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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Mar 26. 2024

책과 글쓰기로 얼룩진 '딴짓'의 역사

나는 학창 시절 내내 다들 공부에 열중할 때 경건한 마음으로 연애소설을 펼쳤다. 홀로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언젠가 찾아올 애틋한 사랑을 그렸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국어 선생님은 "복도에 나가 손들고 있어"라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된 마당에 '마저 읽어도 될까요'라고 묻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대학시절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로봇 팔을 만지작거리며 복잡한 알고리즘을 구성할 때 나는 시집이나 시사주간지를 꺼내 읽었다. 그렇데 빠져 읽다 마음이 동하면 연필로 무언갈 끄적였다. 


담당 교수는 "로봇 경시대회서 입상한 놈이(팀 구성원이 좋아서 받은 건데...) 대기업을 목표로 열심히 해도 모자랄 판에 딴짓이냐"며 한숨지었다. 이에 "전 글로 밥벌이할 건데요"라고 응수했다. 그는 5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너 같은 녀석은 처음 본다며 웃었다. 


이어 영양가 없는 주변 지인들은 '기자는 아무나 하냐. 네가 무슨 글이냐'며 투털 됐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니체의 말을 빌렸다. 


"시작하기에, 시작되거든"


딴짓의 출발은 언제나 '책과' '글쓰기'였다. 다독가는 아니었지만 마음에 닿는 책을 반복해 읽었다. 그렇게 빠져 읽다 보면 몸이 저릿해서 글을 써야만 했다. 


몇 해전 3월의 어느 날. 아들과 함께 벚꽃을 맞았다. 


시간이 흘러 실제로 글밥을 먹게 된 나는 가끔 지난날 '딴짓'의 역사를 떠올렸다. 특히 아침부터 저녁까지 현장에서 이슈를 쫓느라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이 흘러간 날엔 퇴근길에 그런 생각이 커졌다. 주변을 훑어볼 겨를도 없이 힘껏 뛰다가 잠깐 멈출 때 찾아오는 그 헛헛한 마음이랄까. 


뭐 하나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던 시기. 새우깡에 소주 한잔 나눠먹어도 행복했던 시절. 


이런 가운데 지난달 29일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큰 결심 끝에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사측은 여러 논의 끝에 이를 수락했다. 덕분에 짧고도 긴 6개월 동안 휴가를 얻게 됐다. 


동시에 '딴짓'에 전념하고 있다. 읽다만 책을 다시 펼쳤다. 마음이 동하면 백 프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무엇이라도 써서 글을 남기고 있다. 


다시 시작된 '딴짓'의 역사. 이 과정이 다시 뛰는 동력이 되리라 믿는다. 


모든 일의 시작은 위험한 법이지만, 무슨 일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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