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반복한 실수

라이팅룸에서

by 샘을 아는 사슴

내가 반복한 실수.

나는 나를 믿는 것을 반복한다. 내 실수의 이름은 끝없는 자기 믿음과 자기 확신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내가 망했는지 모른다. 실수를 의도치 않았지만 잘못된 일로 정의 내린다면 내 인생 자체가 실수라고 보아야 응당하다. 나는 인생 내내 실수했고, 실수 중이며 몇 년이 지난 미래에도 틀림없이 실수할 예정이다. 그렇지만 다시 힘주어 말하지만, 내 실수의 속성은 단 하나다. 나에 대한 믿음, 그것뿐이다. 그래서 실수뿐인 이 인생이 크게 망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더 솔직하게는 알아야 되나 싶다.


이십 대 후반이 되도록 애인이 없는 것,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지 않고, 다닐 마음도 없고, 다닐 노력도 하지 않는 것, 모아놓은 돈이 아주 적당히만 있는 것, 노후가 없는 것처럼 사는 것 … 돌이켜 보면 아마 모든 것이 실수였다고 후회하는 내가 벌써 눈에 그려지기도 하지만, 이것 자체가 내 인생의 속성이고, 그중 절대 속성이라고 생각하고 믿어버리니까 차라리 마음이 단단해진다.


이 일도, 저 일도 크고 작게 봐도 나의 삶에서는 다 같은 실수일 뿐이다. 벌어지면 당연히 벌어졌어야 할 실수고, 안 벌어지면 벌어질 뻔했던 실수고 … 뭐 이 정도의 차이만 있겠다. 다른 데 가서 쩨쩨하게 구는 한이 있더라도, 이 실수 감별사의 역할은 삶에서 좀 놓기로 했다.


그래야 내 삶이 비로소 넓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강하게 스민다. 그래야 그나마 덜 사람을, 사랑을 덜 무서워하는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 외국 나가서 낯선 이에게 말 한마디라도 더 걸어볼 수 있을 것 같고, 명문을 쏟아내는 굵직하게 대단한 작가들의 문장에 감격해 그 옆에 구리다는 걸 아는데도 내 언어로 뭐라고 찌끄릴 것 같고, 정말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게 나타난 내가 좋아하게 된 애한테도,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그러니까 나를 한 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냐고, 분명 너도 좋을 거라는 허무맹랑한 선언도 호기롭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수를 기본인 삶으로 살아야 요가 수련할 때 머리 서기 연습하다가 앞으로, 옆으로, 뒤로 쿵!! 하고 떨어져서 모두가 날 쳐다보고 심지어는 약간 낄낄대는 게 느껴질 때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머리칼을 질끈 묶고 머리 서기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수를 기반으로 해야, 예상에도 없던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다가 새로운 땅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 것이다. - 것이다.로 쓰는 내 문장들이 -이다. -였다. -다. 하는 말들로 끝난다. 여기서는 ‘-있을 것이다’라고 문장을 끝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는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2025년 4월 26일, 구헌이를 데리고 온 라이팅 룸에서. 구헌이는 저 멀리에 앉혀둔 채 각자의 자리에서 나는 내가 반복한 실수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내 옆 옆 옆 옆자리의 구헌이는 책을 읽는지, 사장님이 가져다주신 쿠키를 먹는지, 짧은 메모를 적는지, 혹은 무심하게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는지 나는 곁눈질로도 방해가 될까 확인하지 않지만, 그래도 같은 공간에 구헌이를 두고, 나는 실수가 내 인생 전부라고 했다가, 실수는 별거 아니라고 했다가, 이제는 실수를 필수적인 것이라며 옹호하고 심지어는 실수를 찬양하는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실수를 찬양하는 데까지는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뭔가가 겁나거나,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지거나, 나를 잡아먹고 나를 잃을 것 같다면 글을 써야겠다고 다시 깨달았다. 내 글쓰기는 언제나 정말 100%의 확률로 저주로 끝나는 법이 없다. 100%의 확률로 앞을 보며 끝난다. 아직도 초등학생 때 쓰던 다음부터는 더 잘해야겠다. 내일은 즐거우면 좋겠다. 따위의 마무리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지루하고 진부하더라도 이제는 그것이 내 글쓰기라는 걸 믿는다. 내 인생의 절대 속성이 실수라면, 내 글쓰기의 절대 속성은 희망인 것이다.



라이팅룸에서 써뒀던 글이 좋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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