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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로컬리 Jan 13. 2023

가구를 고르는 것도 디자인이다

[부로컬리] 크리에이터 인터뷰 vol. 9 루디먼트

건축 모형을 만들던 손으로 가구를 제작하게 된 김이래. 그는 물건의 형태를 구상하고, 직접 제조하는 행위가 곧 디자인이라고 여겼다. 나아가 모두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디자인이 먼 타국이 아닌, 지근거리의 이웃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목공방 루디먼트(rudiment)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모든 계획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의도와는 상반되는 경우도 있다.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하던 공방은 '코로나의 직격타'를 정면으로 맞았다. 작업장으로 사용하던 1층은, 장비 대신 손님들이 착석하는 좌석으로 변모했다. 목공방 루디먼트는 어느새 카페 루디먼트가 됐다. 


그러나 목재는 깎일수록 더욱 선명한 형태를 갖춰나갔다. 어쩔 수 없었던 시간들을 경유하던 목수는 다시금 도구를 손에 쥐기로 마음먹었다. 올 2월, 루디먼트는 달라진다. 새로운 시작(rudiment)을 준비하는 목수이자 자영업자, 김이래를 성수동 루디먼트에서 만났다. 




어쩌다 보니 카페


녹음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인터뷰는 처음이 아닌 걸로 알고 있어요. 

네다섯 번 정도 했던 것 같아요. 루디먼트에 대한 인터뷰도 해봤고, 가구 작업하던 시절 한 두 번 했던 기억이 나네요. 

 
대표님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김이래 입니다.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설계사무소를 다니며 유학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다 목공 가구를 제작하게 됐고요.


건축에서 목공으로 전향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원래 건축으로 끝을 보려고 했어요. 제가 한 번 목표나 방향을 설정하면 뒤도 안 보고 돌진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건축사 자격을 취득해 건축을 하겠다는 인생 설계도를 그렸는데요. 막상 실무를 해보니 저랑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부분이요?

1:1 스케일에 가까운 연습을 못 한다는 것에서 오는 회의감이었어요. 건축은 작업 내용이 현실 세계에 뿌리내릴 때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되거든요. 당장 실물로 구현되기 어렵다는 부분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그때 마침 가구 제작을 해보고 싶었어요. 가구는 공간을 이루는 거대한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고, 1:1 스케일로 연습 해볼 수 있어 매력적이었죠. 


건축을 그만두고 목공을 공부하신 건가요?

네. 일을 그만두고 목공 가구를 공부하고자 목공방을 알아봤어요. 가구를 제작하고 싶은데 정작 제작 과정을 몰랐거든요. 이왕이면 직접 만들면서 배워보고 싶었죠. 처음에는 일주일 과정을 알아봤는데, 결국 1년 교육 과정을 등록하게 됐어요. (웃음) 


목공과 건축의 차이가 있나요

물론이죠. 목공은 제작하는 즉시 쓰임새를 가진 사물이 돼요. 내가 쓸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데에서 오는 쾌감도 어마어마하죠. 결정적으로 건축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작업 할 수 있고요. (웃음)


작가 활동은 목공방 졸업 후부터 시작하신 건가요?

네. 교육 수료 후 가구 공방 지원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당시 수강생 중 한 분이 제게 제안을 하셨어요. 공방을 차릴 건데 같이 하자고 말이죠. 그렇게 경기도 남양주에 공방 스튜디오를 마련하게 됐죠. 그때부터 쉬지 않고 3년 정도 가구만 만들었어요. 시부야에서 콜라보 전시도 하고, 네이버 리빙이랑 목공 전문지 <우드 플래닛>에서 개최한 그룹전에도 초청받았죠. 인터뷰도 그 시절에 했고요. 잘 될 줄 알았어요. 
 

잘 될 줄 아셨다는 말은.
뜻대로 되진 않았어요. 당시에는 제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걸 만들면 사람들이 좋아해 줄 거야,라는 확신이 있었는데요. 자만심이었어요. 작업물에 대한 문의는 많았는데,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거든요. 제 아무리 전시를 하든, 내 작업물이 네이버 메인 페이지에 걸리든, 판매와는 별개의 문제라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렇군요. 

