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제주 서귀포에 있는 카페엘 갔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카페였고, 커피도 맛있는 곳이었다. 이른 아침이어서 사람도 없었고 바리스타들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여느 때처럼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그런데 그때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카페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바리스타들과 아는 체를 했다. 아마도 육지에 있는 카페 지점에서 온 동료들인 것 같았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더니 대화가 길어졌다.
한참을 기다려도 주문한 음료는 나오지 않았다. 바에 가보니, 먼저 추출한 에스프레소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조금 더 기다리다 결국 한마디 했다.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주문한 지가 언제인데 에스프레소를 뽑아놓고 이야기만 하고 계시네요."
미안한 기색도 없이 다시 만들어주겠다고 해서 그냥 됐다고, 주시라고 했다. 그러고는 보는 앞에서 에스프레소를 원샷하고, 카푸치노도 벌컥벌컥 마시고 나왔다. (뜨거워 죽는 줄 알았다)
여름엔 차가운 음료 위주로 주문이 들어온다. 그럴 때는 음료 제조 순서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겨울에는 다르다. 음료를 만드는 순서가 중요하다. 뜨거운 음료는 시간이 지나면서 식기 때문이다.(여름이라 하더라도 뜨거운 음료는 식는다) 또 음료에 따라서는 만든 즉시 음용하는 것이 베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꺼번에 여러 음료의 주문이 들어온 경우 적절하게 순서를 정해 음료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뜨거운 아메리카노, 뜨거운 라테, 레모네이드, 아이스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가 들어왔다고 하자. 이럴 경우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차가운 음료를 먼저 제조하는 것이 좋다. 즉 레모네이드를 만들고, 그다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든다. 다음으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만든 후에 뜨거운 라테를 만드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라테는 시간이 지나면서 우유와 커피가 분리되기 때문에 되도록 서빙하기 바로 직전에 만드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에스프레소다. 에스프레소의 경우는 손님 음료를 가지러 오셨을 때 보는 앞에서 직접 내려드리기도 한다.
음료 만드는 순서에 어떤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목적은 분명하다. 가장 맛있는 상태로 손님에게 음료를 제공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정신없이 음료를 만들고 서빙을 하는 상황에 어떻게 이런 작은 것까지 신경을 쓰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때 서귀포에서의 그 에스프레소,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적절하게 제공됐으면 얼마나 맛있었을까 하는 아쉬움과 좋아하는 카페에 대한 스크레치가 조금 남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