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 우울.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다.
이 땅에 발붙이고 숨쉬고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만 하는데 좋은 직장은 소수에 불과하고 직원의 입장에서 직장 생활의 질이 낮은 직장은 수두룩하다. 사업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겹게 사회 생활을 하고있고, 만만치 않은 환경을 견뎌야만 한다.
월급이 보상으로 느껴지면 다행이겠지만, 기본적으로 백그라운드가 아예 없는 사람들은 보상보다는 목숨값 그 자체이다. 살려고 일하고 일하지 않으면 살지 못해서 꾸역 꾸역 일한다.
어떤 사람은 심각한 병이 있어도 감추어두고선 사회에 나선다. 뭘 어떻게하든 돈을 벌지 못하면 약값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의 생활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산다는 것은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다.
혼자이든 혼자가 아니든 모두 살아있는 한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 현실을 보면 답답하기 때문일까.
세상에는 영웅물이 넘쳐나고 신데렐라 스토리가 넘쳐나며, 이세계물이 각광받고 이능력이나 사람의 감각이나 능력이 불가능할 정도로 발휘되는 이야기나 점술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것과는 반대로, 현실이 드라마나 영화를 뛰어넘을 정도로 무서운 사건들이 많아지기도 했는데.
이것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아서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이 세상이 그러한 것일까 그것을 알 수는 없어도 현재 미디어를 현실이 뛰어넘는 무서운 세상이란 것은 사실이다.
이런 현실을 살아가면 너무 불안하고 우울하고 슬픈일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슬픔과 우울은 당연하고 이상하지 않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데도 항상 기쁘기만 하다면.
태어날 때부터 걱정이나 불안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일텐데. 돈이 많은 사람들도 나름대로 불안과 걱정을 겪으니.
슬프고 우울한 세상인 것은 틀리지 않다.
다를 수 있다면, 세상이나 삶을 보는 시각과 가치관 말고는 바꿀 수 있는 것이 크게 없다.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상황을 바꿀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벌어지고 있는 일이나 마주한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단지, 어떻게 받아들일까만을 바꿀 수 있다.
그러니 우울한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우울한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생활의 수준과 금전적 수준, 주변인의 형태에 따라서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받아들이는 자세가 다르기 때문에 우울하지 않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상황과 환경을 당하는 입장이지 바꿀 수 있는 입장이 아니고 그런 상황이란 것은 생활의 수준이나 금전적 수준이나 주변인의 형태가 좋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태도 말고는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매일 그런 무력감과 싸워야만하는 상황이겠지만.
태도는 바꿀 수가 있다.
한 가지 바꿀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 같은 것은 위로가 되지않고 언젠가 좋은 날이 있을 거라는 말도 위로가 되지않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냥 상황이 부정적인데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는 말에 지치고 화가 날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보는 태도를 바꾸어보자.
이건 그냥 영화일 뿐이야.
이건 그냥 드라마인거야.
주인공인 내가 힘든 순간을 맞는 그런 장면을 촬영 중이야.
이런 생각이 실제로 많이 도움이 되었는데.
많은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리라.
우리는 매우 길고 긴 롱폼을 촬영 중인 것이다.
배우는 시나리오대로 영화와 드라마 안을 살아간다.
시나리오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울하다면 우울한 장면이고, 힘들다면 힘든 장면일 뿐이다.
우리 현실의 우울에서 우울한 장면을 찍을 뿐이다.
쪽 대본을 받다보니, 다음 장면을 모르는 것 뿐이다.
그러니, 우울해도 괜찮다.
그리고 다음 장면을 열심히 촬영하면 되는 것이다.
그 다음 장면까지도 슬플지 모르지만.
다른 장면이 올지 모른다는 희망은 내 것이 아닌 것같고 꿈꿀 수도 없고 이 극을 쓴 어떠한 존재는 자신을 행복하게 할 생각이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그래, 극이다.
이건 극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다.
극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다 대본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현실의 우울은 당연하다.
그러니 지금은 마음껏 우울하고.
다음 씬에는 제안을 해보자.
우울한 장면에서 우울하지만 우울하지 않은 사람으로 표현해보겠다고.
나에게 한 번 제안해보자.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걸음을 했고.
제작에 손을 얹었으니 뭔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달라지지 않을지라도.
내 마음은 달라졌으니.
거기부터 시작이다.
그래.
그래서 오늘은 마음껏 우울할테다.
그리고 다음이 있다면, 우울하지만 우울하지 않은 독특한 캐릭터가 되어보겠다고 스스로에게 제안해보겠다.
그것이 참 어렵겠지만.
촬영 중 대본을 수정하기도 하듯이.
그리고 이건 쪽대본이니까.
일어나지 않은 기쁜일을 상상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건 쪽대본이고 수정할 수도 있으니까.
오늘까지만 우울 장면을 가져볼까.
그것까지만이라도 해보자.
오늘까지만.
내일도 우울장면 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것은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일 뿐이다.
그렇게 현실적인 우울과 거리를 둬 보자.
그것도 어려운 일인 것을 안다.
내가 그러하듯.
어렵지만.
그렇다면, 이 빌어먹을 극본은 누가 썼길래 이따위냐고 화도 내보고 우울도 해보고 슬퍼서 울어도 보고.
감정을 소모해보자.
그리고 다음 우울 장면에서 내 연기력으로 모든 불합리한 장면을 극복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다짐을 해보자.
그것도 어렵겠지만.
그렇다면.
이것만 생각해보자.
이건 지금 우울 장면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