제가 작업하는 북유럽 스타일 가구는 원재료도 비싼 편이에요. 일반 합판으로 제작한 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 책정도 높아질 수밖에 없죠. 가공하는데 시간도 오래 소요되고요. 결국 제 가구를 구매하시는 분들은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갖춘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이 부분에서도 약간의 회의감을 느꼈어요. 


왜요? 구매자가 있다는 건 의미 있는 상황 아닌가요? 

'내가 디자인하고 제작한 물건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욕구가 있었어요. 현실은 그렇지 못했죠. 그 후 생각을 고쳤어요. 좀 더 사람들한테 다가가야겠다, 대단한 작가인 척하지 말자, 누군가 무엇을 만들고 싶어 하면, 그 사물을 만들 수 있는 조력자 같은 공간을 운영하자, 이게 루디먼트의 시작이었어요. 루디먼트(rudiment)는 근본, 초석이란 의미를 지닌 단어인데요. 저 또한 근본을 정립하는 과정 없이 뭔가를 쟁취하려고만 했던 것도 같아요. 스스로의 초석을 다지고 싶었던 의미도 담겨 있어요.

 

디자인과 대중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느낌이네요.
네. 그래서 1층은 목공 작업실로, 2층은 일종의 쇼룸처럼 운영했어요. 아래층에서는 작업을, 위층에는 루디먼트가 만든 레디메이드(ready-made) 제품을 진열하는 형태로요. 초기엔 나름 잘 됐어요. 성수동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셨거든요. 밀려드는 의뢰를 다 하기 어려워 몇 가지 작업만 진행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요. 그때만 해도 좋았죠. 작업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태로 끊임 없었거든요. 커피로는 돈 벌 생각 안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카페잖아요. 
초기 운영 계획은 그랬는데요. 변동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거든요. 2020년 2월.  

 

2020년 2월이면.

코로나가 창궐했죠. 모든 게 중단됐어요. 작업을 의뢰하신 분들은 계획을 철회하셨고요. 카페 하루 매출액도 거의 열 배 가량 하락했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요. 스마트 스토어도 운영해 보고, 홈페이지도 제작하고. 근데 그게 또 문제더라고요. 인원은 정해져 있는데 하는 일은 많아졌으니까요. 결국 카페에 몰입하기로 결정했죠. 공간이 있고 커피머신이 있으니 우선 카페를 안정화시키자, 인근 직장인들이 찾아와주실 거란 마음으로요. 그러자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로 전환 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일차원적인 접근이었어요. (웃음)


카페만으로 운영을 유지하기가 어려우셨을 거 같은데요.
동시에 공방 수업을 늘려도 봤어요. 근데 이것도 쉽지가 않았어요. 저는 주로 소규모 수업을 진행하거든요. 가급적 더 많은 정보들을 상세히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보통 목공방에서 1시간 안에 끝내는 도마 수업도, 저는 한 3시간 정도 잡고 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결국은 수업도 중단하게 됐어요. 소규모 수업을 좁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한다는 게 조금 안일한 것처럼 비칠 수 있겠더라고요.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였다 보니까요. 3밀(밀집, 밀접, 밀폐)을 지양하는 상황이었으니.
틈틈이 건축 현장을 쏘다녔어요. 도면 들고 시공 감리 하러도 가고, 리모델링 프로젝트도 참여하고, 디자인 작업 의뢰도 종종 맡았고요. 이렇게 마련한 자금을 카페 운영에 쏟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별 게 없어요. 공방으로 시작했으나 카페가 됐다, 이게 성수동 루디먼트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짜 맞추는 루디먼트

인터뷰 요청드렸을 당시, 리뉴얼 이야기를 하셨어요. 

네.


루디먼트의 리뉴얼은 어떤 취지를 가지고 하시는 건가요?

