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 필구 Nov 17. 2022

우리들의 일그러진 일상(9)

재진

필구는 더이상 밥을 같이 먹지도 않았고, 하교할 때도 함께 하지 않았다.

하교하는 내내 중협이는 무슨 일인지 나에게 물어왔고, 강호는 아무말 하지 않았다.

난 그냥 순호한테 같이 가자고 했다. 그리고는 친구들에게 우리 셋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우리는 순호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 

중협이나 강호는 순호가 병원에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다. 정말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못오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거 같았다.  병원앞에 도착하자 그제서야 내말을 믿는 눈치였다.

순호는 누운 채로 웃으며 우릴 맞이 했다.

"뭐야 왜 왔어?" ㅎㅎ

"좀 어떠냐?"

"학교 안가니까 좋지ㅋㅋ. 그리고 간호사 누나가 장난아니야 개이쁨 ㅋㅋ."

"이와중에? 미친놈이냐...?언제쯤 오시는데? 보고 가야지"

"ㅋㅋㅋ 병X. 근데 왜 왔냐 진짜 갑자기? 곧 학교가면 볼건데."

난 순호에게 친구들한테 그날있었던 일을 말했다고 했다.

 말을 다 들은 순호는 아무 말도 없이 있다가 왜 필구는 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우리셋이 같이 있었던 날과 필구와 나 둘이 겪었던  일도 말해주었다. 순호와 친구들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 후에 중협이가 말했다.

"아.. 진짜.. 그XX들 죽이고 싶다."

"이름도 모르고 학교도 어딘지 모르겠네?"

강호가 물었다.

"그렇지. 학생인지 아닌지도 사실 모르겠다. 그리고 알아서 뭐하냐... 그냥 내가 병X이었다. 정말.."

"우리한테라도 말하지 그랬냐? 그날."

중협이가 말했다.

"얘도 지 나름 생각한거야. 지는 안무서웠겠냐 거기서 또 맞을 수도 있는데."

강호가 말했다.

"두놈한테 초토화 됐네. 한 놈은 병원에 입원해있고, 한 놈은 굴파고 들어가고."

순호가 말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순호가 또 말했다.

"필구한테는 아직 내얘기  안하는게 좋겠다. 목발 짚고라도 학교 갈랬는데 좀 더 쉬어야겠다. 그리고 너네들도 애 혼자 두지 말고 좀 챙겨라. 친구가 되가지고는 쯧쯧.."

병원에서 오랜만에 많은 얘기를 나눴다. 시간이 좀 지나서 우린 순호에게 인사하고 병원을 나왔다.

"이제 다 알았으니까 내일 필구한테 말하자. 우리 다 알고 있다고. 그리고 순호 얘기도 하자 그냥. 지도 알아야지. 중협이가 말했다.

강호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에게 물었다.

"근데 필구는 너 왜 때린거냐?"

"내가 거짓말하고 지를 데리고 거길 갔는데 아무리 전에 자기가 도망쳤어도 화가 안났겠냐? 친구가 감쪽같이 자기를 속였는데. 나같아도 화났겠다. 그리고 눈치없이 옆에서 자꾸 말거니까 폭발한거겠지."

"애초에 걔가 도망안쳤으면 된 거잖아. 솔직히 난 좀 이해가 안된다. 중학생도 아니고 뭐가 그렇게 꼬였냐 걔는."

"그래도 친구끼리 너무 그러지 말자."

중협이가 말했다.

"나도 잘못한거 맞잖아. 병신같이 친구 쳐맞으라고 갖다준 놈 밖에 더되냐 나는"

내가 말했다.

"아 모르겠다. 생각 좀 해봐야겠다. 난 아직 필구한테 뭐라고 말해야 될 지 모르겠다. 솔직히 너한테도"

그렇게 강호는 먼저 갔다. 중협이와 나도 잠깐 말없이 서있다가 각자 떠났다.

 

 한동안 나는 교실에서 말없이 지냈고, 중협이는 다른 반 친구들과 어울렸다. 강호는 여전히 잠만 잤다. 필구는 여전히 낯선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교실문이 열리더니 복싱부 태구가 들어왔다. 태구는 운동부라서 수업시간에 잘 들어오지 않았었다. 태구에 대해서 잘 아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워낙 소문이 무성해서 학교내의 서열에도 열외로 쳤을 정도로 압도적인 포스를 자랑했었다. 그가 갑자기 교실로 들어오자 일순간에 교실은 조용해졌고 필구를 찾는 그의 얼굴은 살짝만 건드려도 터질 거 같은 여드름 같이 달아올라 있었다. 반면에 자신을 찾는 필구의 표정은 덤덤한거 같았다. 필구의 표정은 거의 항상 일정했다. 겁먹었을 때도 겁먹지 않은 듯 행동하고 또 그런 표정을 지었으며, 아파도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예전에 야자시간에 친구들끼리 도망친 적이 있었다. 다음날 도망친 애들이 다 모여서 엉덩이를 20대씩 맞은적이 있었는데 필구는 자세 한번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리고 단 한 번의 끊임도 없었다. 심지어 선생님이 손에 잡고 계셨던 건 하키채였다. 그 장면이 너무 인상이 깊어서 나중에 넌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필구의 대답은 자신도 겁이 나고 너무 아프기도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때리려고 다가오면 아픈티를 내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겁먹지 않은 척, 아프지 않은 척 하는게 습관처럼되어버렸다고 했다.

 필구에게 달려가는 태구를 보며 교실에 있던 모두는 그걸 지켜보고만 있었다. 나는 무덤덤한 척 하지만 겁먹은 필구를 볼 수 있었다. 태구의 복싱으로 단련된 주먹에 연달아 두대를 맞았고, 싸움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기절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소리가 컸다.

그때였다, 햇볕 아래서 엎드린채로 광합성을 하고 있던 강호가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더니 순간 자리에서 책상을 밟고 뛰어와 태구의 얼굴을 걷어차버렸다. 그리고 누워있는 태구의 얼굴을 한 번 더 걷어찼다.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 같았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다들 멍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태구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사람이 거품을 물며 꿈틀꿈틀대는건 처음봤다. 아니 앞으로도 이런 장면을 다시 볼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은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모이고 시끄러운 소리가 나자 지나가던 선생님이 뛰어오셨다. 선생님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자 강호는 달아나듯 아무말없이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들의 일그러진 일상(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