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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현리 Aug 18. 2024

부산의 정 1/2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일상


요즘 부산의 정에 대해 부쩍 많이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다. 요즘 내 일상에서 느낄 일이 많이 있어서이겠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입가심 용으로 한 번 마셔보라며 작은 잔에 커피를 가져다주신 사장님처럼. 그간 나의 부산에서의 일상 속에서 아 바로 이게 부산의 정이라고 느낀 순간들, 그 순간들을 위주로 공백을 풀어보고자 한다.


1. 자갈치 시장의 필름카메라 아저씨

20살 겨울, 처음으로 들인 나의 필름카메라인 fm2. 4년 전쯤 갑자기 고장나더니 사용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필름카메라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기에, 수리도 공식 수리점에서는 어렵다. 그래서 알음알음 수리점을 찾아가야만 하는데, 서울에서는 생각보다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나의 귀찮음이 한몫했으리라) 그러다가 문득 올해 내 생일이 돌아오기 전에 이제는 정말 수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산에서는 ‘그’ 수리점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왜인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찾아보니 정말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수리점이 있었고, 그 길로 나는 fm2를 포함한 나의 필름카메라 3대를 들고 아저씨를 찾아가게 되었다.


시장의 골목들, 그리고 시장통의 가게 안의 가게. 그날의 첫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정말이지 한 번에 찾기 쉽지 않았다. 다시 블로그 후기를 읽고 또 읽고, 그렇게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다. 원래 7시까지 하시는데, 그날은 일정이 있으셔서 6시까지 와야 한다는 말에 휴가를 사용하고 찾았는데, 그 휴가가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수리비 또한 얼마나 나올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기에 걱정도 되었지만, 두려움보다는 드디어 나의 카메라를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이 앞섰다. 정말이지 몇 년간 묵혀두었던 숙제였던가-

그렇게 아저씨를 찾아가게 되었고, 내 앞에는 이미 수원에서 오신 분이 카메라를 맡기고 있었다. 아저씨에게 나의 카메라 상태를 설명하며 아저씨가 이것저것 기본적인 것들을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카메라를 제대로 공부해 보고 찍어본 적이 없었던 터라, 그동안 카메라를 사용하며 궁금했던 기능들에 대해 아저씨로부터 처음 듣게 되었다. 그것도 카메라를 사러 간 것도 아니고 수리를 맡기러 간 거였는데. 거의 3-40분가량 아저씨한테 조리개, 셔터스피드, 내 카메라 각각에 탑재되어 있는 기능들까지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라 흥미롭고 정말 재미있었다. 그리고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소중한 시간을 내어 설명해 주시는 그 마음에 너무 고마웠다. 세 번째 카메라는 안에 필름이 들어있어서 나머지 두 대 고치는 동안 다 소진하고 찾으러 와서 그때 다시 보자고 하시며, 그때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그 일종의 책임감 무언가 같은 것까지 정말 부산의 정이란 이런 것일까?라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아저씨의 강의를 들으러 가는 길이 기다려졌고, 생각보다도 그날은 정말 빠르게 돌아왔다. 고마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보답해 보고자 아저씨에게 가기 전에 회사 근처의 맛있는 구움 과자집에서 휘낭시에 몇 개를 사갔다. 그렇게 두 번째 강의가 이어졌고, 나는 수줍게 과자를 내밀었다. 뭘 이런걸 사왔느냐며 잘 먹겠다고 하시고는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려고 하는게 느껴져서 고마움을 넘어 내 마음이 너무 훈훈해졌다.

카메라 수리점이었기에 그렇게 아저씨의 강의는 (잠정적으로) 끝이 났지만, 나는 그 고마운 마음과 아저씨의 가르침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글로,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인화해 보고 이상하면 또 찾아갈게요-! 그리고 어쩌면 사진에 대한 열정이 아저씨로 인해 더 후끈 달아오른 것 같다. 이참에 사진도 제대로 배워볼까?


2. 가야금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

6월부터였나, 부산에서의 회사생활에 슬슬 적응을 해가며 내 일상이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었던 것들도 참 많았는데, 뭐부터 해야할지 그때는 꼭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생 때 잠시 배웠던, 그래서 사회인이 되면 다시 하고 싶었던 가야금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배울 수 있는 곳들을 찾기 시작했다. 찾으며 역시 부산이야, 부산은 정말 좋다-(내가 정말 요즘 자주 하고 있는 말들.)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 가야금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생각보다도 꽤 있었고,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기에 내가 가능한 시간대의 수업을 찾아 수강신청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6월부터 수요일 저녁엔 가야금을 뜯으러 가게 되었는데, 같은 반 초등학생이 비비-밤양갱을 뜯는 걸 듣곤, 내 목표다!라고 생각하고 다시 기초부터 열심히 배우게 되었다. 많이 부족한 내 실력에 나의 목표를 선생님에게 공유하는 것이 매우 부끄럽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어 얼른 실력이 늘어 밤양갱을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고, 어렸을 때 배워서 그런지 빠르게 실력이 올라오게 되면서 선생님한테 꾸준히 어필을 했고! 드디어! 선생님이 밤양갱 악보를 가져와보라고 하셨다!!! 얼마나 신이 나던지. 그렇게 난 밤양갱 악보를 들고 가서 또 열심히 가야금을 뜯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이었지만, 그렇게 난 혼자서도 열심히 연습하고 또 선생님한테 교정받고를 반복했고.


수업 끝날 때쯤 나에게 안예은-상사화를 아냐며 여쭤보셨다. 잘 모르겠다고 하니, 자기가 전에 수강생한테 부탁받고 여분으로 몇 장 더 출력해 둔 것이 있다며, 다음에 가지고 올 테니 그걸 하자고 하시는 것이었다! 너무 설레기도 하고 선생님이 먼저 그런 이야기를 꺼내주셔서 감개무량했다. 연습을 더 많이 하고 싶어질 지경이었으니까- 그렇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인사를 하고, 나가서 잠시 문 앞에서 신발 매무새를 정리하고 있었다. 선생님도 나오셔서 집에 가시는 것 같더니 갑자기 나한테 돌아오셔서 내가 빨리 느니까 자기가 다 기분이 좋다며 웃으시더니 다시 가던 길을 가셨다. 이 어찌나 뿌듯하고 따뜻한 말이었는지. 이 또한 부산의 정이라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이런 직설적이고도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들이 부산에 온 것을 실감 나게 해 주고, 또 어쩌면 잘 왔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이런 부산사람들의 화법, 그리고 정이 너무 좋다.


2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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