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의 말들) 저는 제 걸 제일 많이 봐요.
(파트 1)
최성운: 나를 발견해 가는 과정을 조금 더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행동 양식들이 있을까요?
료: 수많은 인풋들이 있잖아요. 그게 시각적이든 사운드도 있고 먹는 것도 있고 하루에 인풋이 적어도 수만 가지 되지 않을까요? 근데 뇌라는 것이 용량이 어마어마해서 이 인풋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저장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그 인풋을 물리적으로 꺼내서 말을 하던 그림을 그리든 요리를 하든 나라는 신체나 뇌를 통해서 아웃풋으로 나온다고 생각해요. 이 아웃풋이 나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웃풋으로 나온 것을 내 눈으로 내가 봤을 때 그게 나를 발견하는 것, 그러니까 자아 찾기가 어떤 허상의 활동이라기보다는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직관적인 방식으로 느껴요. 아! 내가 이런 그림을 그렸구나. 요리는 이렇게 했구나, 사진은 이렇게 찍는구나. 나는 이렇게 생겼구나, 손톱이나 발 같은 걸 자세히 보거든요. 그런데 그런 과정도 시간도 없는 분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의 신체를 정확하게 자세하게 보는 일. 사람들은 계속 다른 누군가를 보고 또 누군가를 판단하고 누군가를 향해서는 그러는 게 잘 되어 있는데 화살표를 완전히 돌려서 자기 스스로한테 대입하는 경우가 점점 없어지고 타인을 보느라 자신을 볼 시간이 없는 거죠. 저도 그런 부분에서 억지로라도 뭔가 상황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잘 빨려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나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정말 훨씬 더 많아져야 되는 것 같아요.”
(파트 2)
최성운:이 책(생각 없는 생각)에서 인상적이었던 게 아침에 뭔가를 하면 저녁에 내가 생산한 걸 다시 보는 것, 그래서 자기가 자기 자신의 인풋이 된다는 게 저는 너무 신선했어요. 왜냐하면 보통 아웃풋은 내보내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침에 했던 낙서, 아침에 찍었던 사진, 아침에 했던 요리를 저녁에 다시 생각하고 나한테 인풋으로 집어넣는다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료: 저는 항상 자가발전에 관심이 있고요. 누군가 만들어놓은 레퍼런스(참조)도 너무 귀중하지만 제가 저 스스로의 레퍼런스가 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늘 있었고, 스스로 생산해 낸 걸 다시 인풋으로 받아 다시 아웃풋으로 나왔을 때 더 유니크한 것이 나올 수 있다. 그처럼 효율이 좋은 것이 있는가? 굳이 멀리 가서 어떤 경험을 하고, 뭘 보고 하는 것들도 좋지만 가까이서 아주 손쉽게 매일 다 손에 닿는 범위 내에서 내가 계속 자가발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생기면 돈 한 푼 안 들이고 계속 그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아갈 수 있는 이 시스템이 저는 되게 흥미롭고요. 제 스스로 레퍼런스가 되기 위해 또 괜찮은 레퍼런스여야 되니까 내가 갖춰야 될 소양이 있다 보니까 스스로한테 책임감도 생기는 거예요. 그러면 공부도 해야 되고 지식도 더 있어야 되고. 이런 과정들을 생각하면 해야 될 것들이 많아져서 마음이 바쁘죠.
(파트 3)
료: 길에 다니던 풀을 만지던 뭘 먹던 샤워를 하건 어떤 사소한 경험들은 다 나의 인풋이에요. 뇌라는 것이 나의 인식 속에 그 인풋들을 다 저장할 거란 말이죠. 그러면 그것을 나를 투영해서 아웃풋으로 꺼내놓기만 하면 돼요. 뭐든 물리적으로 하면 돼요. 만약에 말하거나 쓰거나 옷을 입어보거나 뭐든 움직이면 돼요.
김나영:내가 꺼낸 걸 내가 다시 한번 봐야죠.
료: 그런데 보통은 꺼내는 것까지는 다 하시거든요. 많은 분들이 그걸 일상이라고 말하세요. 자기 스스로 궁금해할 시간이 없는 건 왤까요?
김나영:왜죠? 바빠요.
료:왜 바쁠까요? 바쁜 것의 핵심은 핸드폰을 너무 많이 보는 거예요. 근데 그 핸드폰으로 보는 건 내 거가 아니라 누군가가 만든 거잖아요.
김나영:아! 다른 사람 거를 제가 계속 리뷰하고 있군요. 아! 그럼 제 인스타를 보면 되겠네요.
료:네. 저는 제 걸 제일 많이 봐요. 어, "여기 너무 예쁘다" 하고 막 여행 가서 사진 찍으시고 안 보시잖아요. 그리고 또 그것들은 보관되고. 그런 사진들, 아니면 나의 기록들, 메모들, 그렇게 양이 많지는 않을 거잖아요. 그중에 꼭 마음에 드는 건 인스타에 그런 식으로 업로드를 해요. 저만의 아카이빙을 매일 하는 거죠.
