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쉬는 주말이다. 3월엔 주말 내내 일했더니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삶에는 적절한 휴식이 있어야 한다. 오래간만에 여유를 느끼고자 느지막이 스타벅스에 왔는데 잘못된 판단이었다. 주말 오후 카페에선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줄을 서서 바 안을 무심코 봤다. 좁은 바 안에서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일하는 바리스타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무언가 실제로 경험했다는 것은 어떤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주문을 하니, ‘51번째 메뉴로 준비 중입니다.’라고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51번째라고? 그럼 산술적으로 내 앞에 50명의 주문이 밀려있다는 뜻인가? 스타벅스의 주문 시스템이 어떤지는 알 수 없더라도 시간이 꽤나 걸리겠다고 생각했다. 주문을 받는 바리스타 역시 주문이 밀려있어서 시간이 걸린다는 안내를 해준다. 시간은 13:47:21.
오늘의 커피에 'KENYA'라고 적혀 있지 않았다면 블론드 아메리카노를 마셨을 거다. 평일 이른 아침의 스타벅스 브루잉은 마치 나를 위한 한 잔을 내리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혹시나 케냐도 그렇게 마실 수 있지 않을까 기대와 함께 주문. 그리고 커피를 받은 시간은 14:09:09. 주문한 지 22분 만에 받은 커피다. 나쁘지 않다. 그러나 기대는 아쉬움이 되어 돌아왔다. 커피는 미지근하고, 바로 내린 커피가 아니라는 걸 마시는 즉시 알 수 있었다. 그냥 블론드를 마실걸.
주말의 카페 바 안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좀 식상한 표현이지만 그래도 한 번 써본다)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주문을 쉴 새 없이 받아넘기기 위해서는 정확한 레시피 숙지와 레시피를 몸으로 담아낼 수 있는, 반복으로 훈련된 반사 행동, 실수를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는 멘탈과 동료의 실수를 보더라도 다독일 줄 아는 여유, 잠시 고개를 들었을 때 여전히 긴 줄의 주문 인파를 보고도 좌절하지 않는, 아니 오히려 즐거워할 수 있는 마음, 3-4시간을 계속해서 음료만 만들 수 있는 체력과 끈기, 이 모든 것이 주말마다 반복된다 해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 이 필요하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주문이 밀리기 시작하면, 분명 같은 속도로 음료 만들고 있는데도 제조 속도가 느려지는 착각이 든다. 그래서 속도로 높이면 음료 품질이 떨어지게 된다. 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바 안의 모든 바리스타가 대회에서 한 번쯤 우승을 했다 하더라도 모든 음료를 동일한 품질에 빠른 속도로 제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바리스타마다 숙련도가 다를 뿐만 아니라, 멘탈 역시 차이가 난다. 그러다 보니 제공되는 음료의 편차가 존재한다. 물론 완성도와 속도,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연히 완성도라고 말하겠지만 주문지가 한 30개 밀려있으면, 어... 속도도 중요하다고.
생각 없이 음료만 만들던 주말 오후,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음료 맛을 제대로 보려면, 평일 한가한 시간에 와야겠구나.’ 그 생각은 맞았다. 아무리 시스템이 잘 갖춰진 카페라도 끝없이 밀려드는 주문에 음료 한 잔 한 잔을 정성껏 만들 수 있는 카페는 많지 않다. 주문하고 한 시간 기다릴 각오를 할 거 아니면.
이런 상황에 맞는 말은 아니겠지만 묘하게 딱 맞아떨어지는 말이 있다.
양에는 장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