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소비가 증가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제품이 시장에 나왔다. 그중 '드립백'은 원두를 직접 갈아서 마시는 사람들과 캡슐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의 필요를 잘 파고든 제품이다. 어느 정도의 품질과 어느 정도의 간편함을 두루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드립백 판매와 소비가 증가했는데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편리함'때문이었다. 사용의 편리함뿐만 아니라 제조의 편리함이 공급을 증가시켰다.
공급이 늘어나면 경쟁은 필연적이다. 각각의 상품은 선택받기 위해 나름의 매력을 필요로 하지만 가장 쉽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가격이다. 다양한 상품 속에서 낮은 가격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다. 그런데 싸게 판매하기 위해서는 단가를 낮춰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원두보다는 값싼 원두를 사용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경쟁이 필연이라면, 품질 저하 역시 그에 따라오는 많은 결과 중 하나다.
드립백을 내렸다. 향부터 심상치 않다. 플라스틱을 가열하면 나는 냄새가 커피에서 올라온다. 역하다. 커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쁜 커피'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커피는 취향이지만, 이 정도면 취향을 논할 수 없다. 모든 드립백을 까서 신발장과 냉장고에 넣았다. 안 좋은 냄새와 습기 흡수를 위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이 역한 냄새가 신발장과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결국, 버렸다.
맛있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커피 맛에 까다롭지 않다. 믹스 커피도 잘 마시고, 자판기 커피도 좋아한다.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도 마시고, 15000원짜리 드립 커피도 마신다. 난 어쩌면 커피를 마시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커피를 내리는 것 자체는 좋아한다) 그럼에도, 마시지 못할 정도의 커피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수십 년 동안 커피를 마시며 살아왔는데 도저히 못 먹겠다 하는 커피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이번에 손가락 하나가 추가됐다.
상품성을 위해 스페셜티와 커머셜을 구분한다. 모든 사람이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 마실만한 커피를 판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득 궁금하다. 그 드립백을 만든 사람은 자신의 커피를 맛있게 마실 수 있을까? 그런 거라면 내 경험의 미천함을 인정하고 고개 숙여 사과할 것이다. 속담 하나가 떠올랐다.
싼 게 비지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