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공부를 잘한다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는 바람에 중요한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꽤 있다. 예를 들어보자. 초기에 비행을 연구했던 사람들은 '깃털'과 '날개'가 '비행'과 강력한 인과 관계가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날아다니는 새는 대부분 '깃털'과 '날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와 동일한 그것을 달고 대성당에서 뛰어내리며 열심히 파닥거리던 인간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깃털'과 '날개'는 비행과 상관관계는 있었지만 인과관계는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은 이후 '베르누이의 원리'를 통해 더 정확한 비행의 인과관계에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이와 유사한 오해를 '학교 성적'과 '성공적인 인생'간 관계에 대한 믿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막연하게 높은 성적이 행복하고 부유한 삶으로 너를 이끌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깃털과 날개를 단 채 대성당에서 파닥거리며 추락하는 인간처럼,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노예처럼 살아가는 똑똑한 어른들이 주위에 너무 많다.
그것은 입시학원의 마케팅, 부모들의 열등감이 만들어내는 가짜 믿음의 결과일 수도 있고 사농공상이라는 이 땅의 오래된 관념 때문일 수 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너의 학교 성적은 네가 너희반 친구들보다 우등한 인생을 살 수 있다거나, 열등한 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숫자가 아님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성적은 성적일 뿐이고, 등수는 등수일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의미하지 않는다. 가치중립적이다.
오해하지 말아라. 나는 지식의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 공부를 게을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성실함과 학습능력은 네가 가진 최고의 무기가 될 것이다. 지식과 지혜가 없는 네가 살게 될 세상은 지옥일 것이고, 지식과 지혜를 영원히 추구하는 네가 살 세상은 놀이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를 둘러싼 집단의 분위기에 떠밀려 학교 성적과 명문대 간판과 같은 것에 큰 가치를 두고, 그 정도에 안주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만의 뚜렷한 목적 없이 시키는 대로만 열심히 공부한다면 결국 너는 누군가의 목적을 위해 활용되기 좋은 인적자원으로 살아갈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러한 인적 자원이 필요하기에 그 길로 너를 안내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을 너도 따라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한 인생으로 너를 안내하는 어른에게 반기를 들어라.
나는 네가 스스로 목적을 가지고, 주도적인 삶을 살기를 권한다. 네가 너만의 목적 없이 어른의 인정을 받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면, 당장 그 공부를 내려놓아라. 그리고 너에게 이유 없이 공부를 강요하는 어른에게 '왜'라는 질문을 연달아해 보아라. 대다수의 어른은 네가 반항한다고 생각하며 화를 낼 것이고, 나머지 어른들도 너의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네가 닮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럴땐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네 안의 '왜'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자. 그 답이 불완전하고 허접해도 괜찮다. 그 불확실한 가설을 검증해 가는 과정이 진짜 공부이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너의 목적을 찾아가기 위한 유용한 도구와 지식의 힘을 이야기하며 오늘의 주제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