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로컬리] 크리에이터 인터뷰 vol.18 mttb
무릇 좋은 것은 물을 닮았다. 선언적 단언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 문장은, 발가락을 꼼지락대며 키보드를 두들기는 대한민국의 에디터가 쓴 게 아니다. 기원전 5세기 사상가 노자(老子), 늙은 선생(old master)의 격언 중 하나다. ‘좋음(good)’에 대해 논할 때, 그는 언제나 물을 이야기했다.
물은 제 앞을 막는 바위를 깨부수지 않는다. 돌덩이에 생채기를 내는 대신, 자신의 모습을 바꿔 장애물을 포근히 감싸 안아준다. 언제 어떤 변수가 발생해도 문제없다. 무엇이 나타나도, 어떤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거기에 맞춰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물은 가변성이란 성분을 머금고 있다.
김도한과 조채윤, 조채윤과 김도한도 물을 닮아있다. 그들은 '디자이너'라는 자아(ego)에 갇힌 채, 자신들의 의견만을 내세우지 않는다. 눈앞에 앉은 의뢰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삶의 모양을 바라보고, 거기에 맞춰 디자인 문법을 개정한다. 공간이란 그곳을 채워 갈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두 사람은 주연이 아닌 무대 배경의 위치로 기꺼이 물러난다. 클라이언트에 맞춰 설계의 형태를 바꿀 줄 아는 사람들. 엠티티비(mttb)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뵙겠습니다. 두 분 소개를 좀 부탁드릴게요.
조채윤 (이하 조): 안녕하세요. 저는 엠티티비(mttb)의 조채윤 소장이고요.
김도한 (이하 김): 김도한 소장입니다. 반갑습니다.
개소한 지 얼마나 되셨나요?
김: 2년 조금 넘었어요.
함께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조: 예전 회사에서 같이 일했어요. 당시 도한 소장님은 소장 직급이었고, 저는 설계팀 팀장이었어요. 학부생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로 시작해서 정직원에 이를 정도로, 꽤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는데요. 한 7년 차쯤 됐을 때 고민이 생겼어요. 여기서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패션 리테일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지 말이죠. 고민을 한창 하고 있었는데.
김: 제가 꼬셨어요. (웃음)
독립을 제안하신 이유가 있었을까요?
김: 이 친구랑 되게 친했거든요. 근데 어느 날 이직에 대한 고민한다는 얘길 털어놓더라고요. 안타까웠어요. 좋은 프로젝트를 많이 만나고 멋진 결과를 잘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굳이 왜 다른 쪽으로 방향을 돌리려는지 걱정도 됐고요. 근데 한 편으로 반갑기도 했어요. 저도 그 무렵 독립에 대한 고민을 어느 정도하고 있었거든요. 디자이너로서 색을 좀 더 살리고 싶어서요.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조금 두렵긴 했는데 채윤 소장하고는 워낙 호흡도 잘 맞고 하니, 조심스럽게 한번 제안을 했죠. 사실 같이 일하자고 제안하기 전에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결국 응해줘서 참 기뻤죠.
조: 저야말로 엄청 고마웠죠.
다년간의 경력을 쌓으셨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 선다는 건 부담이 큰 문제인 거죠?
김: 클라이언트를 만나 디자인을 만들고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은 크게 두렵지 않아요. 문제는 경영하고 운영이죠. 아무래도 저희 둘 다 성격이 좀 소극적인 편이라, 마케팅이나 홍보에 대한 역량은 부족했거든요. 불확실성도 발목을 잡았어요. 퇴사를 결정할 때 약속된 프로젝트가 없었거든요.
조: 디자인에 대한 비전은 있었지만 회사 운영에 대해서는 사실 준비된 게 없었어요. 저희 둘 모두 말하는 성격이라기보다는 듣는 쪽의 사람들이라서 그게 겁나기도 했어요.
