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 부산에서의 진정한 홀로서기 그 시작.
2024년 7월 30일(월)
나는 엊그제 헤어졌다.
12시가 지났으니 벌써 그저께다.
내 나이 서른, 연애를 처음 해본 것도, 이별을 처음 해본 것도 아니다. 1년 반 전, 약 2년간의 장기 연애를 아주 절절하게 마치면서 다시는 헤어지는 연애는 안 하겠노라고 굳게 다짐했건만 또 헤어지고 말았다.
성격차이였다. 그의 말마따나 누구 하나의 잘못도 아닌 단지 우리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다. 처음에 이것을 아주 모르고 시작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나는 이쯤은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직전 사랑을 끝내며, 이후의 사랑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해보기로 다짐했었으니까. 재미가 없는 사람쯤이야, 이 관계는 나와 그 사람 우리 둘이 만들어나가는 것인데. 그가 조금 재미없으면 어때 내가 웃겨주면 되지 뭐, 대신 그는 다정한 사람이잖아. 하는 어쩌면 안일한 마음으로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던 것 같다.
그와 만나고 약 1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던 올해 1월, 나는 3년 동안 매일 출퇴근했던 여의도에서 약 300km 이상 거리에 위치한 어떠한 연고도 없는 부산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래도 오히려 좋았다, 장거리였던 그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으니까. 여전히 멀고도 낯선 도시지만, 그가 필요한 순간에 충분히 달려올 수 있는 거리였으니까. 나는 그렇게 부산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고, 이 도시에 적응을 하는 약 7개월의 시간 동안 그는 늘 내 곁에 있어주었다. 어쩌면 모든 처음부터 함께였어서 지금 이렇게 힘이 드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벌써 이 동네에서 만 7개월을 살아가고 있는데도 그가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 지금,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홀로서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헤어진 지 이튿날, 나는 그와의 사진을 내 휴대전화 사진첩에서 정리했다. 분명 최근에 찍은 사진부터 지워나가는데 왜 지난날들의 사진이 더 선명한지 참 의문이었다. 기억력 좋은 나여서 더 당황스러웠다. 딱 5월 초까지의 사진들의 기억만 선명했다. 우리 관계는 딱 거기까지였던걸까. 미련 없이 그의 물건들을 내 집에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의 물건이 보일 때마다 정리했고, 오늘은 화장실에서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인 양 걸려있는 그의 칫솔을 버렸다. 혹여나 후에 그의 물건이 그를 떠올리게 할까 봐, 그래서 어느 미래에 무방비 상태의 내가 무너져내려 버릴까 봐.
그와 헤어지고 보낸 지난 주말은 근 나의 주말 중 가장 길었다고 가히 말할 수 있겠다. 부산 집에 혼자 있었는데, 집 안방에 나 혼자 앉아있자니 나는 작아지고 집은 커져서 꼭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정말 너무 고독하고, 외롭고, 서글프기까지 했다. 이 낯선 도시에 아는 사람 한 명 없다는 게 서글퍼 사람들 목소리 들으러 회사에 나가고 싶을 지경이었으니까.
기다렸던 출근날(?) 지난주와는 사뭇 다른 선선한 날씨에 꽤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눈물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와 함께 하기로 했던 여행 계획, 그리고 바로 전 주에 같이 일하는 분들께 공유했건만 그것을 취소해서 출근을 할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려야 했었으니까. 회사에 남아있는,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정리하며 나는 또 한 번 무너졌다. 한번 틀어져버린 수도꼭지는 잘 닫히지 않아 누가 볼세라 화장실로 피신을 가길 여러 번 했다.
이틀 동안 한 끼만 먹은 나는,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 맛있는 점심을 먹고 돌아와선 리셋되어 버린 나의 캘린더 일정을 채워나가느라 정말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휴가 계획을 세우고, 동생들과 보낼 일정들을 세우고, 조카를 보러 갈 날짜를 정하면서. 바쁘게 달력을 채워나가니, 꼭 나는 이별을 벌써 극복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퇴근 후에는 헬스장을 알아보러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작년에 바디프로필 준비를 하며 운동을 한창 열심히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하루하루가 알찼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헬스장을 찾기 위해서였다. 가장 깨끗해 마음에 들었던 헬스장에서 체험 PT도 받았는데, 선생님의 티칭이 나쁘지 않아 바로 등록을 해버렸다. 제휴가보다도 훨씬 더 좋은 가격에 등록을 할 수 있었는데 새로운 시작을 하는 나를 응원해 주는 것만 같아 감사했다.
그리고 마지막 일정인 이곳에 기록하기까지, 수경이가 어젯밤 추천해 준 요거트 아이스크림에 엊그제 시장에서 사 온 복숭아를 썰어 넣어 먹으며 오늘 할 일을 다 마무리한 것 같다.
나는 이 익숙하고도 낯선 도시에서 잘 지낼 수 있겠지?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며 굳게 믿고 싶기에, 꼭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사실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적응을 할 겨를도 없이 항상 곁에 있어주었던 사람이 이젠 더 이상 없으니. 그래도 이왕 잘 지낼 거, 빠르게 털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으면 좋겠는 나의 소소하고도 큰 바람으로 첫 글을 마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