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몸에서 사리가 나올 때까지
영국은 모든 것이 느리다. 그냥 느린 정도가 아니라 이렇게 살면 전 국민의 몸에서 사리가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느리다. 5G는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신문물이고 런던의 지하철에서는 아직도 인터넷이 터지질 않는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비추어 보면 집에 인터넷을 설치하는데 일주일 반, 보일러를 고치는데 이주일, 부엌에 인덕션을 설치하는 데는 한 달, 동네 의사를 보는 데는 운이 좋아 삼일이 걸렸다. 영국 생활 8년 차에 접어드니 이제 행정 업무를 위해 전화 통화를 해야 할 때는 마음을 다잡고 차를 한 잔 내린 다음에 전화를 건다. 우아한 전화 연결음과 함께 차 한 모금을 마시며 언젠가는 받겠거니, 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느려 터진 나라가 어떻게 그 시절 세계를 제패하는 대영제국이 될 수 있었던 걸까 의문이 들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어도 영국은 아직도 그 시절의 조상덕을 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 전체가 문화유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국에는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는 보물들이 곳곳에 많고 그 보물들을 보러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온다. 뿐만 아니라 그 시절 다양한 분야의 선두를 달리던 영국에는 어마 무시한 양의 데이터 베이스가 쌓여있다. 현시대에도 그 시절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연구들이 많고 그 덕에 다양한 나라에서 학업을 위해 영국으로 오는 유학생들도 많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국 사회에 조금씩 더 발을 내딛을수록 영국의 힘은 이 느림에서 온다는 걸 깨닫는다. 영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차분하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봉쇄 기간 동안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총리실 사람들과 파티를 열었다는 사실을 BBC가 보도했을 때, 영국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시기에 영국에서는 코로나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았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기에 어떻게 국가의 원수라는 사람이 저럴 수 있는지 나도 충격적이었다. 나는 이때 한국식의 촛불 집회는 아니더라도 뭔가 정치계를 뒤흔들만한 큰 시위가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영국 사회는 무섭게도 차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뉴월의 서리마냥 차분하지만 조리 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로 표현했고 정치인들은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들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결국 자리에서 내려오는 보리스 존슨을 보며 한국 사회가 불로 정의를 지킨다면 영국 사회는 불 대신 얼음이라는 걸 느꼈다.
이 느림의 미학은 정치뿐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도 보인다. 영국에서는 버스에서 빨리 내리려고 서두를 필요가 없다. 버스가 다 서고 이층에서 일층으로 내려와도 기사님은 승객을 기다려준다. 출발할 때도 마찬가지다. 서둘러 출발하지 않고 손님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야 출발한다. 나이 드신 승객들의 안전에 최적화된 운행이다. 시간보다 안전이 우선인 사회이다 보니 정시출근에 대한 압박도 덜하다. 직딩 시절, 출근시간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는 이유로 런던브릿지 역을 그냥 말도 없이 닫아버려 당황했던 적이 있다. 150년도 더 된 런던의 지하철과 플랫폼은 서울에 비하면 작고 낙후됐다. 그래서 러쉬 아워에 사람들이 몰리면 안전상의 이유로 이렇게 중요한 역들을 종종 닫아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서울에서는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고 출근하던 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나에게 이건 상당한 문화 충격이었다. 시그널도 안 잡히는 지하철에서 상사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으니 나는 그날 말도 없이 30분을 늦었다. 어차피 늦은 거 뛰지도 않고 느긋하게 회사에 도착해 상사에게 "지하철역이 닫혀서 늦었어."라고 말했더니 쿨하게 "No worries!"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한국과는 정말 다르다는 걸 느꼈다.
서두르지 않는 문화 속에서 노약자와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덤이다. 런던에서는 대부분의 장소들이 노약자와 장애인을 환영하고 있다. 전동차를 타신 어르신들을 쇼핑몰이나 갤러리에서 자주 볼 수 있고 특수학교에서 견학 나온 아이들도 관광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다. 모든 아이들이 휠체어를 타고 있어 나의 순서가 천천히 오더라도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요?"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 그저 나의 순서가 오길 차분하게 기다릴 뿐이다.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없는 이 상황이 신기하면서 평화롭다. 그리고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글은 이렇게 써도 나는 여전히 느려 터진 영국 사회를 저주할 때가 많다. 하, 한국이었으면 하루 만에 끝났을 것을. 툭하면 내가 도망쳐 나온 한국의 빠릿빠릿함과 미화된 정신사나움이 그립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영국의 단면들이 모두 느림의 미학에서 왔다는 것 또한 부정하지 않는다. 느리게 가는 삶의 낭만도 제법 운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