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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뎅뎅 Sep 10. 2023

계약 취소하게 된 사연

 지난번 계약한 약국을 약 열흘 만에 취소하게 되었다. 계약서 작성 후 권리금의 10%에 해당하는 큰돈은 입금했으므로 그 이후로는 당사자 간의 단순 변심에 의한 계약 파기로는 수 천만 원을 잃을 수가 있다. 따라서 권리 계약 체결 후에 취소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 이후로는 임대차 계약 - 각종 행정 절차를 순서대로 하여 2~3주 안에 마무리해야 원 인수 날짜에 인수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 빠른 판단을 해야 해서 급하게 결정 후 계약을 진행하고 이런저런 리스크를 생각하며 잘 한 계약이 맞나 싶은 불안감에 2-3일 잠을 못 이뤘었다. 마침 약국 운영하는 동기들을 만날 일도 있었고 주변에 아는 약사님들도 연락이 와서 상의를 했는데 대부분이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셔서 한 시름 놓고 임대차 계약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1. 그런데 건물주가 해외에 있다 오기로 했다며 토요일에 시간을 잡고 (계약은 수요일에 함) 연락 주기로 한 매도 약사님이 약속 하루 전 날까지 연락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를 드렸더니 갑자기 본인이 전달을 못했다며 다음 주로 미루자는 것.. 여기서 1차 싸함. 인수 날짜에 맞춰 타이트하게 임대차 계약 날짜를 약속한 건데 이렇게 갑자기 미루면 어떡하냐고 말해봤지만 70대이신 매도 약사님은 자꾸 본인 말만 해대시고 사모님이 전화 바꾸시더니 "젊은 사람이 좀 기다릴 줄도 아셔야죠"라는 이상한 말을 하심.. 말이 안 통한다 생각해서 중개인에게 전화했더니 중개인도 이제 알았다며 최소 다음 주 수요일까지는 맞춘다 연락. 불안했지만 뭐 방법이 없으므로 알았다고 했고, 다음 주 월요일 연락을 받기로 했다.


2. 월요일도 오후까지 기다렸지만 연락이 없다. 또 먼저 중개인에게 연락했더니 갑자기 매도 약사님이 인수를 올해 말로 미루고 싶다고 한다며 "안 되시죠..?"라는 개어이 없는 말을 한다. 인수 날짜는 3주 후인데 무슨 말씀이시냐.. 했더니 그럼 다시 말씀드린다고 전화를 끊었다.

 이때부터는 아 진짜 잘 못 흘러가고 있다.. 잘 못 걸렸다는 느낌이 엄습했다. 형부와 통화를 하고 형부가 중개인에게 이번 주까지 임대 날짜 약속 안 할 경우 계약 진행에 협조하지 않은 위반이므로 배액배상 물어내라고 강하게 이야기해 주시고, 나에게는 웬만해서는 약사와 중개인과 통화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괜히 말 잘 못 했다가 내 의지로 약국 안 하고 싶다는 말이 나올 경우 계약금이 날아갈 수도 있으므로..

 도대체 매도 약사님이 무슨 꿍꿍이로 이런 짓을 하시는 건지 A시로 찾아가고 싶었지만 일단 이번 주까지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주변에서는 어찌됐든 해결되니 불안할 필요 없다고 했고 나도 의연하게 생각하려 했지만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계속 짓눌린 상태로 겨우 일주일을 보냈다. 일주일 내내 혹시 임대차 계약 연락 올까 핸드폰을 쥐고 살았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고, 결국 금요일이 되었다.


