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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Apr 13. 2023

커피, 산미가 다가 아니다

오래전 커핑을 처음 접할 때의 일이다. 커피는 쓰기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스페셜티라는 딱지를 달고 눈앞에 나타난 커피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기억해 보면 입안에서 폭죽이 터지는 느낌, 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다. 과일 주스 같은 커피, 후각으로 전해지는 꽃향기가 가득한 커피, 딸기를 베어 먹은 것 같은 맛이 느껴지는 커피, 샴페인 캔디를 씹은 듯한 커피, 와인을 한 잔 머금은 듯한 향미의 커피 등등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커피를 맛보니 기분이 한 껏 고조되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에티오피아의 커피는 그 특유의 향미가 있어서 어떤 커피와 섞여있어도 알아챌 수 있었고 그 맛에 길들여졌다. 


정기적으로 커핑을 하면서 커핑폼으로 각각의 커피에 점수를 매겼다. 8-10종류의 커피가 펼쳐져 있었는데, 역시나 에티오피아 커피는 단연 눈에 띄었다. (아니, 입에 착 붙었다) 커핑을 마치고 서로 각자의 점수를 비교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에티오피아 커피에 높은 점수를 줬었다. 나와 비슷하게. 커핑 인스트럭터와는 다르게. 분명 꽃향기가 펄펄 나고 과일 씹어먹는 느낌이었는데 이런 커피에 점수를 주지 않으면 대체 어떤 커피에 점수를 주냔 말인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후한 점수를 줬던 에티오피아 커피는 좋은 커피라고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커피는 '균형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재미있게도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커피는 균형감 있는 커피보다는 강렬한 혹은 뚜렷한 향과 산미를 지닌 커피다. 새로운 커피를 경험하고 그 경험이 인상적일수록 자극적이고 특색 있는 커피를 원한다. 그런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커피보다는 한쪽으로 확실한 향, 특히 과일향이나 꽃향기처럼 구분이 확실한 커피를 선택한다. 다양한 맛과 향이 잘 어우러진 커피, 즉 발란스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커피의 개성은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런 커피는 '모든 영역에서 골고루 훌륭하다'가 아니라 '특별함이 없이 밋밋하다'라고 생각한다.  


간혹 산미 있는 커피를 찾는 분들 중에 꽃향기에 산미가 있으면 좋은 커피, 트렌드를 반영한 커피라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하지만 그 산미를 잡아주는 쓴맛, 단맛, 바디감이 없으면 균형이 무너진 커피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커피는 신맛만 느껴질 뿐 텅 빈 느낌을 준다. 커피는 산미가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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