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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Jan 27. 2024

지혜가 뭐더라?

소크라테스 변론 읽기 Day 5, 6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증인으로 델포이의 신을 지명합니다.


I will refer you to a witness who is worthy of credit; that witness shall be the God of Delphi. 델포이 신은 예언의 아폴론을 뜻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국가 대소사를 결정할 때 신탁을 들어 가이드를 잡았다죠. 아무도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신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70살 넘은 영감의 배포가 대단합니다. 뻥카를 치더라도 이 정도는 되어야 이름을 남길만 하구나 싶었어요.


델포이의 신이 어떻게 증인이 되는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


그에 대한 소문이 흉흉해진 것은 그의 지혜 때문인데. 그것은 그저 사람이라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며 (wisdom such as may be attained by man), 소피스트들이 주장하는 궁극의 앎은 아닙니다 (a superhuman wisdom which I may fail to describe, because I have it not myself). 그의 지혜로움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건지 확신을 가졌던 건지, 친구 카이레폰이 델포이 신전에 가서 물었다네요.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자가 있는가?" 하고요. 그곳의 사제가 신의 이름으로 답해주길 "그 보다 더 지혜로운 자는 없다 no man wiser" 했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것을 신이 낸 수수께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현명하고 똑똑하고 지혜롭기로 소문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이 수수께끼를 풀고자 합니다. 유명인들에게 질문을 했겠죠. 결과부터 말하자면, 다들 하나같이 기대이하인 데다, 심지어 본인들이 지혜롭지 않다는 것조차 모르더랍니다. 유명할수록 그 무지의 정도는 더 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을 유명할수록 오만했다는 말로 봤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래도 자신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은 알고 있으므로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깨달음을 그는 상대방들에게 분명히 전달해 줬으며, 그렇게 그들과 그 추종세력으로부터 미움을 샀다고 말합니다.



이쯤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혜가 뭐더라?"


지혜는 언젠가 유행했던 여자이름이기도 합니다. 저도 똑똑해지고 싶은 마음에 그 이름을 몹시도 걸치고 싶었음을 고백합니다. 모든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물쭈물하지 않고 당당한 모습, 존경받는 모습을 꿈꿨던 것도 같네요. 돌이켜보면 부끄럽습니다.


정말, 지혜롭다는 것은 뭘까요?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요? 아는 것이 많은 걸까요? 인터넷에 정보가 제일 많지만 인터넷을 지혜롭다고 하진 않으니 이건 아닌듯하네요. 몇 수 앞을 내다봐야 하나? 성공하는 능력인가? 아는 바를 행하는 사람인가? 주변에 지혜로운 사람이 누가 있지? 어떤 사람이 지혜롭지? 소크라테스는 어떤 지혜를 사람들에게 기대했고 실망한 걸까?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변론을 읽는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에요.



Wise 지혜로운 :

Having or showing the ability

To make good judgements,

Based on a deep understanding and experience of life.

Syn/ intelligent, bright

Etymology/ to advise, to direct, to show the way, to know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지혜롭다는 것은 사물을 명확하게 보고 판단하며,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네요. 어떤 버섯은 먹으면 안 되는지, 어떤 열매가 맛있는지 아는 능력이 포함될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주변인들의 생존확률을 높여주죠. 사전적 정의에 부합하지만, 어쩐지 소크라테스가 찾아다닌 지혜로운 사람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함께 읽는 톡방에서 누군가 '많이 아는 것'과 '지혜로운 것'의 차이를 언급했습니다.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지식과 지혜는 다르죠. 지혜는 명성이나 가방끈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8살 아이의 질문 "왜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땅이 넓은데 더 가지려 해?"에서 저는 지식보다 지혜를 봅니다. 어느 어머님의 입말로 썼다는 시의 한 구절 "보름 아녔던 그믐달 없고, 그믐 아녔던 보름달 없지"에도 지혜가 있네요. (소크라테스는 왜 정치인부터 찾아갔답니까. 마을의 나이 지긋한 할머니나 꼬맹이들부터 찾아갔으면 그의 인생이 좀 더 편안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톡방에서 또 누군가 '지혜서'라는 구약성경의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지혜란 신의 속성 가운데 하나로, 명석하고 거룩하며 섬세하고 민첩하고 분명하며 손상될 수 없고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자유롭고 자비롭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모든 것을 살핀다고 합니다. (좋은 것은 죄다 쓰여있네요.) 그리고 지혜의 시작은 가르침을 받으려는 자세라는 구절이 있었어요. 저는 이마를 쳤습니다. 배우려는 마음가짐 자체가 지혜로 통하니까요.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philo-sopher입니다. philosopher 철학자이죠.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 philo-sophie, 즉 철학은 배우려는 자세, 그러니까 겸손의 다른 말로 이해됩니다. 이쯤 되니 그가 찾아다닌 지혜로운 사람은 철학자였던 것 같네요. '정말 아름답고 선한 것 anything really beautiful and good'을 겸손한 마음으로 탐구하는 철학자였을 것 같다고, 생각해 봅니다.




"Well, although I do not suppose
that either of us knows
anything really beautiful and good.
I am better off than he is,
- for he knows nothing,
and thinks that he knows;
I neither know nor think that I know."

"글쎄요, 저희 둘 다 정말 아름답고 선한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그 사람보다 나은 것이 있습니다. 그는 모르면서 알고 있다 생각하는 반면
저는 제가 모른다는 것을 아니까요."




Unsplash- Alex Shute



앞서 언급된 델포이의 신전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 Know Thyself 당신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모른다는 것을 알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틀릴 수 있습니다. 모를 수 있지요. 지금도 사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철학이 배우려는 자세라면,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은데도 조금 새롭고 시원한 느낌이 드는 이런 것이라면. 계속해보겠습니다.



덧붙이는 말.

상대방의 미움을 살 것이 뻔한데도, 그 행동을 하는 소크라테스를 결코 지혜롭다고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좀 바보 같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절대 경계해야 할 행동 아닐는지요. 함께 읽는 톡방에선 그게 사고형 T의 특성이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분명 T라는 거죠. MBTI는 항상 헷갈렸는데 덕분에 상대방에 감정적으로 공감해 주는 F와 옳고 그름에 근거해서 사고하는 T성향에 대해 완벽 이해했습니다. (저는 사람은 대부분 F와 T 사이의 어중간한 위치에서 오락가락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굳이 덧붙이는 저, 혹시 T일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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