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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오름 May 02. 2023

내가 손님이었다 해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주문에 정신없이 빵과 음료를 내보내고 있었다. 실수 없이 나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초집중을 하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 순간에 거친 음성이 들려왔다.



"빵만 시켰는데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예요? 음료를 주문한 것도 아니고!"



나에게 한 말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그 소리에 대꾸를 해야 했다. 그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요지는 이랬다. 자기는 빵만 주문했으니 어서 빵을 달라는 것.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바 너머를 가리키며, 저기 저게 주문한 빵이니 얼른 내놔라, 해서 주문 순서를 무시하고 내드렸다. 


주문 순서대로 준비해드리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바로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설명을 친절하고 여유 있게 할 자신이 없었다. 나 역시 언성이 높아질 것 같아서 아무 말하지 않았다. 만약 손님이 와서, 빵만 주문했는데 먼저 줄 수 있겠냐고, 정중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평범하게 말씀하셨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드렸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차분하게 생각해 봤다. 그분의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내가 손님이었다면? 나도 비슷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빵만 주문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할까,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나 역시 큰 소리를 내며 따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만)  

누군가의 입장이 된다는 것은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것 같다. 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다른 카페에 가면 서비스를 받는 입장이 된다. 예전의 나였다면 상대의 상황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태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적어도 바리스타가 어떤 고생을 하고, 카페는 어떤 고충이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몸은 피곤하고 멘탈은 흔들리지만, 이렇게 삶을 배워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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