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맛 일지? 맛있는 음식이야기: 갈비찜
15년 전, 결혼 후 처음 맞이한 집들이였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양가 가족들을 차례대로 초대했다. 신혼집은 대구 외곽의 작은 아파트였는데, 그곳에서의 첫 가족 만찬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전통적인 예물이나 예단 같은 결혼 준비 의례는 과감히 생략하고, 그 비용을 아껴 남편과 함께 마련한 소중한 집이었기 때문이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나는 집들이 음식 리스트를 작성했다. 소갈비찜, 잡채, 약밥, 문어숙회, 샐러드, 무쌈말이 등 다양한 메뉴가 떠올랐다. 퇴근 후엔 남편과 함께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물건을 하나하나 고를 때마다 집에 초대된 손님들의 반응을 상상하며 설레기도 했고, 준비를 잘해야 한다는 작은 부담감도 느껴졌다.
여러 음식 중에서 내가 가장 신경 쓴 요리는 소갈비찜이었다. 잔칫날에 빠질 수 없는 메뉴일 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갈빗살과 달콤한 양념 맛은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였다. 무엇보다 처음 도전하는 음식이어서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요즘 같았으면 식당을 예약하거나 배달 음식을 시켰겠지만, 그때는 새 보금자리를 자랑하고 직접 음식을 차려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나는 결혼 후 언젠가 교보문고에서 구입 한 한복선 요리연구가의 ‘엄마의 밥상’을 펼쳐 들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적어도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집들이 당일 아침, 남편도 갈비찜 준비에 동참했다. 그는 식탁 한편에 요리책을 펼쳐놓고 여러 번 확인해 가며 양념을 만들었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무, 밤, 당근, 고기를 남편이 만든 양념에 골고루 섞은 뒤, 재료들을 전기압력밥솥에 꾹꾹 눌러 담았다. 10인분에 달하는 양이었다. “이제 찌기만 하면 돼! 우리, 꽤 잘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남편이 영양찜 버튼을 딸깍 누르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자신감이 솟는 듯했다. 아일랜드 식탁 위에 자리 잡은 압력밥솥은 듬직한 모습으로 조용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50분 후, 전기밥솥이 경쾌한 멜로디를 울리면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나는 셈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언가를 완성해 가는 뿌듯함에 잠겨 거실에서 상을 차리고 있을 때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밥솥에서는 평소와 다른 불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칙칙’ 하는 기계음이 요란하게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동시에 압력밥솥에서 갈색 증기가 거세게 뿜어져 나와 천장으로 치솟았다. 순식간에 벽과 천장으로 갈비찜 국물이 뿌려진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 주방은 온통 갈색 국물로 뒤덮여버렸다. 나는 당황해서 허둥대다가, “엄마!”,“어떡해!”라는 말만 반복했다. 남편은 순간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곧바로 밥솥으로 달려갔다. 그는 전기밥솥의 코드를 재빨리 뽑고, 서둘러 하얀 행주를 집어 들고는 김이 솟구치고 있는 밥솥 위로 냅다 던졌다. 그러자 성난 증기가 차츰 진정되더니 뿜어내는 국물의 양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갈비찜이 휩쓸고 간 주방은 참혹했다. 새로 도배한 벽지부터 주방 곳곳까지 갈색 국물이 여기저기 튀어있었고, 마치 전장을 방불케 했다. 특히 천장에 남은 갈색 자국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완벽할 거라 믿었던 갈비찜이 엉망이 된 것도 속상했지만, 곧 도착할 가족들에게 이 난장판이 된 신혼집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속이 더욱 쓰렸다.
“오! 나쁘지 않은데, 그래도 갈비찜 맛은 살렸네!” 남편이 밥솥을 열며 농담 섞인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국물을 보며, 내 머릿속엔 오직 ‘이 사태를 어떻게든 빨리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남편은 머쓱한 듯 밥솥 뚜껑을 열고 쪼그라든 갈비찜을 서둘러 냄비로 옮겼다. 우리는 급하게 주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남편은 천장에 튄 국물 자국을 집중해서 닦았고, 나는 벽과 바닥에 튄 흔적들을 정리했다. 다행히 실크 벽지라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지워졌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그 황당한 상황이 우습기도 했다.
조금 뒤, 친정 가족들이 집에 도착했다. 온 가족이 거실 중앙에 차려진 상을 둘러싸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어설프게 완성된 갈비찜을 한 입 먹으며, 주방에서 벌어진 고군분투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웃음 섞인 자조로 그 과정을 이야기하자 가족들은 모두 박장대소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래도 이렇게 기억에 남을 추억 하나 만들었네!”라며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갈비찜 소동 덕분에 집들이는 오히려 유쾌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그날 이후, 갈비찜은 우리 부부에게 더욱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비록 첫 집들이에서 완벽한 요리를 선보이지 못했고, 밥솥에서는 밥을 지을 때마다 한동안 갈색 국물이 흘러나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날 주고받은 웃음과 격려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동시에,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정량을 지키는 것이라는 귀중한 교훈도 얻었다. 이제는 적당한 양을 넣은 냄비에서, 오랜 시간 뭉근히 끓여낸 갈비찜의 진짜 맛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완벽할 수 있을까? 지금은 갈비찜 국물이 천장까지 튀는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나는 여유 있게 웃으며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이렇게 실수하고 배워가는 거지.” 그렇게 우리의 결혼 생활도 서툴지만, 서로의 사랑과 웃음 속에서 조금씩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