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신동의 길.
학원강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친구에게서 오래간만에 연락이 왔다. 문제집에 넣을 밧줄 그림을 그려달라는 것이었다. 4년 전 인스타에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글을 게시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기억했나 보다. 나는 4년 전 미술학원에서 주 1회, 3개월 간 수채화를 배웠다. 결혼 및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학원과 멀어졌고,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그 이후로 그림연습을 한 적이 없다. 시작에 대해서만 포스팅하고 끝은 올리지 않았더니 아직도 그림을 그리는 줄 알았나 보다.
취직 전에도 꾸준한 취미가 없었다. 그냥 매년 10킬로 달리기 대회에 봄, 가을 2회 정도 출전하는 것? 운동삼아 동네를 3킬로 정도 뛰는 것. 하프는 2번 달려보았고 풀마라톤을 달려본 적은 없다. 하프 대회가 나에게 준 교훈은 수명이 줄지 않으려면 달리기는 최대 10Km 까지라는 것이다. 요즘은 이상한 통증으로 5km도 못 뛰고 있다. 가장 오래된 취미는 애니메이션 시청인데 애니메이션에 대해 리뷰를 한다거나, 작가나 성우에 대해 소개한다거나, 어느 제작사의 특징은 무엇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더 파고들지는 않았다. 파고드는 순간 특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단순하게 시간 때우는 용으로 애니메이션을 봤다.(파고들 생각이 없다.) 일본어라도 능숙하게 하면 남는 것이 있었다고 말할 텐데 그렇지도 않다.(새해 목표로 일본어 공부나 일본어테스트 응시를 정한 적은 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회사 사람들의 특기를 한 번 떠올려보자. 원ㅇ씨는 나이키 한정판 운동화 추첨에 응모하여 1년에 2-3개씩은 당첨된다고 한다. 팔 생각이 없는지 본인이 신고 다닌다. 직접 도색을 하기도 한다. 콘솔게임을 좋아하고 잘하는 것 같다. 서예를 배워서 회사에서 주최한 예술대전에 출품도 했다. 정ㅇ씨는 동양화 미술학원에 다닌다. 한지 위에 동양화용 물감으로 채색을 하는데 색이 아주 곱고 예쁘다. 방문으로써도 좋을 크기의 그림을 예술대전에 출품했다. 윤ㅇ씨는 골때녀가 유행하기 전부터 여자축구모임에 나갔다고 한다. 요즘은 주 2회 테니스를 배우고 있다. 태ㅇ씨는 중고책방에서 가치 있는 책을 찾아 모은다고 한다. 동ㅇ씨는 바둑을 잘 둔다. 미ㅇ씨는 발레를 배운 지 7년이 되었다고 한다. 영ㅇ씨는 사주를 볼 줄 안다.
만년필씨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자신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장점과 특기를 살려서 어떠한 분야를 접했을 때 그 사람이 떠오르게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의 분야를 만들지 못한 것 같다. 학생시절에는 '나'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를 틀 안에 가두는 것이 싫었다(고 변명해 본다.) 그래서 미래를 무한하게 열어두고 생활했다. 그것이 가능성을 열기는커녕 '나'라는 존재의 기둥을 세우지 못하게 된 원인이 된 것 같다.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달리지 못했더니 지금까지도 흔들리며 흐리멍덩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올해는 특기란에 '탁구'를 적어보려고 한다. 1월부터 주 2회 탁구 레슨을 시작했다. 이 레슨은 꼭 1년 동안 유지하려고 한다. 시작만 하고 제대로 끝을 맺지 못했던 나의 뿌리 얕은 삶에 '탁구'라는 영양제를 뿌려보고자 한다. 워낙에 고수님들이 많아서 1년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겠지만 어쨌든 1년을 유지했다는 것 자체로 목표달성으로 볼 수 있을 테니까. 2023년 12월 29일에 올릴 브런치 글에는 '탁구 레슨 1년 받고 동료들과 시합을 즐기고 있어요'하고 보고할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