앞서 말씀드렸듯, 카페로 시작한 게 아닌데 카페가 됐잖아요. 
 

네. 저도 누군가에게 루디먼트를 소개할 때는 카페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웃음)

아시다시피 성수동 주변에 대단한 카페들이 정말 많아요. 명확한 색을 가진 공간들. 루디먼트는 좀 달라요. 뭐랄까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덧붙이고 덧붙이면서 끌고 온 측면이 크죠. 다른 공간들에 비해 경쟁력이나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한계가 명확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급한 불 끄는 형국이었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근본적인 치료를 해야 될 때가 왔다고 판단했어요. 이왕 시작한 카페도 본격적으로 운영해보고 싶어졌거든요. 루디먼트는 본래 목적이었던 공방으로 돌아가고, 카페를 새롭게 분리해 내는 작업, 이게 리뉴얼의 핵심입니다.



2년 전 겨울, 우연히 루디먼트를 방문했어요. 대표님한테 죄송한 말이지만 저는 루디먼트를 카페로 알았거든요.

아니에요. 제가 의도한 대로 그렇게 느껴져서 너무 감사해요. 그렇게 변화하려고 했던 게 맞으니까요. 


그리고 1년 뒤, 다시 루디먼트를 방문했어요. 얼마 전에. 

인터뷰 요청하신 그날이군요.


네. 근데 웬 설문지가 하나가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진짜 뭘 좋아하는지 알고 싶었거든요. 특히 루디먼트를 자주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뭔가를 더 제공하고 싶은데,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비치한 거였어요.


저도 그런 것들을 궁금해하거든요. 요즘 사람들은 어떤 공간을 좋아하고어떤 공간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을까에 대해 말이죠. 루디먼트의 설문지를 본 순간, ‘이곳(운영자)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했어요. 비록 단골은 아니었지만 가지 문항들은 저도 답변  있는 문항이라 작성했죠.

감사합니다.


설문지 내용 중 인상 깊었던 혹은 의외의 답변 같은  없었나요?

제가 예상했던 내용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다만 의외라면 의외인 건 마지막 문항이었죠.


그게 뭐죠?

“재방문하고 싶은 성수동 카페는 어디인가요?”라는 문항이었어요. 저는 당연히 루디먼트를 안 쓸 거라 생각했는데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루디먼트를 적어주셨더라고요. 그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답변이었어요. 


출제자의 의도에 어긋난 거네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설문지 의도는 정말 일반 대중들이 어딜 가는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를 좋아하는지를 파악하고 싶어 낸 문항이었는데. 루디먼트를 써주셨다는 게 뭐랄까. 약간 귀엽게 느껴졌어요.(웃음) 귀여우면서도 고마운 마음. 최근 10년 간 했던 일 중 의미 있던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저는 루디먼트 말고 다른 장소 썼습니다. 

어딘가요? (웃음)


타임 애프터 타임이요. 예전 매체 취재 때문에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요. 
아, 거기도 좋죠. 그 정도 규모의 공간을 그렇게 쓸 수 있다는 건 뭐랄까. 공간으로 정말 하고 싶은 거 하는 느낌이죠. 

거기 들어가면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외부의 시간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

아, 저도 비슷한 느낌 받았어요. 







본질은 콘텐츠 


루디먼트를 운영하게 된 계기부터 설문지를 기획하신 배경까지. 뭐랄까. 묘하게 하나로 이어지는 지점이 있는 거 같아요. 

최근 3년간 제일 많이 배운 게 그거였던 것 같아요. 사람들의 시선과 내 시선이 너무 다르다.

 
좀 더 풀어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보통 사람은 자기의 경험을 삶에 투영하기 수월하잖아요.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남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거라 믿게 되고. 내가 알면 남도 알 거라고 생각하는. 


