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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 Mar 07. 2023

널 죽일 것이다. 오늘 아니면 내일,


“탕”



티끌 없이 빛나는 하얀 경찰서 바닥에 선홍빛의 피가 흘러내린다.

그것은 바닥 중간중간의 틈을 메꾸기도 하고

그대로 흘러 근방에 멍하니 서있던 경찰관들의 신발을 향해 가기도 했다.

그 모양새는 멀리서 바라보건대 자못 어린아이의 빨간

물감을 마구잡이로 흐트러내린 모양새와 비슷해 보였다.


그리고 정적

후의 또 한 발의 총소리가 남으로써 고요의 시간이 끝이 났다.


바닥에 쓰러진 여자 하나.


그리고 휠체어 위에 탄 상태로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눈 탓에

그대로 앉아 고개를 푹 떨군 채 숨을 거둔 여자 하나.


고요한 한 경찰서에 두 구의 시체가 바닥에 놓인다.


봄이 끝날 무렵 만개한 꽃 들이 작별인사를 전하듯 바닥에 떨어진 것처럼

그녀들은 한 마디 작별인사 없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 일이 있기 2년 전




여진은 결혼 생각이 없었다.

“난 비혼주의야!”라고 말할 것까진 없지만

내심 결혼이란 사회적 제도 속에 갇혀 평생을 한 사람과 살 비비며 산다는 것이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스스로가 얼마나 게으르고, 나태한 지 알고 있었기에 결혼에 따르는 그 모든 것들이

그저 귀찮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아침에 눈 뜨면 직장을 가기 위해 일어나고, 어스름한 저녁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 순간 해방감을 느끼고 옷을 훌훌 벗어던지며 소파에 누워 고양이를 쓰다듬는 소소한 행복에 삶을 만족하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활력을 되찾는 하루는 집 근처 취미 공방에서 가구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집에서만 입는 연분홍 잠옷바지를 벗고 그나마 밖에서 입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는 카키색 운동복 바지(간당간당하게 외출복이라고 스스로 암시 거는)를 입고 회색깔 후드티를 얼굴에 욱여넣고선 모자를 꾹 눌러쓴다.




여진의 집은 1층이다. 이 빌라 1층으로 이사 오고 싶어 반년 정도를 기다렸다.


“1층이 아니면 안 돼요.”

단호한 표정과 간절한 마음 그 중간쯤의

애매모호한 자세로 부동산 아주머니를 졸라댔던 것이다.


“1층 살면 시끄러울 수도 있어요. 뭐, 매물이 나오면 알려주겠지만.. “


여진의 인적사항이라도 메모하는 것일까, 아님 의미 없는 끄적임일 수도 모르는 볼펜짓을 부동산 테이블에 덩그러니 있는 수첩에 적으며 말한다.


“1층을 선호하는 집은 대부분 아이들이 있는 집인데.. 드물게 젊은 아가씨가 1층을 찾네?”


“엘리베이터 타기, 귀찮아서요.”


사실이었다. 월세나 전세를 하지 않는 이유도 월세는 세내기 귀찮아서, 전세는 이사 가기 귀찮은 마음이었다.

매매를 살 수 있는 재력도 뒤받침 해주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기도 했지만.


그리고 그녀는 기다림 끝에 1층에 고양이와 단 둘이 살게 되었던 것이다.



“여진님 안녕하세요!”


취미공방의 선생님인 혜미가 늘 그렇듯 여진을 반갑게 맞이한다.

집 근처에 취미 공방에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찾아왔던 여진은 공방 선생님이 퍽 마음에 들었다.

 우연히 동갑내기였던 점도 플러스였고 , 또 어떤 대화를 하건 코드를 맞춰주는 그녀의 사교성 덕분에 평소의 여진보다 시시콜콜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점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벚꽃이 거의 다 졌어요.”

여진을 위해 준비해 준 자리에 털썩 앉으며 노래하듯 말한다.


“그렇죠? 시간 참 빨라요. 금세 만개하더니 오늘 보니 바닥에 수북하게 떨어져 있더라고요!”


혜미는 작은 의자를 가져와 여진 옆에 앉는다.

“저번에 작업하시던 의자요, 젯소칠도 충분히 말랐고 이제 마지막으로 색만 입히면 되네요? 마음에 두신 색 있으세요? “


“카키색으로 하고 싶어요. “


여진은 작업한 의자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빠르게

대답한다.

이 의자를 만드려 생각했을 때부터 담아둔 색이었다.


   그녀는 다른 일엔 우유부단 한 편이었지만 가구를 만들 때 디자인을 고르는 것이나 색을 입힐 때는 이미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꺼내 듯 망설임이 없었다.


작업용 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둘렀다.

페인트용 붓을 들고 마음에 드는 카키색 페인트에

붓을 푹 담 군다.

그리고 거침없는 붓질.

그저 섬세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한 번의 덧칠은

더 해야 했으니


여진은 입가의 미소를 머금은 채 공방에 울려 퍼지는 음악을 들으며 작업을 지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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