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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 Oct 17. 2022

그 여성의 '발'은 정말 권력의 상징이었을까

-영화 <홍등>에서 본 권력의 의미-

  중국의 악습인 '전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전족이란 작은 발을 만들기 위해 어린 소녀의 발을 잡고 꺾어 더 이상 자라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발에 대한 끔찍한 욕망과 집착이 수많은 사람들의 발을 학대한 사실을 알고 나는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다. 욕망, 여성, 발. 왜인지 발과 권력에 집착하다 미쳐버린 영화 <홍등>의 주인공이 생각났다.     

  영화<홍등>은 송련(공리 분)이 강요에 이기지 못하고 시집을 가겠다며 선언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송련의 원샷. 체념한 듯 더 이상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담담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첩이든 뭐든 부잣집에 들어가겠다는 말까지 끝낸 뒤의 소리없는 한줄기 눈물은 끝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그 한줄기 눈물에서 그동안의 반항감과, 속내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듯한 심정이 그대로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첫째 마님은 이미 늙은 여자이다. 살만큼 살아낸지라, 삶의 고뇌가 뚜렷하게 보이는 듯한 여성이었다. 적어도 시집살이에 대한 고생과 연륜만큼은 여실히 티가 나는 얼굴. 주인공이 인사를 할때도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만 남기고 더 이상의 언사는 아끼는 모습이다.

  둘째 마님은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이다. 주인공을 잘 맞이해주고 살갑게 구는가 했더니, 하녀를 시켜 저주 인형을 만들었다. 의지가 되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결국 그녀도 똑같이 주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자임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셋째 마님 매산은 까칠하나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아닌 사람이다. 매산은 송련에게 눈치를 주고 주인의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중후반부에 탁운의 속내를 일깨워 주는 장면이나 송련의 거짓임신이 들켰을때 걱정스레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인간적으로 느껴다. 그 장면에서 이 치열한 가문 중 그나마 인생 선배라고 배워야 될 인물은 매산이라고 느껴진다. 끊임없이 견제해야 하는 상대이지만 동시에 눈치껏 배워나가야 하는 사람. 치열한 가문의 싸움은 씁쓸함만 남긴다.     

  이 영화는 1920년대 일부다처제로 인한 여성들의 지위와 인권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진정한 권력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밤에 남자 주인을 모실때마다 밥 반찬을 고를 수 있는 특권을 주고 발 안마도 받을 수 있게 하지만 그건 정말로 '특권'이자 '권력'일까.

  영화 <홍등>에서는 강조되는 존재가 몇가지 있다. 첫번째는 영화 제목 그대로 홍등(빨간 랜턴), 두번째는 빨간색이란 색감, 마지막으로는 여성(들)의 '발'이다.

  남자 주인과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될 때 받게 되는 발 안마. 주인은 여자는 발이 중요하다며, 특히 '여자 발이 편해야 남자를 잘 모실 수 있다' 라고 말한다. 여성 발에 대한 성적 집착이 엿보이는 발언이다.

  주인공이 화를 낼 때도 주인은 '어차피 발 안마를 원하는 사람은 많다' (=네가 아니어도 나와 잘 여자는 많다) 고 한다. 그 말이 씨앗이 된 것인가. 어색하던 주인공 또한 점차 발과 발 안마에 대해 집착하기 시작한다.

  여성 발에 대한 삐뚤어진 우상화와 은유들. 영화 <홍등>은 발이라는 매개체로 여성들의 눈치 싸움과, 권력 다툼과, 남성의 성적 욕망을 표현한다. 발이라는 건 곧 여성 부인과 첩들간의 권력 다툼인 것이다.

  우리는 이쯤에서 다시 돌아보자. 너 아니고도 발안마를 원하는 여자는 많다고 하는 주인의 대사를. 나는 수많은 장면 중에서도 이 장면이 기억에 가장 남는다. 어쩌면 충격적이기까지 한다.

  부인과 첩들, 그리고 하녀까지도 모두 이 가문의 발안마를 원하고 권력을 얻길 바라지만 그건 과연 진짜 권력일까. 얻고 싶다해도 얻어지는 진정한 '권력'이었을까? 그 특혜와 권력은 누가 주는가? 사실 집안의 진짜 독재자와 권력자는 따로 있었는데도.

  하녀가 죽고, 셋째 마님이 죽고, 막내 마님이었던 송련도 미쳐버림에도 부자 가문은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은 5번째 부인을 맞는 모습이다. 남자주인이 시혜하듯 내려주는 조금의 특혜와 권리를 얻고자 집안의 그 많은 여자들이 서로 음해하고, 죽고, 죽이는 싸움... 이 비참한 현실의 끝은 도대체 언제쯤 도래하는 것일까.     

  사실 이 영화에서 제일 주목할만한 것은 진정한 집안의 실세이자 권력자인 주인의 모습이 잘 비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성 권력자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감춤으로서 기본적으로는 그 아래의 여성 입장에서 공포감과 신비감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권력자의 모습을 감춘 건 바로 '실체없는 권력'을 시사했을 수도 있단 해석도 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권력자의 모습처럼, 권력자의 발밑에 깔려있는지도 모른 채 서로만 바라보며 끝없이 싸워댄 여성들의 치열했던 권력 우위 싸움. 사실은 실체 없는 그것을 향한 무의미한 짓거리였을 수도 있다.

  첩들끼리 발을 통해 우월감을 느끼고 서로 싸워댔던 것은 그저 부질없었던 행위들. 강제적인 전족이 폐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속박된 삶을 벗어나지 못해서 이것이 예쁘다며 스스로 발 학대당하기를 자처했던 여성들의 모습들이 머리속에 그려진다. 진정한 권력은 무엇인가. 그녀들이 그토록 가지려던 건 무엇이었을까. 영화를 보고 고민하게 된다.

  영화의 끝, 결말에서는 결국 주인공이 미쳐버렸고 주인은 또다시 부인을 들인다. 결국 실체없는 권력의 굴레는 계속해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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