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연말에는 할머니를 데리고 나훈아 공연에 다녀왔다. 언뜻 생각하면 효도했네 ~ 할 수 있겠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는 혼자서도 가고 싶은 만큼 나훈아 오빠의 팬이고, 나만큼 나훈아 노래를 잘 아는 사람이 내 주변에 할머니밖에 없어서 같이 다녀왔다. 할머니와 손녀라 하면 떠오르는 보편적인 관계에서 우리는 아마 한참 벗어나있다. 우리는 서로 지독하게 유치하고 끈질기게 얽혀있는 사이다. 나는 할머니를 보면서 사람이 저렇게나 깊을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고 경외하는 한 편, 가끔은 사람이 저렇게 쪼잔할 수도 있구나 하고 눈을 흘긴다. 그리고 반대로 할머니만큼 나의 민낯을 잘 아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없다. 그는 가끔 85세의 신체와 지혜를 가지고 8.5살의 조카처럼 군다. 물론 비슷하게 구리고 하찮은 내 모습을 그녀는 매 순간 목격해 왔다.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은 꼿꼿한 자세와 우렁찬 목소리,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보며 세상 쿨하고 멋진 할머니라고 그를 평하겠지만, 사실 그는 뼛속까지 충청인이다. 아녀유 아녀유를 세 번이나 반복하고서야 속내를 내보인다. 나는 20년간 그 대답을 듣고 자란지라 이제는 그 속셈에 말려들지 않는다. 진짜 아녀유 인지, 가짜 아녀유 인지 한 번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안 먹는다는 말이 너무 먹고 싶다는 말이 될 수도 있고, 귀찮아 죽겠다는 말이 자기 좀 밖으로 데리고 나가달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80년을 넘게 살면서 뭔가를 해본 적이 없다는 그녀의 발언은 매번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나보다 3배는 더 사는 동안 당연히 이건 해봤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의심이 들어도 그녀는 진정해본 적이 없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그녀로부터 세상을 배웠는데, 그런 그녀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예를 들면, 혼자 여행 가기, 콘서트 공연 보기, 같은 것들. 그래서 나의 나훈아 오빠 공연에 그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그녀는 예상대로 그런 거 가서 뭐 하냐, 이미 티브이로 다 봤다고 말했지만, 이미 표를 다 사놨다는 말에는 더 이상 볼멘소리를 하지 않았다. 가족들 앞에서는 입을 꾹 다물고는 노인정 가서는 신나게 자랑을 깠다고 추후에 그녀에게 직접 들었을 땐 그녀가 너무 웃겼다. 일생의 과제를 ‘자랑 까기’로 여기는 할머니가 많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훈아 오빠는 나도 처음 봤는데, 정말 멋있었다. 뭐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흰 러닝셔츠와 꽉 낀 청바지를 입고 나오는 파격적인 등장도 기가 막혔으며 완벽한 라이브 솜씨는 넋을 잃고 봤다. 동년배 친구들을 배려해서인지 미스터 트롯만 한 가사도 띄워주고, 관록과 센스에 보통이 아니었다. 기억나는 장면 중 몇 가지를 꼽자면,
첫째. 첫 곡 끝나자마자 나훈아 오빠가 ”오늘 공연하는 동안에는 우리 다 친구 하는 거야 알겠지? 응 해 알겠지? “라고 하자마자 객석에서 응!!!! 하는 소리가 퍼져 나오던 것. 엠카운트다운인 줄 알았다. 물론 그녀도 ”웅!!!” 하는데 어찌나 새롭고 귀엽던지.
두 번째는 나훈아 씨가 ’ 요즘 청년들이 아를 안 낳는다.. 이거 문제다..‘라고 멘트 하길래 ‘아 씨 잘못 걸렸다 역시.. ’라는 생각이 스미자마자, 갑자기 화면에 70대에 세 쌍둥이를 낳은 인도인 뉴스를 틀어주더니 ’야 친구들아 우리가 대신 낳자! 할 수 있다! 우리도!‘라고 하는 데서 기절했다. 너무 감동스러워서 …. 이 시대의 참 어른을 드디어 만났다 싶어서 …
마지막 장면은 엔딩 곡으로 ’ 사내’를 들었을 때, 사내의 가사는 아예 어디 액자에 걸고 싶을 만큼 내가 살아가고 싶은 모습인데 그 가사가 형상화되어 있는 사람이 눈앞에서 쩌렁쩌렁 외치고 있는 걸 보자니 마음이 막 벅찼다. 나훈아 이 할아버지는 도대체 젊음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살고 있는 건지 대단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이 모든 순간에 내 옆에 그녀는 정확히 나보다 세 배쯤은 더 상기된 표정과 행동으로 공연을 즐겼다. 평소엔 관절이 쑤신다는 말을 달고 살더니, 노래를 따라 부르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나서 양옆으로 몸을 흔들고 옆자리 아저씨한테 말을 걸었다. 20년을 함께 살았어도 처음 보는 그녀의 얼굴이 있었다. 나는 나훈아를 눈으로 좇다가 공연 중간부터는 내 옆의 빨간 모자를 쓴 소녀팬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나중에 그녀가 ‘내가 뭘 좋아해 ~ 그냥 따라 간 거지~’라고 할 때를 대비해 제시할 증거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눈이 펑펑 오던 한 해의 마지막 날, 공연이 끝나고 그녀와 손을 맞잡고 거리를 걸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년에도 공연 보러 갈래? 가고 싶어?라고 묻자 그녀는 반짝하는 눈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때까지 살아만 있으면 또 가지!” 이렇게 확실하고 날카로운 조건부를 나는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간난이다. 갓난아기 할 때의 간난. 언제 자식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에, 이름에 대한 뜻이나 미래 따위는 생각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앞으로 남은 그녀의 시간 동안 그녀는 나에게 더 갓난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같이 맛있게 먹은 음식을 처음 본다고 하거나, 개봉도 안 한 영화를 이미 봤다고 우길 수도 있다. 그럴 때 나도 모르게 답답해하고 귀찮아하게 될 모습이 이미 그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엔 제발 내가 전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길 남몰래 오래 기도했다. 그저 이름대로, 이름만큼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잊지 않기를 열심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