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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정 Sep 22. 2024

[10] 딸은 자라고, 나는 공을 놓치고

아침 6시.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집 안은 조용했다. 딸은 아직 자고 있었고, 아내는 출근 준비로 바빴다. 커피를 타서 테이블에 앉았다. 


잠시 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딸은 점점 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딸과의 대화는 점점 짧아졌고, 그 짧은 순간마다 나는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저녁이 되었다. 딸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나는 무심코 물었다. "오늘 학교 어땠어?" 딸은 대충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별거 없었어." 마치 날씨 얘기를 하는 것처럼 무미건조했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딸은 숙제에 집중했고, 나는 테이블에 앉아 딸을 지켜봤다. 사소한 대화조차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았다. 대화의 빈자리에서 내가 뭔가를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만 더 커졌다.

딸은 여전히 100점을 받았고, 숙제를 잘 해냈다. 그런데 왜일까. 그 100점이라는 숫자가 이제 나와 딸 사이에 놓인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더 이상 내게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뭔가를 물으려 했지만, 그 순간마다 내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마치 그 대화마저도 실패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며칠 후, 작은 갈등이 일어났다. 딸은 학교 숙제를 이유로 휴대폰을 더 오래 쓰고 싶어 했다. 나는 딸에게 핸드폰을 그만 하라고 말했다. 딸은 고개를 숙였지만, 그 안에 작은 반항의 기색이 느껴졌다. "아빠는 맨날 이래." 딸이 갑자기 말을 뱉었다. 그 말은 날카롭고, 어딘가 예리했다. 나는 당황한 채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딸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덧붙였다. "아빠는 아무것도 몰라."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딸의 말은 생각보다 깊은 거리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딸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고, 나는 텅 빈 거실에 홀로 남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또 다른 무언가도 함께 닫혀버린 것만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딸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딸은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침묵 속에서 커피를 마셨다. 딸은 나를 힐끗 쳐다봤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집을 나서며 문을 닫았다.


나는 탁구장으로 향했다. 탁구대 앞에 서서 공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은 내 라켓에 맞지 않고 계속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그 공을 쫓아다니며 땀을 흘렸다. 공이 벽에 부딪히고 나는 그 공을 주워 다시 탁구대 앞으로 섰다. 공을 맞히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탁구장 안은 조용했고, 나는 그 속에서 공과 싸우고 있었다. 공은 마치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상징하는 듯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딸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나는 잠시 홀로 남았다. 딸과의 대화는 더 짧아졌고, 그 짧은 대화마저도 점점 갈등으로 끝나기 시작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문득 과거의 딸을 떠올렸다.

걸음마도 겨우 떼던 시절, 딸은 내 손을 꼭 잡고, 어디를 가든 내 곁에 붙어 있었다.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면 언제나 내 손을 놓기 싫어하던 그 작은 손. 그때의 딸은 나를 필요로 했다. 아빠가 아니면 안 됐고,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다.

매일 밤 딸은 내게 안아달라고 했고, 나는 딸을 안고 방을 걸어 다니며 재웠다. 그 작은 몸이 내 가슴에 기대는 순간,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 시절, 딸은 내 전부였고 나는 딸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딸은 더 이상 내 손을 잡지 않는다. 더 이상 내게 안아달라고 하지 않는다. 딸은 자신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여전히 나는 그 시절을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이미 종료되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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