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결혼했습니다!
<21. 자기 계발서에 너무 빠지면 안 돼요!>
보통 자기 계발서의 '원조'로 여기는 책은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으로, 새뮤얼은 계속해서 '인격론', '검약론', '의무론' 등의 후속작을 내놓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 한창인 때에 개인의 역량을 북돋우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명언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댕기는 역할을 했죠. 개인의 노력과 역할이 번영과 성공을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강렬한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습니다.
이후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성공대화론', '자기관리론'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인 사고방식', 지그 지글러의 '정상에서 만납시다' 등으로 이어집니다. 근래에 와서는 부와 성공의 비밀을 알려준다는 '시크릿'이 폭발적 반응을 얻으면서 그와 비슷한 아류들이 쏟아져 나왔고, 국내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자존감' 시리즈와 '힐링' 시리즈가 자기 계발서 시장을 평정하다시피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세분화된 구분에서의 자기 계발서는 매우 협소한 영역으로 한정되어 분류됩니다만, 보다 넓은 영역으로 확장하여 '성공이나 출세' 혹은 '심신 단련' 기준으로 따져본다면,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아우렐리우스 등과 더불어 동양의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의 저서들도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살면 행복과 만족을 얻으며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오랜 사색과 숙고의 결론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문학과 비문학을 포함한 자기 계발서의 역사가 이렇게 장구하다면, 자기 계발서를 읽으려 하는 사람이 굳이 대형서점에서 분류한 대로의 지극히 협소한 종류의 자기 계발서 중에서 읽을 책으로 선택할 이유는 없을 듯합니다. 2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쓰인 훌륭하면서도 자신에게만 특별히 맞을 만한 책들이 존재할 테니까요. 이제부터라도 자기 계발서에 대한 그동안의 시각을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전 중에서도 기념비적이거나 독보적인 자기 계발서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확장된 자기 계발서, 즉 오랜 시간을 버텨온 고전을 대표 선수로 삼는 자기 계발서와 근현대에 나온 자기 계발서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 차이점을 신중하게 살펴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자기 계발서는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앞으로 어떤 자기 계발서를 읽는 것이 진정한 '자기 계발'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자기 계발서를 읽었다면 반드시 자기 계발이 되어야만 목적을 달성하는 의미 있는 일이 될 테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고전의 자기 계발서와 근현대 자기 계발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얼마나 사변적 사색과 숙고의 과정이 책에 녹아들었는지의 정도 차이입니다. 두 번째의 차이점은 얼마나 독창성을 갖추었느냐이고, 세 번째는 독자에게 오랜 사유의 시간을 유도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입니다. 이처럼 세 가지 차이점 비교는 거의 비슷해 보이는 자기 계발서들을 구분할 수 있도록 만들며, 작은 차이가 결국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나비효과'나 종교에서 말하는 '이단(異端)'을 떠올리면 쉽게 수긍할 수 있습니다.
고전의 자기 계발서들은 철학적, 사상적, 사변적 숙고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저자들의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문자화된 그것들은, 제자들이나 혹은 후세의 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연구와 분석의 대상이 되면서 더욱 의미가 분명해지거나 이해하기 쉽도록 변형의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수많은 비판적 사고의 표적이 되어 반론에 부딪히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더 나은 이론의 바탕이 되어 이론의 변화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시조' 혹은 '창시자'라는 타이틀까지 빼앗긴 건 아니었죠.
근현대 자기 계발서들은 고전의 그것들과 비교하면 매우 취약한 사고의 과정들 드러냅니다. 사물과 현상 및 행동의 근원을 캐기 위한 노력보다는 오랜 전통과 문화 및 관습을 따르면서 약간의 변형만을 추구하며 사람들의 변화를 촉구합니다. 철학이나 사상적 배경은 배경일 뿐, 저작물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습니다. 근현대 자기 계발서들의 목적은 인간의 근본적 변화보다는 효율성과 실용성입니다. 현대어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얼마나 좋으냐에 따라 사고와 행동의 선택을 유도합니다.
고전의 자기 계발서들은 대개 '독창성'을 무기로 합니다. 선조로부터 배우지 않은 내용은 거의 없겠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깨달음이 주무기가 되어 새로운 이론과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데, '시조'나 '창시자'라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후세에게 끼친 영향이 큰 책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참고 서적'이 될 만한 가치를 지닙니다. 사상과 이론이 발전하고 첨단 과학이 세상을 선도하는 시대에도 고전의 위상은 여전하다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근현대의 자기 계발서들은 고전의 그것들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티가 역력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발간된 고전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발췌하거나 요약하는데, 그 솜씨가 탁월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론이나 행동 양식의 탄생처럼 느껴집니다. 이전의 이론과 주장에 한 발 더 내딛는 과감성도 발휘하여 발전되고 진보된 이론으로도 보이게 합니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나 실천 양식일 뿐인데, 사실 그래서 더욱 과감한 표현을 쓰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고전의 자기 계발서들은 깊은 사유를 유도합니다.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의 정신적 변화를 주기도 하죠. 단순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기에, 사물과 현상의 근본에 적절한 의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생각해서 만들어가는 과정을 제시하기에 그렇습니다.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지만 해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딱 떨어지는 해답이 존재하는 질문보다, 절대로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라 하더라도 그런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게 하는 것이지요.
