 나서며 로비에서 처음 스쳐 지나갔던 명패들이 문득 떠올랐다. 호기심에 발걸음을 돌려 명패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병원의 발전을 위해 수억, 수십억 원을 기부한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명패 속 이름들 뒤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헌신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이름을 바라보는 순간, 오늘 내가 받았던 모든 혜택이 단순히 세금과 정부 정책 덕분만이 아니라, 이들의 나눔과 헌신의 결과라는 사실에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든 이들의 마음이 오늘날의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존경심이 솟아올랐다.


 이분들 덕분에 나는 첨단 장비와 시설에서 편리하게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깨끗하고 현대적인 병원의 환경, 환자를 위해 애쓰는 의료진, 그리고 재정적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가 모두 이들의 헌신과 기부로 이루어졌음을 깨달았다. 우리나라에는 나눔과 배려라는 따뜻한 정신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게 다가왔다.


 이날의 경험은 나를 새로운 결심으로 이끌었다. 내가 언젠가 더 넉넉한 사람이 된다면, 나도 이런 나눔에 동참하고 싶다는 다짐이었다. 내가 받았던 따뜻한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줄 수 있다면, 나 역시 명패 속 이름처럼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로비에서 본 명패들은 단순한 이름들이 아니라, 이 사회를 밝히는 등불과도 같았다.


 우리 대한민국은 정말 살기 좋은 나라다. 이곳에는 서로를 돕고자 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가득하고, 그 덕분에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 병원에서의 경험을 통해 나는 이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몸소 느꼈다. 앞으로도 이러한 온기와 나눔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나 또한 그 일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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