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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 Feb 23. 2023

별 일 없이 살아간다.

이 이야기는 끝


"엇, 안녕하세요?"


아이를 등원시키기 위해 아파트 복도에 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데 아기띠를 하고 파자마를 입은 여자분이 나에게 아는 체를 한다.


"아 안녕하세요."


전 남편이 소개해준 아파트 주민이었다. 동네 친구도 없이 너무 심심해라는 칭얼 거림에 누군가에게 말 검에 거침이 없던 전 남편은 지나가는 주민 한 명을 붙잡고 내 얘기를 하고선, 그 뒤로 마주치면 나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딱히 전화번호를 교환하지도 않았고 커피 한 잔 하지도 않은 사이지만 일 년에 한두 번쯤 엘리베이터를 탈 때 마주치면 서로 인사를 했다.

당시 그분은 아이가 없었고, 나도 아이가 없었으나

2 년쯤 다시 만난 우리 둘은 서로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아이가 많이 컸네요."


나는 짐짓 아는 체를 해본다. 내 말에 상대방의 눈 길이 우리 아이에게 간다.


"아 전에 그 남자친구 분과 결혼하신 거예요?"


당황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연애 때 그분을 소개받았고, 전 남편과 손 잡고 다닐 때 인사 하곤 그 후론 첫 만남이니까.


"아 네."


아이가 꿈뻑꿈뻑 낯선 사람을 쳐다본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멈추어 섰다. 아이 손을 붙잡곤 "어린이집 차량이 와서요. 내려가봐야겠네요." 말하곤 돌아 선다.


"아 저, 다음에 차 마시러 갈게요."


나는 엘레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고개를 뺴꼼 내밀고 외친다.


"네 꼭 오세요!"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동네 친구가 있으면 나쁠 것 없으니깐.

그러나 그분은 내가 사는 곳 (정확한 호수)를 모르고 나도 모른다.

다시 마주치면 전화번호라도 물어보리라며 며칠을 두리번거리며 복도를 서성여 봤지만

인연이 아닌지 다시 만날 일은 없었다. 또 1년 뒤 서로 큰 아이의 손을 잡고 마주칠 수도 있겠다.


전 남편은 같이 살기 힘든 사람이었지만, 분명 장점도 있는 사람이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살펴 봐주고, 흘린 듯한 내 말에 열 에 세 번 정도는 응답해 주는 사람이었으니깐.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던 일들, 가지 못했던 곳들도 많다.

 그는 정말 내 사막의 오아시스였을까?

오아시스를 벗어나는 여정이 너무 고달프고 힘들어서 그 오아시스의 고마움조차 깨끗이 지워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의 끝맺음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한 동안 고민을 했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 행복해졌다.라고 써야 하나,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안정을 되찾았다.라고 써야 하나.


그러나 그 두 가지는 거짓이었다. 나는 때론 좌절과 우울감을 느끼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넷플릭스에서 마음 맞는 영화를 보고선 정신없이 빠져 있다가 기분 좋음을 느끼기도 한다.


잠들기 전, 냉장고에 있는 우엉조림을 기억하고선 내일은 '우엉 김밥을 싸 먹어봐야겠다.' 라며 작은 기대감에 내일을 기대하기도 한다.


아이가 엄마, 하며 뛰어와서 안기는 모습에 함박웃음을 짓기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화실을 다니며 마음 맞는 선생님과의 스몰토크와 어우러진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아이와의 앞 날을 생각하면 답답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지만

늘 올바른 마음으로 아이 곁을 지키고 싶다.




by.nari



나는 별 일 없이 살아간다.
얼굴에 '사랑' 이라고 적혀있는 것만 같은 아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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