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순수하게 태어난다.
아직의 편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쳐다보고 사람을 바라보며 궁금해한다.
”X아 세수 해야지~“
“왜 세수해야 돼?”라고 되묻는다.
그것도 매일 아침마다,
“밤 새 먼지랑 땀이 묻었으니 깨끗이 씻어야 돼”
“왜 깨끗이 씻어야 돼?”
왜 병이 걸린 시기에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도 많이 한다.
어느 날은
할아버지가 만만했는지 때리고 꼬집길래
아이를 잡고 “다른 사람을 때리는 건 나쁜 짓이야”
하며 훈육을 시도했더니
“나쁜 게 뭐야? “라고 묻는 아이를 멍하니 쳐다보다
순간 ‘나쁜 것이 뭐지? “ 스스로 자문해본다.
궁금함이 가득한 순수한 얼굴에 대답을 해준다.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그리고 남의 것을 뺏는 사람도 나쁜 사람이야.”
스스로의 대답에 만족했을 때 아이는 또다시 물음표를 보낸다.
“왜 그게 나쁜 사람이야?”
“그러게....?”
나는 정말 “나쁨”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인가?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책 중 파피용이라는 도서가 있다.
더 이상 살 수 없는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을 향해 떠날 수 있는 거대한 우주선을 만들어 그곳에 수 만 명의 인간, 동물, 곤충 등을 실어 그 오랜 기간 동안 항해를 한다.
몇 천년? 만년? 을 가야 하니 그 우주선 또한 사회였고 , 사람들은 일을 하고 사랑을 하고 놀이를 했다.
처음엔 종교, 정치 따위가 필요 없다 하여 무정부 상태로 살았으나 이내 범죄가 일어나고 사람들의 마음이 피폐해지자 기본 적인 법률이 생기고 종교 또한 생긴다.
거기서 처음 지정된 법률은 성경에 나오는 십계명과 비슷하다.
남을 해치지 말 것, 남의 배우자를 탐내지 말 것, 남의 재물을 손괴하지 말 것 등등
그러다 감옥도 생겨나고 경찰도 생겨난다.
자유로운 사회에 처음부터 시작했으나
결국엔 어느 정도의 사회 규제가 생겨야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례였다.
이것이 나쁨의 기준일까?
내 상식으론 당연한 기준의 잣대였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 고,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해하면 안 되는 일.
그것을 아이에게 알려주면 되는 걸까?
아이의 주관과, 개념이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니
부담되면서도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경찰관이 꿈이라는 세 살 아이. 그려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