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근처 유명한 카페에 들렀다. 보통 다른 카페는 혼자 시간을 즐기거나 아주 가까운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약간의 사회성 향상과 그 카페의 커피가 궁금했기 때문에 동료들과 함께 방문했다. 그리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라임, 복숭아, 사탕수수, 캐러멜
요즘은 카페에서 원두를 사면 원두 포장지에 커핑 노트가 적혀있다. 커피에서 라임 맛이? 복숭아 향이?라는 의문과 함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커피를 내려보지만 역시나 좌절하게 된다. 아무리 집중을 해도 그런 맛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추출이 잘못됐거나, 내 혀가 잘못됐거나, 그것도 아니면 원두가 잘못됐겠지, 하는 생각에 같은 원두를 같은 카페에서 주문해 마셔보지만 그리 다를 바가 없다. 사실 커핑 노트는 커피에서 ‘그런 뉘앙스가 있다’ 정도로 받아들이면 된다. 커피를 마시면서 복숭아 맛이 안 난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방문한 카페에서 브루잉 커피를 주문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실 때마다 노트에 적혀있는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엉? 이게 말이 된다고? 치즈와 코코넛이라고 적혀있는 커피에서 정확하게 그 맛이 났다. 포도라고 쓰인 커피는, 조금 과장해서 웰치스 포도맛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이게 뭐지? 말 그대로, 그러니까 적혀있는 그대로 느껴지니 정말 직관적이구나 싶었다.
가향 커피.
이는 커피 생두 혹은 원두에 인위적으로 향을 입혀 일반적으로 커피에서 느낄 수 없는 향미를 내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해 커피계에서는 많은 말들이 있지만 커피를 즐기는 입장에서 그리 중요한 이슈는 아니다. 설명한 대로 맛이 나는 직관성은 재미를 준다. 이러이러한 뉘앙스가 느껴지니 느껴봐,라고 하지 않아도 마셔보면 안다.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인식과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맛을 느끼는 상황이 만나 새로운 경험이 만들어진다. 이는 커피라는 영역의 스펙트럼을 더 넓혀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맛있다.
선택은 소비자가 몫이다. 너무 과하다 싶고, 맛이 없으면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오래 살아남아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가향 커피가 직관적이라는 것, 이는 재미와 이어지고, 재미는 커피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춰준다. 그런 면에서 커피 업계는 다양한 모양으로 활성할 될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즐겁다. 맛있는 커피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카페를 나서면서 바리스타에게 물었다. 혹시 가향 커피예요? 그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시원치 않았다. 가향, 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기에 따라 달라지고 그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니… 등등… 그니까 가향 커피가 맞다는 거 아닌가? 왜 가향 커피를 가향 커피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처지처럼 가향 커피로 자신의 처지를 그리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