달력을 좀 더 앞으로 넘겨볼게요. 공간 디자인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 이런 말씀드리기 좀 부끄럽긴 한데. 초등학교 때부터 꿈꿨거든요. (웃음) 어머니가 제 초등학교 5학년 시절 통지서를 사진으로 촬영해 보관 중이신데요. 장래희망란에 제가 ‘디자이너’라고 적어놨더라고요.
정말 어릴 적부터 꿈을 가지고 계셨네요.
김: 어릴 적, 방에 있는 조그마한 가구나 소품들을 이리저리 옮기는 걸 좋아했어요. 방에 있는 컴퓨터나 책상 위치들을 여기저기 바꾸면서 놀았거든요. 근데 정작 첫 대학은 인터넷 공학을 전공하게 됐어요.
인터넷 공학이요?
김: 제가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요. (웃음) 오늘날 개발 직군이 주목받는 것처럼, 예전에는 인터넷이 막 뜨기 시작한 시절이 있었어요. 그 분위기에 휩쓸려 첫 전공을 택하게 됐어요. 전역 후, 새 학교에 재입학했는데, 그때 택한 게 실내디자인이었죠. 처음에는 학업에 제대로 집중을 못해 성적 관리도 안 됐고 학사경고도 많이 받았어요.
학사경고까지 받던 학생이 지금은 어엿한 소장님이 됐어요. 전환점이라고 할만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김: 어느 날 ‘자유’라는 주제로 진행한 스튜디오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당시 제가 프로젝트를 되게 재밌게 했거든요. 과정이 즐거워서였을까요? 결과물에 대해 교수님한테 극찬도 들었어요. 그 후로 뭔가 재미가 붙더라고요. 흥미가 생기니 심도 깊게 가지게 됐고. 그렇게 해서 지금에 이르지 않았나 싶네요. (웃음)
채윤 소장님은요?
조: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녔어요. 어릴 때부터 그림만 하루종일 그렸거든요. 그래서 저는 언젠가 화가가 될 줄 알았어요. (웃음) 고등학교 때는 수채화나 소묘 작업을 좋아했는데요. 언제부턴가 대학을 가려면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간 해오던 거랑은 조금 다른 결의 그림을 그려야 된다고 해서 그렸고, 그걸로 갈 수 있는 게 실내디자인 쪽이었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죠.
그림과 디자인은 달랐을 텐데. 어떠셨어요?
조: 꽤 재밌었어요. 제가 그린 공간을 모형으로 만들고, 마지막에는 직접 공간 안에 들어가는 게 너무 흥미로웠거든요. 그러다 3학년 때 교수님을 찾아가서 ‘인턴 할 수 있는 곳 없나요?’ 하고 여쭤봤어요. 그렇게 소개받은 회사가 제 첫 직장이 됐고요. (웃음)
어떻게요?
조: 처음에는 인턴 생활로 시작했어요. 두 달 정도 다녔는데 이것도 너무 재밌는 거예요. (웃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디테일하다고 해야 하나. 야근이 잦은 편인데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겨울방학에 다시 한번 인턴 생활을 했고요. 겨울 인턴 끝나면 돌아오는 여름에 또 인턴 하겠다고 사무실로 향했어요. (웃음) 4학년 졸업 무렵이 됐을 때, 회사에 정직원으로 합류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죠.
인턴에서 정직원으로. 매끄럽네요.
조: 평소 제가 뭔가 엄청 적극적으로 나서서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데요. 당시에는 뭔가 그런 걸 해보고 싶다고 해야 되나,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거 같아요.
그런데 두 분은 이런 얘기 알고 계셨나요?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배경 같은 것들.
김: 아니요. 이 친구가 그렇게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은 처음 들었어요.
조: 어릴 적부터 꿈이었다는 건 오늘 알게 됐어요. (웃음)
이제 엠티티비(mttb)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이름의 의미가 궁금해요.
