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갑자기 내가 사수가 되어 신입을 잘 키우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동안 인턴이니 뭐니하고 스쳐지나간 사람은 종종 있었지만
나와 같은 업무를 하는 "정직원"은 처음이었다.
난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사수는 커녕 나보다 개발을 잘하는 직원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잘한다는게 아니라,
지금껏 도긴개긴인 사람들과 일을 했거나, 혼자 했다는 의미다.
이런 내가 사수의 역할을 알리가 있나..
신입이 질문이나 문제가 생겼다고 할 때마다 난 두가지 고민에 빠진다.
1. 먹이를 줄 것이냐, 사냥하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냐.
내게 쉽고 빠른 방법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다.
정답을 알려주면 신입도 빨리 다음 진도를 나갈 수 있고, 나 역시 신경을 안써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의 코드를 복붙하는게 개발에 도움이 될까가 내 의견이다.
별거 아닌 에러나 지식같은 건 바로 알려줄 수 있다.
그건 굳이 구글링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더 비효율적이니까.
가령 "리액트 리턴문 안에서는 IF문 사용 불가에요" 같은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로직에 관련된 부분이나, 본인이 작성한 코드에서 나타난 에러는
내가 답을 알려주는게 궁극적으로 도음이 될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알려준 부분이 정답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리고 개발자라면 억울하지만 삽질을 하는 것도 경험이고 배움이다. (라는 내 생각...)
이걸 보고 지인은 "쉽게 알려주기 싫은 못된 심보"라고 말했다.
예전에 인턴이 있었을 때 쉬운 과제를 하루가 지나도록 못하길래
역으로 정답지를 먼저 주고, 이해한만큼 PPT로 정리해서 가져오라고 했었다.
그때 인턴이 가져온 PPT는 위키백과를 긁어온... 그런 내용이라 한참 어이없어 했던 기억이 있다.
이 기억으로 답을 알려주는 건 좋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못된 심보인건지는 잘 모르겠다.
2. 어디까지가 관리이고 어디서부터가 마이크로 매니징일까?
나는 R&R은 명확하게 구분되어야하고, 그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신입이 가끔 '이렇게 해도 되요?'라는 식의 질문을 할 때가 있다.
나는 그럼 보통 '마음대로 하면 된다'고 답변한다.
라이브러리를 뭘 쓰건, 로직을 어떻게 구현하건 문제가 될 것은 없기에
정말 말 그대로 마음대로 해도 된다.
그래서 신입이 무엇을 하던, 언제 퇴근하던, 코드가 어떻게 생겼건 뭐라하지 않는다.
개개인별로 코드를 작성하는 스타일이 다르고, 편한 방법이 있기 때문에
내게 익숙한 방법이 상대에게도 좋을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유지보수 차원에서 너무 쌩뚱맞은 규칙이라면 말을 하겠지만,
사전에 공유한 코드 컨벤션 안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아니라면
그 이상 간섭할 권리가 없지 않나....?
나에게 중요한건 신입이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고, 일정을 맞출 수 있는지이다.
그게 팀장님이 내게 부여한 추가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수를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뭐가 좋은 사수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시간 내에 개발을 끝내고, 모르는건 구글링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만 알지
사람을 교육하고, 관리하는건 배우지 못했다.
내가 부사수에게 취하는 행동은 과거의 내가 성장해온 방법이라, 그렇게밖에 알려줄 수 없다.
또한 우리 회사에 OTJ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력이 풍부해서 옆에 끼고 알려줄 상황도 안된다.
신입을 신경쓰자니 내 업무에 지장이 생기고,
내 업무만 집중하자니 신입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신입만큼이나 나도 부사수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