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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Mar 16. 2024

아름다운 것들

소크라테스 변론 읽기 Day 28, 29, 30, 31, 32 <끝>



오늘은 2024년 3월 16일입니다.


온라인 원서 읽기 V-Club의 소크라테스 <변론> 함께 읽기는 3월 1일에 32일 차까지 마무리됐습니다. 다른 문학 책 읽을 때처럼 활발하다 할 수 없는 톡방이긴 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조용해졌습니다.



그래도 꿋꿋이 마무리 중입니다. 굳이 이렇게 끝까지 읽고 쓰는 이유.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꼭 기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안 쓰면 다 까먹어요.)


책을 읽는 동안 영어와 한글을 통틀어 마음을 가장 크게 울린 말이 '아름답지 않다'였습니다.


네, 아름다움에 대해 몹시도 얘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나는 내 자식 중 어느 누구도 이곳으로 데려와 내가 무죄방면되도록 투표해 달라고 여러분에게 애원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중략)... 이 나이에 이런 명성을 누리면서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I feel that such conduct would be discreditable to myself.



감정적 호소를 배제하는 이성적 행동에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썼습니다. 영어로 '불명예스럽다 (discreditable)'였지만 그리스어 원문을 번역한 천병희 선생님 책에선 '아름답지 못하다'입니다. 도서출판 숲 2019년 판 60쪽이요. 원문의 그리스 단어는 뭐였을까 궁금합니다. 혹시 아시는 분 계신다면 귀띔해 주시면 좋겠어요.


위 문장은 사실 이미 24일 차에 나온 이야기였어요. 이후로도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운 것', '미덕', '제일 좋은 것'이란 말을 꽤 합니다. 그 말들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내가 미덕과 그 밖에 대화를 통해 캐묻곤 하던, 여러분이 들었던 그런 주제들에 관해 날마다 대화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최고선이며, 캐묻지 않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면...(하략)

If I say again that daily to discourse about virtue, and of those other things about which you hear me examining myself and others, is the greatest good of man, and that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인간에게 제일 좋은 것은, 지혜롭게 살고 있는지 캐묻고, 미덕에 대해 대화하는 것이라고요?


혹시 여러분이 사람들을 사형에 처함으로써 누가 여러분의 생활방식이 나쁘다고 비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그런 식으로 비판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으며, 가장 아름답고 가장 쉬운 방법은..(중략) 최대한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That is not a way of escape which is either possible or honorable; the easiest and noblest way is not to diabling others, but to improving yourselves.


캐묻는 사람을 죽인다고, 그 질문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아름답지도 않다고요?


꽃잎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이슬방울, 불타는 노을, 티모시 샬로메의 웃는 얼굴,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이나 향 짙은 장미꽃이 아름다운 것인 줄 알았습니다.


감성 넘치는 한 컷의 사진이나 글이 아름답지, 명예롭고 고매한 행동이 눈부시다 생각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요. 그런 행위가 대단한 것도 같긴 한데, 아름답다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지인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연초에 유흥가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지인 차에 손이 부딪혔다고 차를 세웠대요. 차에서 내려 상대방을 살피고, 극구 괜찮다는 상대방에게 연락처를 주며 꼭 병원에 가보시라 마무리를 했다고 합니다. 상대방으로부터 병원 다녀왔으나 괜찮다 문자가 와서, 다행히 별 일 없이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한 달이 지난 2월의 어느 날 연락이 왔대요. 손이 많이 안 좋다며 300만 원 넘는 돈을 요구하더랍니다.


물론 사람 몸이 아프다는데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보험회사에서도 이런 경우는 적당히 합의하라고 합니다. 한 달이면 주변 씨씨티비도 삭제된 이후일테고요. 차량 블랙박스도 정리된 상태입니다. 얘기를 들은 누군가가 "억울하지만 이건 그 사람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그때 양심이란 단어가 참 촌스럽게 들렸습니다.


그리고 양심이란 단어를 촌스럽게 느끼는 저 자신에게도 내심 놀랐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엔 양심을 내던지는 행동은 추하고, 지키는 인간이 아름다운 거겠죠?!


내 몸과 마음이 내켜서 하는 일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물론 좋아서 하는 일이 옳은 일이라면 금상첨화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내가 행복하면 세상이 행복하지 않나요. 옳다는 관념은 바뀔 수 있는 거잖아요? 양심에도 융통성이 요구되는 시대잖아요?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언급한 '아름답지 않다'는 말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엉겨 붙습니다. 먼지 돌돌이에 먼지가 말리듯 말이죠.