김: 엠티티비는 ‘매터 베터(matter better)'의 약자예요. ‘물질(matter)’을 뜻하는 단어와, ‘더 나은(better)’이라는 비교급을 줄여 쓴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질’의 의미를 ‘물체의 본바탕’ 정도로만 인식하며 살곤 하는데요. 철학에서는 물질을 ‘감각의 원천’으로 칭하기도 해요. 엠티티비는 공간을 만드는 물질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더 나은 삶을 위한 공간을 재생하고 확장을 도모한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더 나은 삶을 위해 물질의 본질을 탐구한다’, 꽤 심오하네요.
김: 제안서를 만들기 전이나, 어떤 공간에 대해 설명하기 전 항상 먼저 하는 이야기가 본질이에요. 공간은 결국 개인 클라이언트든 기업이든, 그들의 본질이 담기는 그릇이거든요. 그걸 잘 담아야 그들의 가치도 상승하고 고객들도 그 속에서 여러가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죠. 그런데 요즘은 공간이 시각적인 차원으로 소비되는 느낌이 들곤 해요. 이런 시대일수록 본질에 대해 깊게 탐구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엠티티비의 방법론이 있을까요?
조: 많이 들으려고 해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클라이언트의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거든요. 그 속에 본질이 담겨있고요. 이것들을 파악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풀어가고 해석해요.
말씀해 주신 방법이 잘 반영된 프로젝트 하나 소개해 주신다면요?
김: 지난 2월, 올 댓 재즈(All that JAZZ)라는 곳을 작업했어요. 아시는 분들은 아실 텐데요. 1976년에 문을 연 대한민국 최초 재즈 클럽이에요. 약 47년 간, 다양한 재즈 아티스트들에게 무대를 제공하고 꿈을 이루게 해 준 재즈의 성지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다 보니 재즈라는 장르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조: 음악이 선사하는 특별한 순간과 그때 밀려오는 감정에 대한 것들을 수차례 이야기 했어요. 단, 과거에 머무르는 재즈바는 지양하는데 의견을 모으게 됐죠.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 올 댓 재즈를 엠티티비만의 관점으로 해석하게 된 출발점이 이 부분이기도 하고요.
재해석의 출발점, 어떤 것에 주목하셨나요?
김: 색이에요.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올댓 재즈의 이전 모습들을 쭉 살펴왔는데요. 거기서 올댓 재즈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붉은색이라는 요소(element)를 추출했어요. 여기에 재즈에 대한 본질을 섞어 조화(harmony)를 모색했죠.
조: 올 댓 재즈는 붉은색 커튼이 마치 휘장을 감은 듯 공간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데요. 저희는 그 한가운데에 흑색 공간을 배치했어요. 이는 올댓 재즈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적인 매개체로 붉은색을 활용하기 위해 고안한 표현 방식이었어요.
김: 공간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좋아요.
조: 맨 처음 건물 2층으로 올라오면 클래식한 출입문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붉은 조명과 곡면으로 된 유리를 거쳐서 진입하게 돼요. 빛과 유리로 구성된 전이 공간. 이곳은 음악이 흐르는 내부와 대비되는 물성으로 구성해 리드미컬한 진입을 유도했어요. 공연장이나 클럽에 입장할 때, 살짝 울리는 베이스 소리는 우리에게 설렘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공간으로 향하는 일종의 신호처럼 닿기도 하잖아요. 전이공간은 그런 것들을 좀 더 부각하는데 집중했어요.
김: 음악과 공간은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게 만들고, 그때의 감정과 추억들을 다시금 떠오르게 하는 것 같아요. 붉게 물든 재즈의 선율로 가득했던 과거의 올 댓 재즈를 회상하며 만든 게 바로 붉은 커튼이에요. 사실 올 댓 재즈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영업이 중단됐다가 다양한 회사 및 뮤지션들의 도움으로 운영을 재개할 수 있게 됐어요.
그렇군요.
