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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Mar 06. 2024

지지받는 경험

소크라테스 변론 읽기 Day 23, 24


소크라테스는 변론 후반부에 자신의 지지자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릅니다.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기소 내용을 언급하면서요. 이제 그의 나이가 70이 넘었으니, 처음에는 젊었으나 이제는 나이가 지긋해진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는 "젊었을 때 자신들에게 내가 나쁜 조언을 했다는 것을 알" 사람들을 지목합니다. 그와 인연이 오래된 사람들을 가리켜 "(기소 내용이) 사실이라면 몸소 연단에 올라 당연히 나를 고발하고 나에게 복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Those should come forward as accusers, and take their revenge.


그렇게 열거되는 이름에 그 유명한 플라톤이 있고,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받았을 때 도망치게 해 주려던 크리톤도 있어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온 사례도 있습니다. 그들은 소크라테스 편에 선 지지자들입니다. 


저기 저 크리톤은 나와 동갑이자 같은 구역 출신이며, 여기 있는 크리토불로스의 아버지입니다. 스펫토스 구역 출신인 뤼사니아스도 와 있는데, 그는 여기 있는 아이스키네스의 아버지입니다. 또 저기 저 안티폰은 케피시아 구역 출신으로 에피게네스의 아버지입니다. 그 밖에 형제들이 우리 동아리 회원이었던 다른 이들도 와 있습니다. 테오조티데스의 아들로 테오도토스의 형인 니코스트라토스 말입니다. 테오도토스는 죽었으니 형에게 무엇을 부탁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데모도코스의 아들로 테아게스와 형제지간인 파랄리오스도 여기와 있고, 아리스톤의 아들이자 저기 저 플라톤의 형인 아데이만토스도 여기 와 있으며, 여기 있는 아폴로도로스와 형제간인 아이안토도로스도 와 있습니다.


길고 긴 지지자 명단에는 연로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자신 옆에 서 있는 것은 무엇을 뜻하겠냐고 소크라테스는 반문합니다. 그것은 멜레토스의 말이 거짓이기 때문이고, 진실과 정의를 위한 것 아니겠냐고 강조합니다. 간지가 좔좔 흐릅니다.


Why should they too support me with their testimony?
Why, indeed, except for the sake of truth and justice, 
and because they know that I am speaking the truth, and that Meletus is a liar.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누가 있지? 생각해 보다가. 인간관계 스펙트럼도 너무 좁고, 답변이 빈약해서, 질문을 바꿉니다. 지지받아본 경험으로 어떤 것이 있었나 하고요. 그러다 보면 혹시 모를 지지자를 찾아볼 수 있을까 싶습니다.


얼마 전 해외 출국 전 여권을 두고 와서 집에 급하게 다녀온 일이 생각납니다. 그때 퇴근시간 막히는 길에서 저를 시간 맞춰 공항까지 태워주신 택시 기사님이 떠오릅니다. 그날 처음 만났고 또 만나기 어려운 인연인데도, 기꺼이 그 압박감을 자기 몫으로 덜어가신 택시 기사님.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합니다. 이런 것도 지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도 떠올라요. 제가 무슨 행동을 해도, 엄마라는 이유로 안아주는 아이들.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고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면, 지지받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도 같아요. 근데 이건 뭔가 무조건적입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예요. 일단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입장이지요.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지지자라 칭하는 것은 반칙 같아요.


회사나 업무에서 저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던가. 저희 회사는 규모가 작아요. 제가 만나는 사람들도 매우 한정되어 있고, 지지받은 경험을 찾아내기 어렵네요. 그 작은 사회 속에서는 자칫 파벌을 만들 수 있는 행동보다는 오히려 외롭게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단 생각도 듭니다. 인생은 '독고다이'라더니, 정말 내 편 찾기가 이렇게 어렵군요. 소크라테스가 좀 부러워집니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소크라테스 안 부럽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고 좋아요를 받아봤거든요. 이것도 분명 순간적이지만 지지를 받는 경험입니다. 제가 어떤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그 글을, 생각을, 느낌을, 구절을, 지지한다는 의사표시이기도 하고요. 그 맛에 이 시간, 브런치에 머물러있나 봅니다. 



Unsplash - Emma Goss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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