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 Mar 20. 2024

무언가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

“똑같은 구질의 탁구인은 하나도 없다”

    

탁구장의 저녁 풍경은 어제와 비슷하다. 나이와 성별이 다르고 하는 일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 저마다의 이유로 탁구를 친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인사를 건네고 어제와 다르지 않은 탁구를 친다.

탁구는 파트너와 함께 하는 운동이지만 탁구대의 거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적당히 유지시켜 준다. 이  거리를 무시하다간 어느 곳에서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이 생길 수 있다. 둘이어야만 할 수 있는 운동이지만 탁구대를 마주 보고 선 각자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탁구를 친다. 마치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스타일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습과 닮아 있.

    

"40년 동안 탁구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도 질리지 않는다."     


사실 이런 게 궁금했다.

탁구, 대체 저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열심히들 치는지. 말로는 힘들어 죽겠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탁구대에만 서면 어디서 또 그런 힘이 나오는지. 탁구에 관한 것이라면 매일 이야기해도 재미있다며 침 튀겨가며 탁구로 대동단결하는 사람들.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요.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체력이 길러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체력이 소되는 탁구에 온 마음을 다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탁구가 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탁구라는 세계는 도대체 어떤 세계이길래?

이 책은 어쩌면 그런 질문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사람들이 좋았다.

1년 차부터 3,5,10,20년 차 그리고 40년 차의 관장님까지 탁구에 관한 이야기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눈을 반짝이는 사람들. 이런 눈들의 반짝임이 좋았다. 반짝이는 세계를 가진 인간만이 내는 광채가 부러웠다. 나도 이런 세계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탁구 치는 행위 자체에 순수하게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함께 반짝이고 싶었다. 탁구장에 가만히 앉아 일사불란하게 탁구 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세상의 쓸모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되는 세계. 이러한 세계를 가진다는 것 그리고 매일 경험할 수 있다는 건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제 방식대로 탁구에 미쳐 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제각기 다르다. 내 경우 탁구 치는 시간을 늘리기보다는 탁구를 하면서 들었던 수많은 질문들과 고민들에 대한 글을 쓰는 것으로 탁구에 미친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에 대해 궁금해하는  감정이라는데 나는 탁구란 놈이 궁금해 미치겠다. 그래서 탁구라는 세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열망으로 탁구 기술은 물론 탁구장에서 오가는 말, 행동, 감정, 심리, 인간관계 등 가리지 않고 쓴다. 탁구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읽고 필사하고 토론 모임을 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일상의 모든 것들을 기승전 탁구로 연결시킨다.


 좋아하는 세계에 대해 자문자답하는 과정을 통해 내 세계 넓어지고 있다. 미처 몰랐던 내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고 무심코 지나치던 주변 사람을 한 번 더 쳐다보도 하고 가끔은 오지랖을 부려가며 인생에 대한 생각도 한다. 마치  탁구라는 세계를 통해 세상을 다시 배우는 느낌이다. 좋아하는 세계를 알려다가 그보다 더  넓은 세계를 가지게 되었다.  드디어 나도 반짝이는 세계를 가지게 된 걸까? 탁구대를 오가는 탁구공 소리만 들어도 좋고 탁구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흥분해 톤이 점점 올라가기도 한다. 내 눈은 누가 봐도 좋아하는 세계를 가진 자의 눈이 되었다. 머리만 쓰느라 납작했던 하루도 탁구 덕분에 생기를 띠게 되었다. 낮에는 작가지망생으로  저녁에는 탁구 생활 체육인으로 살며 글쓰기의 세계와 탁구라는 세계를 넘나들고 있다. 탁구로 중심을 잡으며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연습만 해도 재미있는 걸 어떡합니까? “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저녁 8시 탁구장에 출근해 10시에 퇴근하는 루틴형 탁구 생활을 하고 있다. 이렇게 좋아 죽겠는 탁구를 지치지 않 오래오래 하고 싶어 내 기질대로 탁구를 친다. 경쟁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 아니기에 게임보다는 연습하는 걸 좋아한다. 행히 반복하는 걸 지루해하지 않는 성격이라 나름의 연습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거의 매일 같은 연습을 한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시스템.