그가 말하는 옳은 것, 아름다운 것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배심원 여러분, 여러분도 자신감을 갖고 죽음을 맞아야 하며, 착한 사람에게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날 수 없으며, 신들께서는 착한 사람의 일에 무관심하시지 않다는 이 한 가지 진리만은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Know of a certainty, that no evil can happen to agood man, either in life or after death.


그는 착한 이들에게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날 수 없다 확신합니다. 믿기 어렵지만, 모든 것을 따지고 검증했던 그가 자신 있게 하는 말이니 믿어보고 싶어요.


<변론>을 찬찬히 읽으면서 보니까, 소크라테스가 밉상이긴 하지만 그의 말에 신뢰는 갑니다. 돈에서 미덕이 생기는 게 아니라 미덕에서 돈이 생긴다고 한 말도 믿어보고 싶네요.


소크라테스는 마지막에 자신의 아들들이 미덕보다 돈에 더 관심을 가지면, 자신이 아테네 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그들을 꾸짖어 달라고도 말합니다.


그에게 아름다운 덕, 미덕의 가치는 그 무엇보다 앞섰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내 아들들이 장성했을 때 미덕보다 돈이나 그 밖의 다른 것에 관심이 더 많다 싶으면, 내가 여러분에게 안겨준 것과 똑같은 고통을 그 아이들에게 안겨줌으로써 복수하십시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젠체하면, 내가 여러분을 나무랐듯이, 그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은 소홀히 하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데도 자신들이 쓸모 있다 생각한다고 나무라주십시오. 그게 정당한 대접을 받는 셈이 될 것입니다.

As I troubled you, if they (Socrates' sons) seem to care about riches, or anything, more than about virtue; or if they pretend to be something when they are really nothing, - then reprove them, as I have reproved you.... (중략)... And if you do this, both I and my sons will have received justice at your hands.



철학은 인간으로부터 허무, 실존, 악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 많은 철학가들이 인간을 우주의 먼지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가엾고 비참하게 만든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제가 느꼈던 철학의 매력이기도 했습니다. 워낙 아는 게 많지 않아서 자신은 없습니다. (실존주의로 철학에 뜨뜻미지근하게 발을 담그다 보니 생긴 오해일지도 모릅니다.)


소크라테스는 달라 보입니다.


예수, 석가모니처럼 인간 구원의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아요. 사람의 고귀한 가능성을 봐주는 것 같습니다. 저도 고매해질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말이나 글뿐 아니라, 행동으로 그래야 한다고 말이죠.


그는 이제 법정 발언을 마무리합니다. 며칠 내 사형이 집행될 텐데. 그의 말은 여전히 꼿꼿해요. ‘스스로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그의 모토를 담아 말합니다.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당신들은 살러 가고 나는 죽으러 갑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좋은 운명인지는
신 만이 압니다.


The hour of departure has arrived,
and we go our ways -
I to die, you to live.
Which is better
God only knows.




I to die, you to live. 그의 마지막 말이 삶을 이어가는 저에게 과제를 남깁니다. 오늘 어떤 행동과 말로 미덕과 지혜를 찾을 거냐고요.


사람은, 우린, 정말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Unsplash- Greg Rakozy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부분. 맨 가운데 서 있는 두 명이 플라톤(왼쪽),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 플라톤의 오른편, 그림 왼편의 올리브색 옷 입은 인물이 질문하는 소크라테스.



이 모든 이야기를 기록한 이는 소크라테스 본인이 아니라 플라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실상 어떤 저작도 남기지 않았죠. 그러고 보면 인간 구원의 가능성을 얘기하는 것과 더불어, 스스로 책을 쓰지 않았다는 점도 다른 종교 지도자들하고 비슷합니다.


플라톤은 이상주의자였다고 들었습니다. 그의 행적에 이상주의자의 시선이 반영된 것이죠. <변론>에서 보이는 말과 행동은 소크라테스의 탈을 쓴 플라톤일지도 몰라요. 소크라테스가 죽고 약 1500년이 흐른 후,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이란 그림에서 하늘을 가리키던 그의 포즈가 새삼스럽습니다.


플라톤이 조금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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