3. 금요일이 되자 결단이 났겠지 싶었는데, 중개인이 연락와서 아직 이야기가 안됐는데 본인들 스케줄 상 다음 주 월요일에 약국 가보겠다 또 미루는 것이다(진짜 장난하나ㅠㅜ)

  나는 월요일에 그렇게 경고했고 시간도 줬으니, 말이 제대로 전달되어 금요일 이후로는 계약이 파기되고 나는 계약금을 돌려받는다 말이 된 줄 알았는데 그냥 유야무야 해결된 것이 없는 것. 중개인 말론 매도 약사가 전화도 안 받으신다고 하시고..(그러면 찾아가야 되는 거 아니냐구여..) 또 기다려달라 하니 이제는 나도 마냥 기다리는 건 당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도 약사님은 내 전화도 안 받으셨고, 결국 오빠 통해 내용 증명 작성 후 우체국 등기를 붙였다. 우체국 가는 길에 눈물이 아주 터지려고 하는데 울면 지는 거 같아서 꾹 참고 등기 침..띠바 ㅠ

 그 와중에 중개인은 전화가 와서 본인들이 돈을 빌려줄 테니 계약 진행하라는 이상한 말을 하심. (임대차도 진행 안 되는 상황에서 뭘 믿고..?) 중개인은 중개비 받는 게 목적이니 무리하게 계약을 진행하려는 것 같아 이건 내가 내려가서 담판 지어야 하는 사안이란 확신이 들었다.


4. 그리고 오늘, 토요일. 오빠(변호사)가 마침 스케줄이 되어서 같이 A시로 내려갔다. 매도 약사가 마냥 우길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 상의를 한 후에 손님 한가해지는 시간에 들어갔다.

 약사님은 예상대로 본인 사정만 구구절절 말하더니, 올해 말 12월로 미루면 안 되냐는 어이없는 말을 이어나가셨고.. 너무 어른이시라 예의를 지키려고 했지만 나도 순간 욱해서, '약국이 팔기 싫으신 거였으면 저에게 말을 해주셨어야지 연락도 안 받으시고 무책임하게 이러는 게 어딨냐. 약사님 상황과 어떤 계획이신 지는 저에게 알려주셨어야 하지 않느냐. 그리고 그럴 거였으면 계약을 진행하지 마셨어야지, 갑자기 제가 찾아오니까 몇 달을 미루자 하면 어떡하냐..'라고 했지만 여전히 말은 안 통했고 진짜 분 단위로 말이 계속해서 바뀌는 걸 눈앞에서 보고 딥빡...

 3시간 넘는 추궁과 고투 끝에 현재 상황을 보니, 현재 약국에 행정 처분이 많이 얽힌 상태였고 본인의 면허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으며, 채무 관계도 매우 복잡하여 본인 면허 말소 전까지 약국을 운영해서 돈을 벌고 싶은데 먼저 계약 파기를 하면 위약금을 물어낼까 봐 연락을 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겨우 건물주 번호를 얻어내 통화를 해보니 월세도 올릴 예정이라고 하고..

 이래저래 몰랐던 사실들과 계약 불이행, 계약 내용 변경까지 겹치고 나도 너무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인 데다, 건물주 만나서 임대차를 한다고 해도 지금 약사님 태도로는 인수가 수월하지 못할 것 같아 그냥 약국 계약은 취소하기로 했다. (그 와중에 돌려줄 계약금 없어서 화요일까지 주기로 서약서 쓰고 옴 ㅠ)


참 살다 보니 별 일을 다 겪는다.. 그래도 중개인에게 일임했으면 위의 사실도 모른 채 계약하고 더 복잡한 상황을 마주했을 수도 있었는데 내려가서 대면하길 잘한 것 같다. 일종의 인생 경험으로 치자 자기 위안을 하며 올라오긴 했지만 참 멘탈 털리는 열흘이었다. (아직 계약금 환수 못 했으니 끝난 건 아니지만) 그나마 약국 안 근무 약사의 삶은 온실이었구나 싶기도 하고 약국 계약이나 매매에 관한 모든 사람들을 사기꾼으로 의심해야 할 것 같다. 그간 수 없이 약국 계약을 도와줬던 지인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고 이 이상 최악은 앞으로 경험하지 않을거라 위로해주셨다. 일단은 일단락 됐으나 혼자 거친 세상 헤쳐나가기 너무나 버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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