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

<용과 주근깨 공주>의 '용'을 통해 바라본 'justice'

by 아름

가상세계 ‘virtual world’.

“주관적으로 실제 있는 것으로 보이나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

21세기에 들어선 급격한 기술의 발달. 그로 인한 인터넷의 보급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으며 그로 인한 크고 작은 사건/사고 또한 일어난다. 인터넷은 현실에서 우리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 이전에는 채팅 기능을 통해 사람들과 대화하였다면, 이제는 화상의 기능을 통해 카메라로 모습을 보이며, 혹은 ‘메타버스’라고 일컬어지는 가상의 세계에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보다 다양한 소통이 가능해졌다.

보다 사람의 이동 영역 및 다양한 가능성의 영역을 확장시켜 주었다. 요즘은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카메라 기능으로 유튜브, SNS의 인플루언서로서 나설 수 있다. 보다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 현실에서 뽐내지 못한 자신의 창조성, 가능성을 펼쳐낼 수 있는 매우 무궁무진한 장소이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면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모습이 보다 잔인하게 보여지는 곳 또한 인터넷이다.

KakaoTalk_20221127_151059768.jpg <용과 주근깨 공주> 아이를 구하다 죽은 사람을 비방하는 글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는 이러한 인터넷의 긍정적인 부분부터 부정적인 모습까지 모두 보여준다. 주인공 스즈의 어머니는 강가에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아이를 구했으나 자신은 강에 떠내려가 숨지는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당시에 그러한 기사를 인터넷상에서는 “무책임하다”, “자살행위다”, “착한척한다”, ‘이런 사고가 나면 물놀이가 꺼려진다’ 등의 악플을 단다. 비단 영화에서만 보이는 모습일까. 이는 실제를 바탕으로 영화에 차용한 것이다.

호소다 마모루 “작품의 로케를 위해 갔던 시만토 강에서 수난사고가 났고 그곳에서 젊은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 함께 빠지는 경우가 많더라. 하지만 수난사고에 기사에는 현지인은 아닌 듯한 사람들이 댓글에 악담을 하고 있었다. “자업자득”, “자기 책임”이라는 식의 댓글. 물론 동정을 하지 않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댓글을 다는 사람이 현실에서도 그런 말을 할지는 알 수 없으나 ‘인터넷’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만들어낸 가시화된 본심은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일까. 인터넷은 허구의 세계니 그곳에서의 ‘나’는 ‘가짜 나’인가. 우리는 흔히 인터넷상에서 난폭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적’으로 간주한다. 영화의 ‘용’처럼.


‘용’은 수개월 전 ‘U’의 무도관의 갑자기 나타나 연승을 기록한 자다. 하지만 상대의 데이터를 부술 정도로 난폭한 전투 스타일로 소문이 좋지 않다. 하지만 인터넷의 특성인 익명성을 차용하듯 아바타로도 이름으로도 이 ‘용’이라는 자가 누구인지는 ‘U’의 세계에 모든 사람의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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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모습과 벨의 공연 중 난입하여 난투를 버리는 용

‘익명성’

“어떤 행위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는 특성”

흔히, 인터넷상에서 많이 이야기된다. 익명성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기에 흔하게는 악플이 흔한 단점으로 거론된다. 사람들은 익명이라는 갑옷을 입고 자신이 세운 도덕(이 글에서 말하는 정의)에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서슴없이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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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영화에서는 ‘저스티스’라는 집단으로 표현하였다. 저스티스는 자신들이 절대적인 선이며, 정의(justice)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U의 정의와 질서를 어지럽히는 ‘용’을 정의라는 이름의 심판을 한다. 심판. 그것은 U의 세계에서 현실의 모습을 드러나게 하는 ‘언베일’. 익명성으로 이루어지는 가상세계에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만큼 무서운 벌이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 사전적 의미로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영어 ‘justice’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모두가 지켜야 하도록 강제하는 규범. 법.이라 명명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의 사회가. 우리의 역사가 언제나 ‘정의’로웠는가. 애초에 정의는 중립적인 개념으로 악도, 선도 어느 쪽도 아니다. “악법도 법이다” 정의를 바탕으로 세워진 법이 누군가에게는 악이 될 수 있다.

KakaoTalk_20221127_170853403.jpg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규정상 출발이 불가하는 전화

사실 ‘용’은 아버지에게 학대받는 소년이다. 그런 소년을 주인공 ‘스즈’는 돕겠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돌아온 케이의 대답은 절망적이다.

“도와? 어떻게? 돕겠다, 돕겠다, 돕겠다. 몇 번이나 들었지. “아버지하고 얘기하겠다”, “아버지 하고 이야기 나눴다” “아버지가 아주 잘 이해하셨다” 하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았지. 돕겠다 돕겠다 돕겠다 말은 하지만 뭘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로는 뭘 못해. 돕고 싶다. 힘이 되고 싶다. 불쌍해서 동정해서 울지만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 <용과 주근깨 공주> 中 케이의 대사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아서 가정폭력에 피해자가 된 것이 아니다. 도움을 원했지만 결국 변하지 않았다. 매뉴얼대로 했어요. 매뉴얼대로 해야 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없어요. 이런 말을 끝없이 들었을 것이다. 결국, ‘스즈’에 의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도움을 받아보기로 한 ‘용’은 위치를 말할 새도 없이 아버지의 의해 통신이 끊긴다. 가까스로 ‘용’의 위치를 알아내어 공공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화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규정으로 당장 출발하지 못한다. 48시간 후에나 가능하다.” ‘규정’ 앞서 설명한 현실에서의 ‘정의’ 올바른가.

‘U’의 세계에서 이야기하는 정의는 사실 영화를 보면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불편하게 느껴진다. 이는 현실에서의 정의를 잘못된 부분을 영화에서 드러내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법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법이 정말 옳은 것인지는 결국, 사람의 판단이다. 법 또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결정할 수 있다. 무엇을 정의로 만들지를. ‘정의’라는 명분으로 특정 사람의 인권 침해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의 정의의 영역인가를 우리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출처>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

<용과 주근깨 공주> 오피셜 가이드북 호소다 마모루 인터뷰 내용

공식 홈페이지, https://ryu-to-sobakasu-no-hime.jp/chara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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