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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니의글적글적 Apr 24. 2024

내 생일엔 스테이크를 부탁해

그 맛 알지? 맛있는 음식이야기: 스테이크




  우리 집 4월 달력에는 대왕 별이 한 개 그려져 있다. 그 표시로 말하자면 큰아이의 15번째 생일이다. 세 살 터울의 형제는 그날이 다가올수록 들뜨기 시작하는데 주로 무슨 음식을 먹을지, 받고 싶은 선물은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오늘도, 두 아이가 간식을 먹으려고 식탁에 둘러앉았다. 형제는 어김없이 ‘생일 작전회의’로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생일부터 주말까지를 생일 주간으로 정해 소고기, 연어 초밥, 갈비, 마라탕 등 여러 음식을 먹을 것이며, 아빠를 설득해 브롤스타즈 유료아이템까지 받아 내겠다는 전략이었다.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아이들의 토론이 맹랑하다 싶어 나도 넌지시 대화에 끼었다. 


  “너희들 생일계획이 너무 거창한 거 아냐? 엄마 생일엔 뭐 해 줄 건데?”

  “몰러.”

  “몰라? 흠… 혹시 말인데 사랑의 뽀뽀 이런 거라면 미리 반사할게. 엄마 생일은 기억하고 있는 거지?”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웃으며 물었다.

  “아니. 모르는데?”

  형제는 동시에 아무렇지 않게 흘려 말했다. 

  “뭐래 얘들이? 장난하지 말고.”

  “진짠데.”

  “이번엔 진지하게 대답해. 정말이야? 너희 엄마 생일도 모른다고?”

   나는 아이들의 대답이 충격이었다.

  “엄마 생일은 음력이잖아. 그래서 자꾸 바뀌는걸… 그걸 우리가 어떻게 기억해.”

  나는 작은아이의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그럼, 양력은? 엄마 양력 생일은 알고?”

  “….”

  “이것들이 진짜! 내가 15년을 헛수고했네. 먹여주고 입혀줬더니 엄마를 아주 그냥!”

   내 목소리는 점차 높아지면서 빨라졌고, 아이들은 순간 얼음이 된 듯 조용해졌다.      

 

 잠시 후, 먼저 입을 연 건 눈치 빠른 작은 아이였다. 

  “엄마, 엄마 생일에 받고 싶은 거 있어?”

  나는 잠깐 망설였다. 

  “그날은 내가 30만 원까진 줄 수 있어.”

  나는 엄마 생일조차 모르는 자식들이 얄밉고 섭섭했지만, 30만 원은 끌렸다. 너무 속보이나 싶다가도 사실 ‘그 돈이면 실 금반지도 살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깊은 호흡을 쉬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엄마는…. 우선, 성우가 그렇게 얘기해 줘서 고마워. 30만 원은 정말 큰돈인데, 학생한테 그 많은 돈을 받긴 좀 그렇고. 그래서 말인데 … 스테이크. 엄마 생일엔 너희가 스테이크를 사주면 좋겠어. 또 꽃다발도!”

  불현듯 내 머릿속에는 스테이크가 떠올랐고, 아이들에게는 허투루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듯 눈에 힘을 주었다. 

  “알았지?”

  “콜!”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흔쾌히 대답했다.     





   스테이크와 꽃다발. 내게 스테이크는 단순한 요리와 꽃 이상이었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나 드라마 속 스테이크는 특별한 날에 먹는 아주 귀한 음식이자 사랑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예쁜 옷을 입고, 고기를 썰어 보고 싶었다. 물론 내돈내산 말고.

  다가오는 내 생일에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은은한 향기가 가득한 레스토랑에서,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꽃다발을 내게 건네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몰랐던 것처럼 놀라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스테이크를 자르고, 풍미 가득한 육즙이 내 혀에서 터진다면, 아마 그건 우리 아이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확인하는 증표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나에게 뭘 해줄 거라는 큰 기대는 안 한다. 다만 지금 드는 생각은 아이들이 커가는 동안, 그렇게 매년 내 생일이 다가올 때면, 우리 집 형제가 스테이크를 떠올리고, 나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늙어서 죽어도 자식들에게 추억의 한 장면을 남길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시간이 흘러 철부지 소년들이 나이 지긋한 어른이 되어도 생일날에는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기를. 아울러 지금 형제에게 무엇보다 바라는 건, 8월 달력을 넘겨 내 생일에도 대왕 별을 그려주기를, 나는 오늘도 사춘기 소년들에게 투정해 본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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