이렇게 탁구 기술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연습해 온 기술이 무의적으로 나올 때가 있다. 마음먹은 것도 아니고 의도한 것도 아닌데 저절로 몸이 움직여지는 순간. 그 순간을 좋아한다. 연습한 만큼 딱 그만큼만 모습을 드러내는 정직성이 마음에 든다. 읽고 쓰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날이면 더 열심히 탁구장을 뛰어다닌다. 그러다 보면 내가 탁구를 치는 건지 탁구가 나를 치는 건지 모를 순간이 찾아온다. 머릿속은 텅 비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지난 일들은 별 일 아닌 것들이 되어 버리는 순간.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그 순간을  좋아한다. 그 맛에 탁구를 친다. 마음먹었던 연습량을  턱이  어떻게 해서든 채우고 나면 하루의 작은 목표를 달성한 사람이 다.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다. 그러면 다음 날 다시 책상에 앉을 힘이 난다. 낮에 좀 게으르게 살았다 싶은 날은 저녁에  뛰어다니며 '오늘 하루도 참 열심히 살았구나' 라며 하루를 단정하게 마무리하기도 한다.

     

“어떤 탁구인을 꿈꾸나요?”  

   

연습을 좋아한다고 해서 탁구에 대한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백 드라이브와 포핸드 드라이브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탁구인을 꿈꾼다. 언제 완성(?)될지 모르지만 매일 지겹도록 하는 모든 연습과 레슨의 방향은 이를 향해 있다. 꿈꾼다 해서 다 이루어지진 않는다는 걸 아는 나이지만 이렇게 하루하루 목표에 다가가는 일상이 좋기에 루틴으로서의 탁구를 좋아한다. 이러한 스타일의 탁구인을 꿈꾸며 어느 날은 폴짝폴짝 희망찬 발걸음으로 탁구장으로 가기도 하고 어느 날은 할 수 없이 꾸역꾸역 가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아침부터 이미 마음이 탁구장에 가 있기도 한다.


 그럼에도 포핸드 드라이브처럼 공을 들여도 잘 안 되는 것이 있다. 그래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포기하 않는다.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다리는 후들거리고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고단하지만 ‘그래도 몸 어느 구석에선가 조금씩 늘고 있겠지?’라는 믿음으로 그 기술이 나올 날을 기대하며 마음을 쏟는다. 매일 마음 쏟는 활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날들이 계속될 줄 몰랐다. 

     

"당신은 어떠한 방식으로 탁구를 마주하고 있나요?"

     

이 책은 탁구를 하면서 들었던 수많은 질문들과 고민들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그러나 탁구인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탁구인들이 “나도 이런 거 궁금했는데, 나도 이런 고민한 적 있는데, 우리 탁구장에도 이런 사람 있는데 ”라는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탁구에 대한 생각, 사람에 대한 생각, 더 나아가 인생에 대한 생각 나누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도 탁구대 앞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을 신이 탁구왜 좋아하는지, 탁구를 어떠한 방식으로 치고 있는지, 어떤 탁구인을 꿈꾸는지, 탁구를 친다는 게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잠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20년 탁구를 쳤는데 이제야 탁구가 뭔지 조금 알겠다.”  

  

예전 코치님이 이런 말을 해서 깜짝 란 적이  있다. 이제야 이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겠다. 5년 차니 이제 막 탁구라는 세계에 한발 내디딘 거리라.  탁구라는 세계를 해  내 세계는 얼마나 더 확장될까? 그러니 아직 끝난 게 아다.

TO BE CONTINUED 


작가의 이전글 123. 집 나간 백 드라이브를 찾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