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을 이해해보려는 노력
'어제 좀 쉬었음 니가 한건 설거지하면 안되냐'
'배껍질도 싱크대 그대로..아 진짜 짜증나네 치우는 사람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나?'
'그대로 두고 가라'
'머가 잘못인지 모르지'
'니만 살면 그렇게살고'
또 시작이다. 3월 1일에 나는 쉬고 신랑은 출근을 했다. 쉬었다고는 해도 집에 누워있었던 것이 아니고 친정에도 가고 조카가 개업했다는 네일샵에도 가고 장도 봤는데. 빨래도 돌리고 LA갈비도 재어두고 등쿠션도 큼지막하게 만들었는데. 그래도 설거지를 안했다는 이유로 이렇게나 구박을 받는다.
우리 신랑놈은 그렇다. 남들 쉴 때 본인만 일하는게 그렇게나 화가 난다고 한다. 특히 내가 쉬는 것이. 나만 행복한 꼴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사랑하면 나는 힘들어도 상대방은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나? 아니라고 한다. 사랑이라는 핑계로 사람을 노예로 만들 생각은 하지 말란다. 노예는 무슨.
작년 초까지만해도 신랑과 미친듯이 싸웠다. 21년도에는 협의이혼 접수를 하고 오기도 했다. 신랑을 배려하지 못한 나의 행동(독단적인 행동)에 의해 마음이 크게 상한 신랑과의 관계 회복은 정말 어려웠다. 그 당시라면 이런 상황에서 백프로 전화기를 붙잡고 밖으로 뛰쳐나가 신랑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가 무너질 정도로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포기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이해한 것 같기도 하다. '저 인간은 성격이 왜 저모양일까'에 집중하기보다 '저 인간은 원래 그런 성격이다'에 집중했다. 회사에서 얼마나 힘들면 본인은 못 쉬는 상황에 저정도로 화가 날까. '그러게 더 열심히 공부를 하지 그랬냐'는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전쟁이다.(이미 많이 저질렀다.) 신랑이 원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고 공감이다. 지난 4년간 본인이 그렇게 말해왔다. 투덜거리면 '아이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이야기해주는 것. 그런데 투덜거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성질을 부리는 것이 문제다.
우리집은 처음 가사분담을 할 때 설거지와 분리수거는 신랑이, 나머지는 다 내가 하기로 정했다. 나는 설거지가 정말 하기 싫었다. 컨디션이 무너지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는 상황이 오면 손가락 피부가 벗겨진다. 세재나 물에 닿으면 안좋은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이렇게 정했다. 그러나 한 때 신랑은 설거지를 하면서 화를 냈다. 그 때는 한 번만 더 화를 내면 식기세척기를 사겠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평생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어머니가 빨래해주는 옷을 입고, 어머니가 청소해준 방에서 지낸 남자가 결혼하고 집안일을 하게 되니 많이 힘들었겠지. 근데 나도 마찬가지다. 신랑은 식기세척기 살 돈이 아깝다며 본인이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또 화를 내곤 했다.
요즘은 성질을 부려도 그러려니한다. 원래 저런 사람이고 원래 저런 성격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상처받으면 내가 너무 힘들다. 21년도 겨울에서 22년도 봄까지 나는 심리상담을 받았다. 여태 누군가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한 적이 없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듯 그 누군가도 나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친구라고 생각한 사람이 실제로는 적인 경우도 많았다. 부모님에게조차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다.(부모님과 관계 설정을 잘못한 것 같다고는 생각한다.) 엄마 껌딱지인 친구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곤했다. 그러다가 상담사에게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굉장히 마음이 후련해졌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나에게 이렇게 대하는 사람에게 저렇게 행동해야한다. 그러한 것들을 듣고 실천에 옮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다 괜찮아졌다.
내가 마음을 넓게 가지고 신랑을 받아주기 시작했더니 신랑도 달라졌다. 그건 정말 놀라운 변화였다. 이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 누구 하나가 받아주지 못할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은 상태일 것 같다. 나는 아직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다. 신랑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아이고 그랬어요? 우리 윤서방이 오늘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아이고 그랬어요? 우리 여보가 짜증이 났어요?'하고 받아줬다. 가끔은 너의 행동에 의해 내가 이정도로 화가 났으니 그만하라는 경고도 했다.
얼마전 신랑이 야간 근무하는 주에 짜증을 심하게 부렸다. 나는 똑같이 '아이고 그랬어요?'로 대응을 했다. 한참 짜증을 내던 신랑은 곧 본인이 야간조라 잠을 못자서 예민한 것 같다고 당분간 본인을 피하라고 이야기했다. 이러니 이혼을 안하고 살 수 있는 것이다.
3월 1일 배껍질 사건도 저 대화 이후로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옆에서 자고 있는 신랑 옆에 붙어 한참을 부비적거리다가 출근을 했다. 하루가 지나고 마음이 어느정도 풀렸는지 오후에 신랑은 전화로 한 번 배껍질 이야기를 하고, 나는 앞으로는 주의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평화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