김: 엠티티비는 커튼을 올댓 재즈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기 위한 장치이자 이미지로 해석했어요. 외부로부터 빛이나 시선을 보호하는 요소가 커튼이잖아요. 역사와 전통을 보호하는 의미를 담아, 붉은색 커튼으로 공간을 감싸 안게 한 거죠. 커튼의 볼륨이 가지는 밀도는 어두운 공간과 대비해서 공간이 좀 더 풍부해지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는 데에도 기여해요.
조: 기능적인 공간들 또한 붉은색의 레이어로 연출하고 배치했어요. 무대 음향을 조율하는 DJ 부스와 바, 그리고 인포데스크가 그런 형태죠. 평면의 경우, 개방된 공간에서 무대와 홀을 한눈에 관망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여러 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부스형 좌석은 무대 전면에 배치해, 간결하고 단순하게 연출해 시선이 무대로 집중되게 했고요.
커튼 외에도 올 댓 재즈의 본질 혹은 역사성을 담은 또 다른 요소가 있다면요?
김: 천장에 걸려 있는 액자요. 40년 된 액자를 그대로 배치했거든요. 조명은 올 댓 재즈 진낙원 회장님이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것을 엠티티비의 결로 보완했어요. 와인잔 행어(hanger) 같은 경우, 아크릴 코팅돼있던 기존 제품에 붉은색 프레임을 넣어 현대적으로 수정했어요.
의미 있는 지점이네요.
조: 예전 올댓 재즈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이런 요소들을 보면서 그때의 향수를 느끼시는 거 같더라고요. 실제로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웃음) 그럴 때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김: 올 댓 재즈의 정체성과 본질에 대해서 접근을 하고, 이곳을 추억하는 분들에게 의미를 선사하는 방식. 엠티티비는 이런 형태로 프로젝트에 임하고 있어요.
재즈바라는 특성상 음향 관련 요소도 많이 공부하셨을 것 같아요.
김: 클라이언트인 진낙원 회장님이 음향사이자 동시에, 재즈바를 47년 동안 운영한 분이다 보니 워낙 노하우가 많으셨어요. 제 식대로 표현하면 ‘음에 미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실제로 정말 많은 자문을 얻을 수 있었어요. 스피커 음향부터 마감재, 심지어 저희가 작업하는 공간 레이아웃까지 음악과 다 연결시켜서 접근할 수 있도록 말이죠.
조: 목적이 음악을 듣는 공간이다 보니까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필요한 현장이었어요. 특히 소재는 전면 수정 과정을 여러 번 거칠 수밖에 없었죠. 대표님이 소재가 음에 끼치는 영향들을 하나하나 알려 주셨거든요. 사실 공간에 대한 해결책은 공간 디자이너가 제공해야 하는데, 오히려 저희가 음악과 자재의 관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됐죠. (웃음)
엠티티비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김: ‘같은 톤은 유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일관되지 않은 느낌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김: 비슷해요. 분명 각각의 스튜디오가 가진 어떤 무드나 톤이 명확할 때 좋은 점도 있지만, 엠티티비는 그 방향성은 지양하려고 해요.
이유가 있을까요?
김: 일방향적인 디자인 제안은 디자이너의 색을 강조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데요. 저희의 임무이자 숙제는 결국 공간의 실사용자들에게 최적화하는 동시에, 심적으로도 미적으로도 부족하지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브랜드의 본질을 담는데 집중하죠. 그러려면 저희의 색은 최대한 덜어내는 게 맞고요.
조: 클라이언트가 제각각이라는 얘기는, 모든 공간이 다 다른 분위기로 연출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거든요. 같은 톤을 유지하지 않고 싶다는 건, 클라이언트의 색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말과 같아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올 댓 재즈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조: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공간은 결국 뮤지션과 관객에 음악을 매개로 상호작용하는 환경이고요.
