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이를 찾지 않는 아빠가 궁금하다.
협의이혼을 하려면 가정법원에 가야 한다. 도착하면 이혼 서류를 작성하러 가는 곳으로 향하는 안내판이 표시되어 있다. 그곳을 향해 기다란 복도를 가다 보면 벽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있다. 그곳엔 아무 설명도 적혀 있지 않았지만 나는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림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했다.
“아이를 생각하세요.”
당시 우리 아이는 태어난 지 1년 채 안된 아기였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내가 혼자 아이를 키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혼 후에도 그가 당연히 왕래하며 아이 케어를 해줄 거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가 아이를 보는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생각했었다.
이혼을 하려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딱 한 가지다.
당신이 아는 그 사람은 이혼 후에는 없어질 것이라고.
그랬다. 그는 아이를 보러 오지 않았다. "아이는 잘 지내?" 라는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 할 법한 말도 하지 않았다.
협의 이혼하러 법원에서 그를 만났을 때, 나는 입을 열었다.
“아이는 잘 지내, 쪽쪽이도 이제 하지 않고, 밤에 일어나 깨지도 않고 말야.”
그가 아이에 대해 궁금해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는 아무 감정 없는 목소리로 툭,
“잘 됐네.”
라고 뱉었다. 그리곤 끝이었다. 더 이상 말은 없었고, 나도 말하지 않았다.
아이의 옹알이의 첫 단어는 ‘아빠’ 였다.
발음하기 쉬워서였을까.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말해주었고, 그는 그 모습을 보진 못했다.
집 안 어느 곳에도, 그리고 퇴근 후에도 오지 않을 아빠를 아이는 기어 다니면서, 그리곤 걸어 다니면서, 뛰어다니면서 외치고 다녔다.
아이의 눈 속엔 그리움이나 슬픔은 없었다. 그저 입에 나오는 말이 ‘아빠’라는 옹알이 같은 것 일수도 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는 아빠를 점차 부르지 않게 되었다.
인정 많은 우리 아이는,
동화책 속에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 여럿 보이면, 조막 만한 손가락으로 아빠, 엄마, 할미, 할비라고 지칭하곤 했다.
과일이 여러 개 있으면 역시 아빠, 엄마, 할미, 할비,라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아이는 아빠 라는 말은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동화책 속에나 나오는 아빠를 아이에게 읽어주며 문득 궁금해져서 아이에게 물었다.
"oo아 아빠는 어디있어?"
아이는 조그만한 손가락 질로 한 쪽 벽을 가르킨다. 그 곳은 아이아빠와 다정히 찍은 사진 액자가 걸려있던 지금은 아무 것도 없는 벽이었다.
아이는 기억할까? 아빠를.
이혼 후 용기 내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 보았다.
아이를 봤으면 한다. 내가 데려가지 못하는 곳에 데려가주고, 아이에게 아빠 노릇을 해달라며.
단지 그 용건이었다. 그와 나의 과거를 묻지도 않았다.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읽음 표시 뒤에 돌아오는 것은 무응답이었다.
그의 안부가 딱히 궁금하진 않았다.
어떻게든 잘 지내겠지, 아이를 케어하지 않아도 되는, 책임질 것이 없는 생활 속에서
홀가분하게 지낼까? 아니면 쥐톨만큼의 한 죄책감을 안고 살까?
사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아이, 보고 싶지 않아?”, 혹은 “그래도 6개월간 품고 키웠던 아이가 얼마큼 자랐는지.. 궁금하지 않아?”
그러나 물을 수 없었다. 용기 내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 없는 쓸쓸한 공간 속에서 나는 그저 아이에게 내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주는 것 밖엔, 할 수 없었다.
이혼 후 가장 힘든 점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아이의 존재'이다.
'엄마'는 내가 선택한 인생이지만,
내 아이가 날 선택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한 동안 그러한 죄책감에 빠져 하루하루 숨 쉬는 게 힘들 정도로 우울감에 빠져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이가 장애인인 엄마가, 더구나 아빠도 없는 삶이 버겁거나, 부당하다고 생각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답은 없었다. 지금 아이는 어리고, 눈앞의 것들에 웃고 우는 하루를 보낼 뿐,
다른 친구들의 엄마는 걷는데, 다른 친구의 아빠는 있는데,라는 사회의 인식을 모르는 나이이다.
그 나이가 되어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무슨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지금 미리 대답을 적어두어도, 그때가 되면 모른다.
그저 하루를 살뿐이다.
* 이 글은 특정 누군가를 지칭하거나, 비판할 의도가 담긴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