<최성운의 사고실험>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즐겨본다. 각계각층의 사람을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최성운이라는 인터뷰어(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만의 깊이 있는 질문 때문인지 다른 채널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심도 깊은 대화를 볼 수 있다. 인터뷰어가 누구냐에 따라 인터뷰이의 어디까지 끌어낼 수 있는지 그를 보고 알았다. 뭐든 가리지 않고 필사에 미쳐있는 내게 유튜브 영상도 예외가 아니기에 그의 영상을 필사하기도 한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 번역가 황석희에 이어 런던 베이글 창업자 료는 세 번째 필사의 주인공이다. 그녀가 런던 베이글 뮤지엄 창업자라는 것도, 나와 동갑인 73년생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그녀가 인풋과 아웃풋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하루에 수만 가지 인풋이 내 머릿속에 저장된다. 이 영상 역시 수만 가지 인풋 중 하나다. 내가 이 인풋을 물리적으로 꺼내 이렇듯 글로 쓰고 있는 것이다. 나라는 신체나 뇌를 통해 아웃풋으로 나온 게 이 글이다. 그녀 말대로라면 이 아웃풋이 나이며, 아웃풋으로 나온 내 글을 내 눈으로 봤을 때 그게 나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즉 자아 찾기가 어떤 허상의 활동이라기보다는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직관적인 방식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거다. 아! 내가 이런 글을 썼구나.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 인풋을 아웃풋으로 꺼내고 이 아웃풋을 다시 내 눈으로 보는 게 나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자 직관적인 행동 양식이라니!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내 아웃풋을 다시 보는 것이다. 나 역시 아웃풋은 내보내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아침에 생산한 걸 저녁에 다시 생각하고 자신에게 인풋으로 집어넣는다고 한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레퍼런스(참조)도 귀중하지만, 자신이 스스로의 레퍼런스가 되어야 한다는 그녀는 자신이 생산해 낸 걸 다시 인풋으로 받아 다시 아웃풋으로 나왔을 때 더 유니크한 것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또 괜찮은 레퍼런스여야 되니까 공부도 해야 하고 지식도 더 있어야 하니까 해야 할 일들이 많아져 마음이 바쁘다는 이야기도 한다. 매일 손에 닿는 범위 내에서 자가발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생기면 돈 한 푼 안 들이고 그게 계속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흥미롭다는 그녀. 인풋, 아웃풋 그리고 이 아웃풋을 나한테 인풋으로 다시 집어넣어 유니크한 아웃풋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 동시에 괜찮은 레퍼런스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공부도 병행해야 하고. 이것들이 매일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 자가발전이 된다는 자기 성장이 된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이 시스템을 가로막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내가 생산한 걸 보는 시간보다 다른 사람이 생산하는 걸 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저는 제 걸 제일 많이 봐요.”라는 그녀의 말처럼 내 아웃풋을 보는 상황을 억지로라도 만들지 않으면 타인을 보느라 나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이 점점 없어진다. 결국 나를 발견해 가는 과정은, 나에게 이르는 길은 물리적으로 꺼낸 내 아웃풋을 다시 한번 보는 데 있다. 핸드폰 속 다른 사람들을 보느라 바빠 내가 쓴 글, 내가 필사한 글들을 돌아볼 시간이 여유가 없었다. 새로운 글을 쓰느라 바빠 스스로를 궁금해할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은 채 나 자신을 더 알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갖지 않은 채 이전 글들은 그렇게 잊혀지고 쌓여만 갔다. 쌓아야 하는 글의 양만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렸다. 요즘 부쩍 뭔가 헛헛하게 바쁘게만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유를 찾은 것 같다. 이젠 화살표를 완전히 나로 돌려 내 아웃풋이지만 지금은 기억에서 희미해진 예전글들을 다시 차근차근 읽어보면서 인풋으로 받아들여야겠다. 나를 발견해 가는 과정은 그리 멀지 않은 곳, 내 집, 내 책상 위 에 있었는데. 언제나 파랑새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그런데 이런 깨달음 역시 핸드폰 속 유튜브 채널이라니 아이러니하긴 하다. 그럼에도 오늘 저녁에는 내가 막 생산한 이 글을 다시 읽어보고 생각하면서 나한테 인풋으로 집어넣으리라. 큰 결심보다는 이렇게 소소하게 시작하겠다. 습관적으로 손이 가는 핸드폰의 방해만 없다면 충분히 가능할 텐데 이놈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걱정이긴 하다.
추신: (파트 3)는 <김나영의 노필터티브이> 채널의 대화 내용이다. 중요한 것들은 반복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