김: 음악이죠. 사실 사진으로만 올댓 재즈를 만나는 것보다, 공간에 직접 들어가서 음악이 흐르는 상황을 오감으로 느끼는 건 전혀 다르거든요. 언젠가 프로젝트가 끝나고 진낙원 회장님과 올 댓 재즈에서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요. 제가 그런 말을 했어요. “회장님. 음악이 전부네요. 인테리어는 다 필요 없는 것 같아요."라고요. (웃음)
분명 음악이 큰 몫을 한 게 맞지만, 공간의 감도 또한 분위기에 크게 기여했을 거라 생각해요. 앞서 '엠티티비만의 어떤 고유한 색은 지양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매번 다른 공간을 연출하는 엠티티비만의 방식이 있을까요?
조: 습관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가보는 편이에요. 카페가 될 수도 있고, 특정 지역이 될 수도 있죠. 참 흥미로워요. 지역에 따라 혹은 장소에 따라 사람들의 특징이 정말 다르거든요. 옷차림부터 시작해서 행동 패턴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공간도 달라요. 이러한 관찰을 통해 '사유의 평수'를 넓히고 있어요.
김: 언젠가 채윤 소장한테 물어본 적이 있어요. “너는 내가 영감을 어디서 받는 거 같니” 하고요. 그랬더니 “생각 많이 하잖아요” 이렇게 답변하더라고요. (웃음) 특별한 영감의 원천이란 건 없는 것 같아요. 습관적으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주로 무엇에 대해 생각하시나요?
김: 어떤 공간을 볼 때 ‘왜 이럴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의문점 하나가 생기면 그걸 쭉 이어가는 편이고요. 물음표 하나를 시작으로 계속 물음표를 던지는 일. 그 시간이 길어질 때, 저만의 해석이 나오더라고요. 실제로 그런 사유를 통해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디자인의 방향을 찾은 경우도 있었고요. 그리고 하나 더 있는데요. 주말에는 최대한 스마트폰을 안 보려고 해요.
스마트폰을요? 그게 가능한가요?
김: 주말에 연락하는 걸 싫어하는 편이에요. (웃음) 쉬는 시간조차 머릿속에 일이 가득하면 스트레스가 너무 커지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안 보려고 하죠. 퇴근 후에도 마찬가지고요.
조: 그래서 퇴근 이후로는 연락이 거의 안 돼요. (웃음)
퇴근 후나 주말에는 주로 무얼 하시나요?
김: 산책이나 트래킹을 많이 해요. 자연을 만나는 시간을 갖는 편이죠. 사찰 같은 데 가서 사색이나 명상할 때도 있고요. 좀 괜찮은 공간이 나왔다 싶으면 머리 식힐 겸 한번 들러보기도 해요.
조: 저랑은 정반대예요. (웃음)
김: 정말 달라요. (웃음)
그러게요. 성향이 되게 다른데 같이 일하는 것도 신기해요.
김: 저는 뭔가를 깊게 들여다보고 파고드는 걸 좋아해요. 원칙을 중시하는 편이고요. 평면 레이아웃부터 동선이라든지 규모나 사이즈에 대한 어떤 기능적인 이유를 절대적으로 지키려는 성향이 강해요.
이유가 있을까요?
김: 제도라고 하죠. 제가 처음 인테리어를 시작했을 때는 도면을 직접 손으로 그렸는데요. 선 하나 잘못 그으면 지웠다 그리길 반복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선 한번 긋는 일에 엄청 신중해지더라고요. '컨트롤+제트(ctrl+z,)' 기능 같은 게 없던 시절이잖아요. (웃음) 그때의 태도와 습관이 지금도 기저에 깔려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요즘 공간 디자이너 분들처럼 틀에서 벗어난 시도를 하는 힘은 부족해요.
그렇군요.
김: 채윤 소장은 달라요. 제가 갖지 못한 부분들을 가지고 있어요. 트렌디하고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활동적이죠. 원칙에 집중하는 저와 달리, 채연 소장은 유행과 현대적인 미감 같은 것들에 열린 친구거든요. 실제로 배우는 게 정말 많아요. 함께해서 나오는 시너지도 크고요.