아무래도 그렇죠. 만물의 척도가 본인이라 여기기 수월하니까요.
제가 그랬어요. 디자인 감도를 고민할 때, '이 정도면 덜 부담스럽지 않을까', '이 정도면 대중적인 거 아닐까', '와, 저건 너무 과한 거 아냐?'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게 지극히 제 기준이라는 걸 깨달았죠. 대중을 위한 거면 결국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하는데, 그 과정을 소거한 채 제 관점으로 '대중'의 모양을 그린 거였더라고요. 가구를 제작할 때도, 카페를 운영할 때도. 

 

너무 어려운 작업 아닌가요? 보편 다수의 취향을 파악해, 통용될 만한 디자인 언어를 파악한다는 거.

그렇긴 하죠. 아무튼 지금은 좀 달라요. 예전에는 다소 과한 콘셉트의 공간을 보면 '저렇게 하면 누가 못해’라고 생각했어요. 치기 어린 마음이었죠. 파격적이고 휘발성 있는 디자인 하면 나도 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이 강했는데. 그건 그냥 그들만의 작업 방식인 거예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디자인의 영역이고요. 


루디먼트를 운영하던 시간이 뭐랄까. 대표님 스스로를 돌아보는 사유의 정거장 같은 느낌이네요.

지난 3년은 스스로가 가진 단점과 직면하는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대중의 취향이나 기호를 파악하기 위해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성수동을 돌아다녀요. 길거리가 참고 문헌이거든요. 어떤 공간이 새로 생겼는지, 성수동을 찾는 이들의 표정이나 차림새는 어떤지. 그런 풍경들을 보다가 못 보던 카페가 보이면 쓱 한번 들어가 보기도 해요. 내 취향이 아닌 공간이어도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가요. 가서 뭐 때문에 좋아할까에 대해 궁리하죠. 


나름의 답을 찾으셨나요? 
물론이죠. 데이터가 쌓이면 무조건 정리가 돼서 답이 나와요.
 

영업기밀일 수 있어 여쭤보기가 조심스럽지만.
영업 기밀 아니에요. (웃음)

답이 무엇이었나요?

별 거 아닌데 별 거인 것들이에요. 


모순이네요. (웃음)

다들 아시는 얘기겠지만. 위치가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그리고 인테리어. 확실히 대중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인테리어를 한 공간들이 있더라고요.


대중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네. '깔끔한 버전'과 '안 깔끔한 버전'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면과 면, 선과 선으로 깔끔하게 분리한 공간. 여기에 규모가 넓고 모노톤으로 잘 정돈되어 있으면서 적절한 조명이 곁들여진 곳. 여기가 깔끔한 버전이고요. 


네.

유럽 빈티지를 기반으로 한 장소가 '안 깔끔한 버전'이에요. 요소는 많은데 통일된 색으로 중심을 잡는. 당장 생각나는 건 '런던뮤지엄베이글'이랑 '카페 레이어드' 정도가 떠오르네요. 레이어드는 특히 감탄했어요. 그릇과 소품, 디저트가 어우러지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거든요.


요즘에는 이목을 끄는 장소들만 유심히 살펴도 어느 정도의 미감을 확보할 수 있는 시대 같기도 해요. 저는 이걸 '상향 평준화'라고 표현하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공간이 숨을 잃지 않으려면 어떤 게 중요할까요?

가장 중요한 건 콘텐츠죠. 공간의 존재 목적이자 본질. 카페면 음료나 디저트가, 음식점이면 음식의 맛이 중요하겠죠. 하지만 앞서 제가 위치, 디자인이 공간에서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예전에는 이것들 중 하나만 충족해도 어느 정도 승산이 있던 거 같은데, 지금 뭐 하나라도 부족하면 안 되는 거 같아요. 


기업가의 시각을 갖추신 거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저는 스스로가 뛰어난 디자이너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내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긁어모아 생존 방식을 모색하려고 하죠.


