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맛 알지? 맛있는 음식이야기: 된장찌개
“또 된장찌개야?”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코끝을 찌르는 쿰쿰한 냄새에 나는 입이 삐죽 나왔다. 새로운 메뉴에 대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매번 뻔한 메뉴에 괜히 음식 투정을 해보지만, 엄마는 그저 뚝배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보글거리며 끓어오른 거품만 걷어내고 계셨다. 그리곤 짧게 말씀하셨다.
“이게 보약이지, 어서 씻고 앉아.”
어린 시절, 우리 집 부엌에서 풍기는 냄새의 팔 할은 된장찌개였다. 하루 이틀 아니 계절이 바뀌어도 상위에는 투박한 뚝배기가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무와 애호박만 들어 있는 누런 국물은 내겐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그 시절 내 입맛은 수수한 음식보다는 혀끝을 자극하는 감칠맛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이 학교 가기 전 급식표를 확인하며 설레는 것처럼, 그때의 나도 저녁상에 오를 무언가를 은근 기대했었다. 비엔나 소시지가 가득 들어간 부대찌개나 케첩이 듬뿍 뿌려진 두툼한 계란말이를 상상하다가 된장찌개를 마주할 때면, 왜 그리도 짜증이 나던지.
급기야 짜증은 서글픔으로 번져 갔다. ‘어른들은 대체 왜 이런 음식이 맛있다는 걸까?’ 자식 입맛에는 좀처럼 관심 없는 부모님이 야속했고, 정말로 된장찌개가 맛있어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형편상 다른 반찬을 내기 어려워서 달래려는 말인지 알 수 없어 더 서글퍼졌다. 그때는 엄마의 속내를 알 길 없었고, 나는 텔레비전 속에 나오는 온갖 화려한 맛을 동경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 독립한 뒤에는 마음껏 외식 메뉴를 고를 수 있게 된 것을 자유이자 행복이라 믿으며 살았다.
그러다 반백의 나이에 이르러,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름진 음식으로 한 끼를 해치우고 나면 혀는 즐거웠지만, 몸은 온갖 첨가물을 머금은 듯 무겁고 더부룩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던 음식들이 이제는 속에서 부대끼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받은 건강검진 결과였다. 새빨간 숫자로 찍힌 수치들. 그것들은 그동안의 내 식습관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앞으로의 식생활을 다시 생각해보라는 경고등 같았다. 음식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덜어내자, 조금 더 단순하게, 한 끼를 먹어도 투박하게 먹자! 그렇게 떠오르는 것이 엄마의 뚝배기였다.
새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된장찌개. 왜 자꾸 그 맛이 당기는 걸까. 어릴 적에는 미처 몰랐던, 평범하기 짝이 없던 그 한 그릇이 훗날 내 몸의 허기를 채워줄 애정의 메뉴가 될 줄이야. 멸치 육수에 섞인 된장의 쿰쿰함은 어느덧 구수함으로 변했고, 입천장을 괴롭히던 뜨거움이 온몸을 풀어주는 온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은 “밥이 보약이다.”라며 무심하게 뚝배기를 내밀던 엄마의 말과도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세월이 빚어내고 그리움이 발효시킨 곰삭은 맛.
오늘 저녁에도 나는 가스레인지 위에 뚝배기를 올린다. 천천히 우려낸 육수에 친정 엄마가 손수 띄운 재래식 집된장 한 술을 푹 떠 넣는다. 큼지막하게 썬 무와 달큼한 양파에 아이가 좋아하는 두부도 넉넉히 넣는다. ‘바글바글’ 된장찌개 끓는 소리가 집안을 채운다. 이내 거실 가득 구수한 냄새가 퍼진다. 한때는 그렇게도 밀어내던 이 냄새가 이제는 나와 우리 가족을 식탁으로 불러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