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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 Jan 28. 2023

생각이 많아질 땐 머릿속으로 상자를 그려봐.

#9 널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이유


故 신해철, 우리의 마왕

새벽 2시부터 3시까지 한 때 마왕과 함께 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지금도 썩 좋아하지 않는, 내 귀엔 시끄럽기만 한  음악들을 틀어놓고선 낮은 음색으로 때론 개똥철학, 때론 누군가를 간통시켜 버릴 만큼의 날카로운 언변을 펼치는 마왕을 들으며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by.nari


엄마의 잔소리가 너무 심해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한 고등학생의 사연에 마왕이 했던 말이 있다.


"그럴 때는 머릿속에 작은 상자를 그려봐. 그리고 옆에 또 작은 상자를 만들어, 처음 만든 상자에 작은 상자를 욱여넣는 거야. 그리고 또 다른 모양의 상자를 만들고, 또 욱여넣거나 아니면 그 상자에 처음 상자를 넣거나 , 그렇게 수백 개의 상자를 만들다 보면 어느새 상대방의 말이 끝나 있을 걸. “

(정확하진 않습니다. 워낙 오래된 기억이라)


나는 그 방법이 썩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래서 괴로운 말을 들을 때나, 또 괴로운 일들이 생기면 머릿속에 수 백개의 상자를 그려보기도 했다.




  이혼 후 나는 그(전 남편)의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은 그 사람이었다. 그게 얼마나 지옥 같은지..

그럴 때마다 상자를 그려보았지만 수 천 개의 상자로도 물리칠 수 없었다.

대신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그를 작고 캄캄한 방에 가둬놓고 그의 목을 힘껏 조르는 것이다.

그는 무기력하고, 그 무기력 한 얼굴이 더 화가 났다.

나는 늘 분노에 차 있었다.

그러다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릴 때쯤 , 손아귀 힘을 풀고 머릿속에서 나온다.


머릿속에서 조차 그를 죽이진 못하였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서 피어났고

그때마다 죄책감 없이 그의 목을 졸라대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이 방법의 장점은 , 다른 생각이 나지 않고 그의 목을 조르는 상상에만 집중이 된다는 것이고

또한 단 점은 자기 연민에 빠진다는 거다.

아, 내가 이 정도로 무너지는구나. 한 인간 때문에 내 삶이 피페 해지는구나.


그의 생각은 대부분 좋은 생각이었다. 의외로

그가 해줬 던 모든 일들, 그와 함께 한 시간들.

그리고 원망.

가정을 버렸다는 원망, 아이를 버렸다는 원망. 그리고 아이를 찾지 않는 그에게 없는 부성애에 대한 의문.


다행인 점은 앞 서 말 한 것들을 반복해서, 또 반복한 결과 지금은 빈도가 뜸해졌다는 것이다.

굳이 잊으려 애쓰지 않아도 시간은 공허의 속으로 날 데려다주었다.

공허하다. 요즈음 느끼는 감정이다. 더 이상의 분노도, 원망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문득 그의 생각이 날 때는 또다시 그의 목을 졸라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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