최근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다면요?
조: 뉴욕에 있는 노구치 뮤지엄에 갔을 때요. 한 4년 전, 노구치 뮤지엄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요. 한 여름인데도 시원했어요. 얼마 전, 그곳을 다시 방문했는데요. 이번에는 한겨울임에도 따뜻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게 정말 생경했어요.
어떤 곳일지 궁금하네요.
조: 아, 또 있어요. 노구치 뮤지엄의 경우, 정원과 전시 공간의 내외가 분리되지 않았는데요. 그러다보니 자연과 작품이 하나처럼 보이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부로 스며든 햇살과, 살랑거리는 나뭇잎 그림자 사이에 있는 노구치 조각들의 모습, 잊지 못할 거예요.
김: 저는 올 댓 재즈 프로젝트 작업 당시 읽었던 <재즈의 계절>이라는 책이 생각나요. 시대를 주름잡았던 디렉터, 디자이너들이 재즈에서 얻은 영감을 토대로 만든 작업물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는데요. 인상 깊었던 건 책에 있는 한 교수님의 말이었어요. '경영조직은 오케스트라가 아닌 재즈 형태가 바람직하다'는 내용이었죠.
어떤 의미죠?
김: 오케스트라는 수직적 구조에 가까워요. 초점이 지휘자에게 맞춰지고, 연주자는 지휘자가 허락한 범위와 방법으로 연주하니까요. 역할과 책임이 분명히 주어지고, 그에 따른 규칙과 통제를 받는다는 점에서 관료적인 특징도 가졌다고 할 수 있죠. 재즈는 달라요. 역동적 상호작용이 일어나죠. 즉흥 연주를 시작할 때 리더였던 사람이, 연주가 끝나고 또 다른 즉흥 연주 때는 서포터 역할로 옮겨지기도 하거든요. 역동적 상호작용 속에서 나오는 팀워크, 이는 엠티티비가 추구하는 방향성이기도 해요.
수직적 지위 체계와 수평적 지위 체계에 관한 얘기네요.
김: 맞아요.
수평적 조직을 지향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김: 엠티티비를 준비할 때부터 계속 생각했어요. 직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팀장이 됐다가, 서포터 역할도 하는 유연한 구조를 말이죠. 결국 언젠가는 구성원들도 본인만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할 수 있잖아요. 그전까지 일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어떤 친구가 프로젝트 리더를 맡게 되면, 소장들인 저희가 서포트를 하기도 하고, 그 친구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저희들이 가진 경험을 바탕으로 보완점을 찾아나가는 식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프로젝트 전반을 아우르며 얻는 성취감과 다양한 경험, 이게 엠티티비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 공간이 이미지로 소모된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조: 이미지로 소모되는 현상이 그렇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보는 기회가 더 많아지는 거니까요. 다만 이미지 속에 서사가 더 곁들여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어요. 본질은 결국 그 공간에 담긴 것들을 한 겹 벗겨서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김: ‘공간을 이미지로 소비한다’는 현상에 마음이 어딘가 편치 않은 기분을 느끼는 것, 저는 그 속에 감정이 배제된 것처럼 들려서라고 생각해요. 물체나 표면을 이미지로만 전하는 것, 충분히 좋죠. 하지만 저는 공간이 이미지로만 머문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을 보는 것에서 나아가 사용하면서 드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있잖아요. 공간도 마찬가지죠. 어떤 곳은 슬픈 감정을, 어떤 장소는 따뜻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듯 말이죠. 감정이야말로 공간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미적 감각에 집중되는 것이 나쁘진 않지만, 한 발 더 나아가 어떻게 이용자들의 감정을 움직이게 만들지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에디터 김승훈
인터뷰 mttb 김도한, 조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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