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감이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면서.
상실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든 작고 크게, 격렬하거나 경미하게 상실을 겪는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상실을 겪지않는 사람은 없고, 그건 살아있는 모든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살아있다면 반드시 상실을 겪게 되는데.
무지하게 많은 상실을 겪은 사람은 보통 우울감을 호소하거나 무기력해지거나 반대로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하여 좀 더 악착같고, 때로는 표독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상실은 나쁜 것처럼 보인다.
특히나 대인관계, 더 가까이 가족 관계에서의 상실은 우리를 더욱 많이 힘들게 한다.
하지만 언젠가 읽거나 본, 글과 영상매체에서는 상실을 통해서 배울 수 있고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틀린말은 아니다.
상실을 겪은 후, 일어난 사람은 더 단단해지기도하고 상실자체를 통하여 인생의 깨달음을 얻기도한다.
나쁘다고만 할수는 없다.
하지만 상실 자체는 작고 크게 좌절감을 선사한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상실을 나열하자면 누구든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나하나 세세히 나열할 수 없는 매우 작은 상실들도 있을 것이다.
그 상실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우리도 만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실들이 날 정말로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아프게하고 다치게하고 일어나지 못하게해서 극복하기까지 힘들었고 그 극복이 나를 성장해서 '이젠 다 덤벼!'하는 강인함보다는 보다 더 조심스럽고 작아졌다고 하고싶다.
이 세상에 아주 많은 자기계발서나 아주 많은 동기부여 강연이나 영상들은 마치 상실이 기회의 때인 것처럼 말하지만.
개인적으로.
돈도 빽도 없는 나에게는 그 상실은 극복해야만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니 꾸역꾸역 극복하려고 갖은 애를 써야만하는 것이었는데.
넘어서도 또 나타나는 그 산 때문에 괴로웠고.
그 산을 오르면서도 있는 것 다 탈탈 털리느라 멘탈을 부여잡기 힘들었고.
때로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척까지 하면서 상실을 버텨야하기도 했기때문에.
그것이 정말 기회인가 싶다.
상실은 내게 한 번도 기회였던 적이 없다.
헐벗게 만들고.
상처를 후비고.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절망을 안고서 꾸역꾸역.
버티는 삶을 살게 했다.
계속 버티는 것만을 배웠다.
견디는 것만을 배웠다.
견디고 버티는 것만으로는 세상살이의 기회가 되지는 않았다.
견디고 버티는 것도 잘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만이 조금 위로가 될 뿐이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상처에 깊이있게 공감이 되어서 그렇게까지 공감하길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면서 공감하는 능력을 습득할 뿐이었다.
공감은 좋은 능력이라지만.
그런 공감들이 일상생활을 윤택하게는 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의 슬픔도 떠 안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상실은 내게 큰 도움을 주진 못했다.
그것들을 견딜 정도로 강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보이는 것이다.
견디는 것은 나를 갉아먹는다.
좀 더 나아지려면 상실이 아니라 채워짐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채워질 것들이 있을 거예요.'하는 말은 인생에서 한 번도 도움이 된 적이 없었다.
온갖 상실을 겪었더니 주위에는 상실에 빠진 사람이나 상실로 폐허가 된 자리들 뿐이었다.
새롭게 채워지려면 상황도 환경도 바뀌어야 했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으니, 상황도 환경도 바꿀 수 없었다.
상실이 내게 남긴 것은 상처와 견디고 버티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견디는 것을 잘한다고 칭찬하는 사회도 아니고.
버티면 미련하다고 말한다.
버티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사람들은 매일 좌절하고 상실하면서 그럼에도 살아가는데.
아무도 견디거나 버티는 사람을 응원하진 않는다.
매체에 나오는 르포를 보고 응원하지 않는다.
나는 저렇게까지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거나 안쓰러워하거나 불쌍해한다.
그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상실을 겪은 사람들 뿐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상실을 겪은 사람들.
그래서 견디고 버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가 대단한 사람들이다.
얻은 것이 없어도 살아가고 채워짐이 없어도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게 누구고 어떻게 보잘것 없어 보이든.
상실을 가지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대단한 힘이 있는 사람들이다.
굳이 상실을 통해 얻은 것이 없어도 된다.
누구나 상실을 겪지만 누구나 배우고 얻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른 개체로 태어났고.
다른 환경에서 살아간다.
누군가 떠드는 성공신화의 주인공처럼 대단히 뭔갈 얻을 필요도 없다.
그러지 못해도 실패자가 아니다.
이건 자기 위로가 맞지만.
자기 스스로 위로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
일어날 때 누군가 손을 잡아주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도 없는 사람도 있다.
절망밖에 남지 않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 일어나는 사람들이다.
자기 위로는 당연하다.
상실을 상실로 남기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성장하지 못한 것은 뒤쳐진 것이 아니다.
견디는 것 그 자체가 성장이다.
모두에게 같은 상황이 주어지지 않듯이.
상실도 모두에게 같지 않다.
우리는 모두 상실을 슬퍼하고 견디며 산다.
뭔가를 얻거나 배우거나 이기지 못하여도.
견딘다는 것 하나가 자신을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그러니.
오늘은.
상실한 모든 사람들이 마음껏 슬퍼하고, 아파하고, 좌절하고.
그래 잘 했어.
일어나지 못했어도 괜찮아.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아.
견디고 있는 것은 멋진 일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자신을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 했고.
잘 한다.
진심으로 잘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