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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Jan 08. 2024

115. 듣고 싶은 말을 들었다

어라! 이상하다. 포핸드 드라이브가 왜 이렇게 잘 되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징글징글하게 안 되더니.

드라이브를 걸려고 하면 그렇게 멈칫 멈칫 주저하더니.

그렇게 쭈뼛쭈뼛하더니.

이게 웬일이래?

 

모처럼 동갑내기 5부 고수와 3구 연습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게임하는 걸 좋아하고 난 연습하는 걸 좋아해 같은 구장에서 거의 매일 보는데도 그와 탁구 칠 기회는 손에 꼽을 정도다. 게임을 좋아하는 그에게 하수인 내가 먼저 연습하자고 할 순 없어 칠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은 회원이 없는 관계로 오랜만에 함께 탁구를 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역시 '매일 보는 구장 사람들과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라는 나의 개똥철학을 알기에 랠리 후 3구 연습을 제안해 왔다. 감사하다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내 고집만 부리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찜찜한 마음을 뒤로하고 3구 연습이 시작되었다. 3구 연습이라 함은 서비스를 두 개씩 넣고 게임을 하되 점수를 매기지 않는 연습을 말한다. 승패를 가르지 않기에 실수에 연연하지 않고 배웠던 걸 마음껏 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근 3개월 만에 하는 연습인데 어째 좀 이상하다. 그가 화쪽으로 커트 공을 보내자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더니 급기야 포핸드 드라이브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건다. 그것도 모자라 코스를 바꿔 그의 백 쪽으로 걸기도 한다. 아니 갑자기 이게 된다고? 나도 놀라고 그도 놀랐다.


연습이 끝난 뒤 둘 다 휴식테이블에 앉았다. 구장에서는 게임도 안 하면서 기가 차게도(?) 가끔 외부대회를 나가는 내게 그가 묻는다.  

"대회는 언제 나가는데?"

"2월 지나서요. 왜요?"

"대회 나가면 잘할 것 같아서. 이제 드라이브도 잘 걷어 올리던데?"

"요즘 포핸드 드라이브 연습을 주로 하고 있어요." 칭찬에 취해 묻지도 않은 말을 보탠다.

 

옆에 앉아 있던 동생이 "누님, 올해 한 부수 승급하셔야지요? " 물어 오는데 이미 칭찬에 흥분할 대로 흥분한 난 "올해 목표는 포핸드 드라이브 코스 가르기예요. 포핸드 드라이브 코스 가르기가 되면 언젠가 부수도 올라가겠지요."라고 대꾸한다. 그러자 조용히 듣고 있던 5부 고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그래. 잘하고 있어. " 아!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인가? 마치 내게는 "너 잘 살고 있어."라는 말처럼 들렸다.

같은 구장 동료이자 고수에게 듣는 말이어서 좀처럼 다른 사람 칭찬을 하지 않는 그에게서 나온 말이어서 기분이 더 좋은 건지도 몰랐다. 그 말 한마디에 몇 달간 얼어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았다. 스트레스 덩어리였던 포핸드 드라이브에 대한 애증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옆을 지나가시던 관장님께 냉큼 "oo 씨가 저 포핸드 드라이브 잘 한대요"라고 대놓고 자랑했다. 그리곤 그에게 "oo 씨가 잘하고 있다고 하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라며 묻지도 않은 앞으로의 포부를 밣혔다. 그리곤 신나서 기계실로 들어가 탁구 로봇으로 포핸드 드라이브 연습을 맹렬히 하기 시작했다. 그의 칭찬은 50을 이제 막 넘긴 내 몸을 그렇게 춤추게 했다. 그렇게 안 되던 드라이브에 자신감이 생겼다. 연말 내내 포핸드 드라이브에 대한 스트레스로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미 새해 복을 다 받은 것처럼 희망이 생겼다. 어두운 터널을 막 빠져나온 것 같아 눈이 부시다. 결국 마음의 문제였던 걸까? 몰아붙이지 않고 할 수 있다고 나를 어르고 달랜? 스스로를 자비롭게 바라보려 했던 햇볕 정책이 통했던 걸까?


칭찬에 무리하게 춤추었던 몸은 일어나자마자 온몸이 쑤시는 근육통을 선물했다. 그럼에도 괜스레 웃음이 난다. 듣고 싶은 말을 들었기에 근육통은 이제 무슨 훈장처럼 느껴진다. 잘하고 있다잖아. 하하하!


듣고 싶은 말을 들었다. 이런 날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삶은 그냥 일상적인 아무렇지 않음과 가끔은 뾰족뾰족한 행복과 되게 되게 긴 현타의 버무림 같다" 던 어느 유튜버의 말이 떠오른다. 오늘이 바로 기나긴  현타뒤에 찾아온 뾰족뾰족한 행복의 날인건가? 그러니 오늘만은 아무 생각 없이 이 기쁨을  맘껏 즐겨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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