감히 말씀드리면 '나는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용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 살아가야 한다'라는 자기 객관화, 이것만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요. 들으면 들을 수록 대표님께서 스스로를 돌아본 시간과 고민의 깊이가 느껴지네요. 
제가 원래 그런 편이에요. 가만히 있어도 생각이 안 멈추죠. (웃음) 코로나 때는 더더욱 그랬죠. 약간의 자기혐오와 근거 없는 자신감의 진폭이 꽤 컸어요. 그 파도를 계속 타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네요.

초연해지시는 방법을 터득하신 느낌이네요.

손님이 없었으니까요. (웃음) 바에 혼자 앉아 생각하는 시간이 정말 많았어요. 인생이라는 게 계획대로 되지 않잖아요.  




루디먼트 위치도 흥미로웠어요. 도무지 카페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길을 걷는데 갑자기 나타났거든요. 원래는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 장소였나요? 

어린이집이요. 알록달록했어요.



공간 설계도 직접 하신 거죠?

네. 외관은 담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그대로 남겼어요. 내부의 경우에도 기존 건물의 피부인 시멘트를 노출시켰어요. 내부에는 목재 가구들을 배치해서 나름의 반전미를 주려고 했죠. 정해진 예산으로 미감을 잡을 수 있는 게 회색과 화이트, 그리고 우드였어요. 


아까 테이블 직접 제작하신 거라고 했잖아요. 
네. 목공방 졸업 작품으로 만든 것들이에요. 테이블 하고 라운지체어. 


아, 의미 있는 좌석이었네요. 이건 뭔가요? 저번에 지인하고 왔을 때 궁금했었어요.

소음방지 헤드폰이에요. 청력을 보호하기 위해 쓰는 물건이죠. 목공 작업할 때 소음이 꽤 심하거든요. 자칫하면 청력에 손상을 입을 수 있을 정도로요. 사실 실제 작업 현장에서는 건 이어 플러그 형태로 된 걸 써요. 그걸 꽂으면 말소리는 들리는데 기계가 만드는 데시벨은 차단해 주죠. 

 


몽둥이처럼 생긴 건 뭔가요? 
클램프(clamp)라는 건데요. 말 그대로 나무 부재를 고정할 때 사용해요. 작업하다 보면 두 손을 써야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럴 때 쓰죠.
 

1층에는 목공방의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 있군요. 2층은 1층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어요. 천장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직접 짠 프레임이에요. (웃음) 원래는 3분할 된 천장에 세 개의 프레임을 설치하려고 했는데요. 하나를 매달고 보니 세 개 전부 달면 답답할 것 같더라고요. 프레임 사이에 천을 매단 건 어떤 건축가의 파빌리온 프로젝를 래퍼런스 삼은 거예요. 



그렇군요. 2층 공간의 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2층의 경우, 가급적 곡선 사용을 지양하고 직선으로만 구성하려고 했어요. 바테이블 옆 기둥에 나름의 힘을 좀 실었고요. 판테온 기둥처럼요. 



벽면도 재밌어요. 

벽에 조명을 설치하고 그 위에 폴리카보네이트를 덧씌웠어요. 빛이 산란되어 번지는 연출이 재밌을 것 같아 시도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지금 보니까 과한 거 같네요. (웃음)


왜요. 벽면의 소재가 달라서 동적으로 보이고 좋은데요? 노출 콘크리트만 보였으면 공간이 조금 밋밋하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색을 고르는 것도 디자인이다

 


인터뷰 요청 드렸던 날, 루디먼트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오신 걸 봤어요. 
평소처럼 음료를 만들고 있었는데요. 테이블 쪽에서 노년 여성분이 '목공방'이라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고개를 돌리니 저희 직원 분에게 뭔가를 묻고 계시더라고요. 평소에 손님한테 먼저 다가가서 말을 잘 안 거는데요. 그날은 이상하게도 뭔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웃음) 


저도 들었어요. 
제가 서비스업이랑 정말 안 맞는 것 같아요. (웃음) 아무튼 다가가서 말을 건넸는데 여기 사셨다는 거예요.


루디먼트에서요?

네. 한 40년 전이라고 하셨나. 심지어 같이 오신 두 분은 따님이셨는데, 두 분 모두 여기서 태어나셨더라고요.
 
