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맛, 알지? 맛있는 음식이야기: 삼겹살
봄기운이 가득한 2월의 어느 날, 오 남매가 시골집 마당으로 하나둘 모여든다. 우리 남매는 결혼하고 서로 다른 도시에 살지만, 되도록 주말이 되면 시골 친정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곳에는 여느 펜션이나 캠핑장처럼 비수기와 성수기 따위를 따져 묻지도 않을뿐더러, 별도의 숯 이용 요금도, 매너 타임도 없다. 한적한 시골집 마당은 늘 열려있는 곳으로, 온 가족이 함께 바비큐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우리 가족은 삼겹살을 좋아한다. 소고기나 닭고기, 양고기, 등 다양한 고기가 있지만, 그중에도 삼겹살은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이다.
바비큐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고기 준비는 내가 맡는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편 담당이다. 고기 파티 날 아침이면 남편과 나는 함께 동네 정육점에 가는데, 모든 고기가 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보이는 나와 달리 남편은 늘 섬세한 눈빛으로 고기를 고른다. 마치 그날 고기 상태가 우리 식탁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처럼. 늘 가족들로부터 고기가 신선하다는 칭찬과 지지를 받아서인지 남편은 고기에 대한 자부심이 특별하다. 냉장 쇼케이스 안에 가지런히 진열된 고기 한 조각 한 조각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남편의 모습은 마치 고기 명인을 닮았다.
해가 산마루에 걸릴 때 즈음 열다섯 명의 식구가 모두 한 마당에 모였다.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이 먼저 아버지가 숯 통에 불을 피우신다. 마치 행사 시작을 알리는 성화 채화처럼. 마당 한 편에는 찬바람과 한기를 막아줄 캐노피를 형부와 남편이 설치하고, 아버지가 등유 난로를 피우는 사이 제부가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를 펼친다. 그러면 나는 감성을 더해 줄 알전구를 캐노피 주변에 둘러친다. 엄마는 집 앞 텃밭의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신선한 상추를 따온다. 언니는 고기와 함께 먹을 마늘장아찌와 파절임 같은 밑반찬과 식기류를 주방에서 챙겨 나온다. 냉장고에 넣어둔 시원한 콜라와 맥주를 동생네가 가져오고, 아이들은 테이블 앞에 모여 서로 도와가며 수저를 놓는다.
숯에 불이 제대로 붙으면 그릴로 옮겨 담은 후 석쇠를 올린다. 숯불이 본격적으로 붉게 타오르고 석쇠가 뜨겁게 달궈진다. 형부와 남편은 연 살구색의 두툼한 삼겹살을 한 덩이씩 석쇠에 올린다. '촤아아' 순간 불판 위에는 소나기 소리가 쏟아진다. 그러자 아이들은 기대와 설레는 눈빛을 하고 그릴 주위로 모여든다. 형부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석쇠 위에 올려진 삼겹살에 허브솔트를 솔솔 뿌린다. 곧, 칼집이 촘촘하게 들어간 고기 꽃이 피어나면서 고소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형부와 남편이 동시에 고기를 뒤집자, 삼겹살에서는 기름이 뚝뚝 떨어지고 윤기 있는 갈색으로 익어간다.
마당 가운데에서 완성된 삼겹살 구이가 드디어 캐노피 안의 테이블까지 배달된다. 나는 가위를 들고 앞뒤로 노릇하게 잘 익은 삼겹살을 한입 크기로 자른다. 밖에서 고기 굽는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보던 아이들이 캐노피 안으로 쪼르르 들어온다. 오돌뼈를 도려낸 먹음직스러운 삼겹살은 아이들과 부모님이 앉아 계신 테이블 가까이 놔 드리고, 나도 자리에 앉는다. 나는 밭에서 금방 따온 야들야들한 상추에 깻잎을 한 장 포갠다. 다른 한 손은 그릴에서 금방 구워낸 삼겹살 두 점을 집어 깻잎 위에 가지런히 올린다. 얇게 저민 마늘과 작게 자른 매콤한 청양고추, 파절임을 고기 위에 올린 뒤, 마트에서 산 고기전용 쌈장을 젓가락으로 푹 찍어 바르고, 마지막으로 상추로 한데 싸맨다.
이제 크게 입을 벌려 와앙! 쌈장의 감칠맛과 고소한 삼겹살, 깻잎, 마늘, 청양고추의 알싸하고 향긋한 맛이 한데 어우러져 입안 가득 퍼진다.
“거, 자네들도 어여 들어와 먹게.”
엄마가 목청을 높여 사위들을 부른다.
이때,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가 맥주잔을 들고 건배를 제안한다.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나이지만 고소한 삼겹살과 거품이 가득 찬 맥주는 놓치지 않는다.
마당 한 편에서 고기를 굽던 남자들이 캐노피 안으로 들어오고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잔을 든다.
“모두의 건강을 위하여!”
짧은 건배사가 끝나자 맥주의 청량감이 목구멍을 적신다. 다시 삼겹살을 집는 젓가락이 바쁘게 움직이고, 각자의 취향대로 싸인 고기쌈이 테이블과 테이블을 넘어 누군가의 입속으로 마중 간다.
온 식구가 모여 고기를 굽고 굽는 이 순간, 이처럼 함께 준비하면서 맛보는 삼겹살 파티는 우리 가족의 행복을 쌓아 올리는 소중한 시간이다. 각각의 층이 쌓여 하나의 완벽한 맛을 내는 삼겹살처럼, 다양한 개성을 갖춘 우리 가족도 각자의 역할과 존재로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사랑과 이해로 가족이라는 따뜻한 식탁을 함께 하길. 마당에 펼쳐진 캐노피 안에는 삼겹살의 고소한 향과 함께 우리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