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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니의 글적글적 Jun 24. 2023

 방심 금지(ft 자나 깨나 차조심)

마흔 살 힐링 담론: 감사





  해가 어스름해질 무렵, 우리는 여수 여행을 마치고 자동차에 올랐다. 아직 더 둘러볼 곳이 남았지만 다음을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남편이 내비게이션 화면을 터치하여 목적지를 집으로 설정했다. 아이들은 곧바로 음악을 틀었다. k팝이 자동차 가득 신나게 흘렀다. 아쉬운 여행을 위로하듯 아이들이 떼창을 불렀다. 


  자동차가 얼마나 달렸을까 내비게이션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고속도로 진입을 알렸다. 멀리 파란색 하이패스 구간이 보였다. 수많은 자동차들이 한 곳을 향해 느리게 움직였다.

  “얘들아? 이번 여행에서 뭐가 제일 기억나?” 

  남편이 자동차 속도를 줄이며 말했다.


  “음, 간장게장!”

  “나는, 꼬막 정식!”

  큰아이가 말하자 뒤이어 작은아이가 맞받아쳤다.

  “흐이구, 그렇게 열심히 다녔는데 기억 남는다는 게  음식이야?”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나는 가족 여행의 포인트는 추억 만들기라고  생각한다. 음식이든 뭐든 상관은 없지만, 오늘따라 묘하게 서운한 감정이 든다. 결국 아이들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그때, 남편이 룸미러를 보며 작은아이에게 말했다. 

  “그런데, 성지는 안전벨트 한 거야?

남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얼른 얼굴을 돌려 아이들의 벨트를 확인했다. 작은아이의 안전벨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자미 눈을 하고 아이를 노려보았다.

  “왜에? 여기 있잖아.”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배에 걸친 벨트를 보란 듯이 가리켰다. 

  “야! 곧 고속도로 올라갈 텐데 똑바로 안 매!”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놀란 아이가 안전벨트를 고쳐 매는 사이 정적이 흘렀다.     

 




  그때였다.

  쿵! 하는 굉음과 함께 자동차가 옆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언젠가 범퍼카를 탔을 때처럼 몸이 튕겨 나갈 듯한 충격이었다.  자동차가 비명과 함께 멈춰 섰다. 사고였다. 우리는 먼저 서로의 상태를 살폈다. 온 가족이 자동차를 타고는 처음 있는 일이라 더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모두 외상은 없어 보였다. 남편은 자동차를 갓길에 세우고 문을 열고 나갔다. 해는 지고 있고, 고속도로 위 자동차들은 무섭게 달렸다.     


  수십 분이 흘러 상대 차량과 사고절차를 나누고 난 뒤  우리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속도가 날수록 바퀴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쉑쉑' 오른쪽 뒷바퀴 휀더가 안으로 밀려 들어가 타이어에 부딪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소리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들에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긴장과 불안함이 반복되었다.

  

  조금 뒤  반갑게도 졸음쉼터가 보였다. 남편이 졸음쉼터에 차를 세웠다. 곧바로 자동차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견인이 언제 될지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연휴이고 고속도로라서 그렇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난감하면서도 야속하게 느껴졌다. 나는 남편과 함께 임시방편으로 휀더를 힘껏 잡아당겨 보았다. 또 오른쪽 바퀴에 가해지는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트렁크에 있는 가방들을 반대쪽으로 옮겼다. 몸이 가벼운 작은 아이와 큰아이의 자리를 바꿨다.  그렇게 해서 남편은 다시 자동차를 조심스레 운전했다. 우리는 깊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대구에 도착했다.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 자동차는 부서졌지만 우리는 무사히 집으로 왔다. 더 크게 다치지 않은 것도 불행 중 행운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안전벨트를 다시 고쳐 맬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신의 한 수’,‘감사’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우리는 의도치 않은 우연의 연속에서 살아간다. 좋은 일만 가득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인생이겠지만 다르게 보면 더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아 오히려 감사한 일상이다.  인생이라는 도로 위에서는 초록불만 존재하지 않는다. 고요하기만 한 초록불, 위험한 빨간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 노란불이 반복된다. 

  

  요즘 내 일상은 노란불이다. 초록불에서 빨간불이 오기 전에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가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마침 남편이 아이를 보지 않았더라면, 아이가 안전벨트를 고쳐 매지 않았다면, 그 자동차가 더 세게 달려왔다면 ….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기 전,  강도가 너무 세서 후회로 남기 전,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준 신호였을까? 새삼, 살면서 지켜야 할 기본과 선택에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 결과는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니 말이다.     


  아이들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바뀌었다고 말한다. 교통사고는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인 동시에 잊지 못할 추억이란다. 어쨌거나 추억 쌓기는 제대로 한 듯.

  ‘방심하지 말자’ 작은 아이의 일기를 읽다 나도 모르게 쓸쓸한 웃음이 난다.     






사진© ieroman1,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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