우와.
40년 전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고맙다고 말씀 하시는데, 그 얘기를 들으니 되게 묘하더라고요. 내가 그래도 좀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려고 한 게 나름의 의미를 찾는 순간이 오는구나, 하는 마음에 별 생각이 다 들었고요. 기념하고 싶어서 사진도 찍었어요. (웃음)

 
그 대화를 건너편 테이블에서 들었는데 저도 묘해지더라고요. 여운이 깊은 장면이었어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기억이에요. 공간 리뉴얼 하면 그때도 오시라고 말씀드렸어요. 
 


루디먼트의 팬으로서, 저 또한 리뉴얼 후 방문할 예정인데요. 앞으로의 루디먼트는 어떤 곳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하시나요?

디자인이라는 범주를 좀 더 넓히는 장소가 됐으면 해요. 


어떤 식으로요?

공간을 꾸민다는 행위 자체조차 창작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공간에 어떤 가구를 놓을지, 어디에 배치할지, 벽지는 무슨 색으로 고를지 고민하는 행위도 디자인이라고 루디먼트를 통해 말하고 싶어요.


색이나 가구, 위치를 고르는 일도 디자인이라는 접근이시군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같이 일하는 바리스타 분들도 어떤 의미에서 디자이너가 돼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름 권유 아닌 권유도 드렸죠. 목공 연필도 같이 만들어보고, 키링도 제작해보고. 근데 다들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저는 뭔가를 만드는 행위가 대중에게도 쉽게 가닿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그래서 디자인이란 개념을 좀 더 확장하기로 마음 먹었죠. 


계속 이어지는 얘기네요. 대표님의 관점에서 대중의 시력으로 교정하시는 태도. 

보통 운동선수들이 시합하기 전에 웜업(warp up)을 하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이 바로 그 몸풀기에 가까워요. 공간도 마찬가지죠. 내 생활과 가장 밀접한 장소에 무엇을 들여 놓을지 결정하는 것부터 디자인인 거예요. 
    

<ARENA>에 소개된 루디먼트 기사를 읽었는데요. 2019년 당시 "찾아주는 모든 이가 디자이너가 되는 게 목표"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당시에는 '디자이너=제작 혹은 창작'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지금의 창작자는 의미가 좀 더 넓은 것들을 더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 된 거네요.

네. 예전에는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다'란 의미가 기술(technic)적인 부분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누구나 디자이너다, 이미 각자의 삶에서 창작을 하고 있는데 모를 뿐이다'라고 생각해요. 루디먼트가 이걸 일깨워주는 브랜드가 돼보려고 해요. 

  

목공의 매력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요.
다른 거 필요 없고 나무가 손에서 깎여 나가면 그것부터 기분이 좋아요. 쇠를 깎는 건 매우 힘든데요. 나무는 달라요. 사포질 하고, 오일을 바르고, 거기에 색을 입히면 다채로운 질감을 만들어 낼 수 있죠. 목재를 카빙(칼로 직접 조각)할 때 나는 소리도 꽤 듣기 좋아요. 사각사각. 

 
제 올해 목표가 '안 하던 짓 하자'인데요. 대표님 얘기 들어보니까 대단한 건 아니더라도 뭔가를 제 손으로 직접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드카빙 공방은 예전보다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서울에 찾아보시면 은근히 있거든요. 대단한 거 말고 숟가락 카빙 수업 들어보시면 분명 만족스러워하실 거예요.


새로운 루디먼트는 언제 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본격적인 리뉴얼은 2월 중순부터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에요. 아마도 빠르면 3월 말, 늦어도 4월 말에는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로컬리(Boolocally)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영감이 되는 공간을 소개하는 플랫폼입니다. 인터부(INTERBOO)는 매주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마주(inter) 앉아 공간을 보는(view) 그들만의 태도를 부로디(BOOlody)에게 소개하는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에디터 김승훈

인터뷰 루디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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