현재 시중에 나온 자기 계발서들은 대개는 확실한 질문과 더불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왜 여태껏 이런 걸 알지 못했느냐고 질책을 하면서, 이렇게만 실천하면 원하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욕망의 실현이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면 되는' 일인데, 실천만 하면 가능한 일인데, 왜 안 하느냐고 자극합니다. 자존감이나 힐링은 어떤 계획에 의해서 짜인 내용대로 실천만 하면 저절로 높아지고 이루어지는데 왜 그걸 못하느냐고.
현대의 자기 계발서가 보기에 우리의 인생은 '직선'이고 '엘리트 코스'입니다.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취합한 장점을 그대로 따라만 하면 효율성 높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근본적인 질문에 필요한 '왜'란 없습니다. 성공과 출세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무작정 따라만 하기를 권합니다. 자존감뿐만 아니라 요즘은 '뇌'의 작동까지도 자신의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도 합니다. 자존감, 힐링, 뇌과학 등이 교육계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나만 사다리의 꼭대기에 올라가고 나만 편하게 살면 그만이라는 사고를 주입합니다.
고전의 자기 계발서들이 다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현시대와는 맞지 않은 상황에서의 글인 탓이기도 합니다. 근현대 자기 계발서들이 다 나쁘다는 말도 역시 아닙니다. 동시대에 나온 자기 계발서 중에서도 큰 영감을 받거나 무릎을 칠 정도의 훌륭한 책들도 읽어본 경험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자신의 관심사와 독해 수준에 맞는 책은 언제나 자신에게 가장 좋은 책입니다. 다만 지금도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자기 계발서들이 언제나 상위권 혹은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좀 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자기 계발서'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붙기 시작한 19세기부터였습니다. 고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때부터 나온 자기 계발서들은 얄팍하거나 단순한 요약과 발췌 수준의 책이 대부분입니다. 자기 계발서를 선택하여 읽기 전에 그 책의 가치와 한계를 인식하면서 독서의 목적이 무엇인지 스스로 검토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보다 나은 양질의 독서 활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들은 정신의 바닥까지 고민한 흔적이 부족합니다. 삶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려는 '강박'에 이끌리어 너무 무리한 답이 적힌 답안지를 제시하죠.
훌륭한 책이 깊은 사색과 사유의 과정을 유도한다면 자기 계발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한 질문과 그에 따른 정확한 해답이라는 것을 제시하는 까닭에 읽는 사람들은 저자의 주장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됩니다. 사실, 수록된 내용들은 저자 자신도 실천할 수 없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입니다. 얼마든지 실행 가능한 이론과 실천 방안이라고 주장하지만, 단순한 사변적 내용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천하기 힘들고, 왜 그렇게 실천이 어려운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저자 자신도 모릅니다.
수많은 성공사례의 공통점만을 발췌하여 정리한 '성공 공식'은 너무나도 훌륭한 이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완벽한 성공 공식을 따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뿐이지요. 뛰어난 인재들은 대개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특출나게 발휘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것들은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배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지요. 간혹 출세한 사람이 직접 자신의 성공 사례를 털어놓는 자기 계발서도 있는데, 그런 책을 읽어보면 자신의 성공 이유를 엉뚱한 논리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작 자신도 자신이 왜 성공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모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소화가 안 될 때나 머리가 아플 때에는 소화제를 먹고 진통제를 먹어서 해결하기도 하는 것처럼, 어떤 막막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에는 가벼운 자기 계발서 읽기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미증유의 상황에 처했거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분야에 발을 옮길 때에도 자기 계발서가 큰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계발서에 대한 맹목적인 의지나 탐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의 삶에 닥치는 심각한 문제들은 대개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도 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계발서는 순간적이면서 가벼운 치유는 가능하게 하나, 근본적이거나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을 주지는 못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독자를 배려하여 쉽게 쓰인 자기 계발서에 대한 중독은 독해력이나 문해력 면에서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자존감, 힐링, 뇌 과학, 경영과 영업의 달인, 글쓰기 및 책 발간하기 등의 주제로, 그럴듯하게 포장한 채 독자들을 현혹하는 자기 계발서들에 푹 빠지면 빠질수록 더 깊은 실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철학, 사상, 인문, 사회 등 세상에 좋은 책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기 계발서에서 한 걸음 떨어져 좋은 질문을 많이 던질 수 있는 책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책과 결혼한 저의 배우자는 자기 계발서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