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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 May 29. 2023

독일의 표현주의가 현재 남긴 것들

독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나는 독일 뮌헨의 거리를 걷는 내내 가장 좋아하던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OST를 들었다. 학원물이 취향인지라 청소년의 방황과 성장을 그리는 이 극도 단번에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뿌듯했지만 힘겨웠던 총연출직을 끝나자마자 봤던 극이라 더 와닿았던 것도 있었다.


보통 극작품들은 시대적 배경을 가장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간다. 봤던 작품들 중 인상 깊었던 몇 작을 떠올려보면 <미드나잇>은 구소련의 지배를 받고 있던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명성황후의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과 김옥균의 갑신정변을, <히스토리 보이즈>와 <어나더 컨트리>는 1900년 대의 강압적인 영국 교육관을 보여준다.

 

2021년, 가장 사랑했던 작품

 마찬가지로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1891년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히틀러와 나치의 등장 직전이니 전체주의가 한창 만연하던 시절이다. 작품은 당대 시절이 얼마나 아이들을 짓누르고 있는지 보여준다. 지위가 저만치 아래에 있던 교사들은 국가의 지시만을 따라야 했고, 종교라는 이름 아래로 학생들을 통제했으며 아이들은 그렇게 기계처럼 공부를 해야 했다. 그 속에서 방황과 혼란을 겪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다.


 극은 진행되는 내내 아슬아슬하다. 부모와 교사가 억압한 호기심은 더 큰 위험을 야기한다. 작품은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모든 것이 파격적이다. 독일 극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 깨어나는 봄‘이 원작이다. 희곡집은 텍스트 하나하나가 난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훨씬 어지러운데, 두 작품 모두 아이들은 한창 가치관이 잡혀가는 나이에 억누름 속에서 어른들과 맞선다. 전체주의를 꼬집기 위해 독일의 당대 표현주의 기법을 사용해 줄거리에 자극적인 요소를 때려 넣었다. 뮤지컬에서는 보기 드문 무대석과 핸드마이크를 통해 형식을 파괴했다. 작품 하나를 보았을 뿐인데 독일이 얼마나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내용은 분명 자극과 자극과 연속인데 무대 막이 내리면 마음이 그렇게 따듯할 수가 없었다. 작품 제목에서 그 따스함을 확인할 수 있겠다. 1891년의 독일 아이들의 눈에서는 세상을 향한 반항심이 잔뜩 느껴지는데, 나는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그런 모순을 맛보는 게 좋았다. 늘 맨 앞 열에 앉아 눈싸움을 하듯 배우들을 노려보며 더 분노를 표출하라고 속으로 응원하기도 했다. 그렇게 21살 가을, 2주 간 동국대 이해랑 예술 극장을 찾아 총 5번을 관람했다. 전체만을 생각하던 어른들 아래에는 세상 가장 순수한 영혼이 깃든 독일의 아이들이 있었다. 무언가 이건 단단히 잘못된 교육이라고 느꼈던 아이도 있었고, 시험에서 자주 낙방해 괴로워하다 삶의 마감을 택한 아이도 있었고, 결국 자유를 찾아 보헤미안 마을을 찾아간 아이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미 색이 바랜 세상을 겪어버린 아이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이후 세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을 감싸고 이끈다. 살아보기로 결심한 그들이 뭉치고 뭉쳐, 사람과 사람 간의 따스한 연대를 만들어낸다. 전체가 아닌 개인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한다.


다하우 강제 수용소, 그들의 만행을 적어둔 모든 텍스트가 자극적이다. 더불어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과거를 잊지 않고 있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예술은 언제나 이기게 되어있다. “ 직설적으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던 시절, 독일의 표현주의 작품들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의 감정은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그 작품을 후대의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누군가는 독일의 전체주의를 비판할 수도, 삶이 힘들다고 생각했던 누군가는 꿋꿋이 살아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겸손해할 수도 있겠다. (후자는 사실 내 이야기다.) 그렇게 새로운 감상들이 차곡차곡 입체적으로 쌓이면서 작품의 가치도 올라간다. 그런 작품은 꼭 원작의 나라에서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거리를 걷는 내내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스프링 어웨이크닝> 노래를 틀었다.


다하우 수용소
독일의 녹음, 엄청나게 푸릇푸릇하다.
건물들엔 다양성을 상징하는 프라이드 국기와, 전쟁을 겪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많이 걸려있었다.

 3박 4일,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독일을 직접 와보니 알 것 같다. 이 나라가 전범국으로 전락한 이후에 다시 잘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당연히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 제일은 그들의 기억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잊지 않고 기억한다. 역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환경 보호가 그들 삶에서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을 만큼 자전거를 애용하고, 마켓마다 빈 병을 펀딩 할 수 있게 해 두었다.) 아마도 선진국으로서 환경오염의 주범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세계 대전 이야기는 말을 얹지 않아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가 나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전체를 위해 독일인들은 개인마다 노력하고 있었다. 이전 세대의 삶을 기억하고 전시하던 이 나라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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