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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May 24. 2024

화들짝 소금

그냥 해보는 이야기: 여자 1의 순간



엠티라고 꼭 멀리 갈 필요 있나. 어디서든 밤새 술잔 기울이고,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 나누고, 피곤한 아침을 함께 맞는 루트인데. 그럼 그럼. 동아리 엠티를 서울 북쪽 어느 산자락 계곡으로 간다고 했다. 지하철 4호선 타고 거의 끝까지 갔던가. 지하철역이 수유였던 것 같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선배들이 잡아뒀다는 식당으로 갔다.


계곡에 빼곡하게 들어찬 닭백숙 식당들마다 사람들이 가득하다. 죄다 대학 엠티 왔나 보다. 목소리가 크고 들떠있고 몰려다니는 사람들. 나도 그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내가 온 곳은 대학 동아리 엠티였다. 그래도 학과 엠티에 비해서 사람이 적었기에, 이야기도 즐거웠고,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었다. 좀 삐꾸같은 동아리였지만 마음이 편안했다. 너드 커넥션 같은 걸까.


동아리는 순수미술동호회였다. 이름도 촌스러운 화우회. 인기 절정의 핫한 동아리는 아니었다. 바로 옆 만화 동아리는 시끌벅적했고, 저기 영화 동아리와 사진 동아리에는 멋있고 스타일 좋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여기 화우회 신청데스크는 상대적으로 꽤 조용했다. 신입생 신청을 받는 사람들도 대체로 나사 하나씩 빠진 모습이었고, 간혹 정신줄이 너무 당겨진 것 같은 사람도 있었다. 머저리들, 너드들이 널렸다.


그 머저리들이 엠티를 왔다. 나는 이제 막 대학생활을 시작했으니 엠티가 뭔지 경험은 해보자 싶은 인류학자적 마인드로 참여했달까. 매우 불편하면서도 편안했고, 시끄럽게 떠들었던 것 같다. 잠도 거의 안 자고, 뭔가, 들떠서 먹고 노래 불렀던 것 같다. 아마 목소리 크게 낼 수 있는 노래를 불렀겠지. 분명 당시 유행하던 노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했는지, 정확하게 누구랑 이야기를 나눴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


잘 기억나지도 않는 첫 엠티를 굳이 끄적이려는 것은 어떤 순간 때문이다. 그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나와 친구, 또 한 선배가 함께 버스를 타고 먼저 지하철역으로 떠났다. 토요일 아침에 갈 곳이 있었던 걸까. 그렇게 셋이 일행과 떨어져 먼저 나왔던 것 같다. 햇빛이 눈부셨고, 버스에 자리가 났다. 친구가 먼저 앉았던가. 나중에 나도 앉았고. 그 선배도 앉았다.  


외박의 여파, 밤새 머저리들 사이에서 떠든 엠티의 여흥으로, 졸음이 인터스텔라 중력 큰 행성의 파도만큼이나 밀려왔다. 잠들지 않으려고 버티지만, 나른한 버스의 덜컹거림, 쏟아지는 아침햇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졸았다. 버스 라디오에서는 무슨 노래가 나왔던가? 어깨 위에서 덜렁거리는 내 머리가 자꾸 그 선배의 어깨로 떨어졌다. 화들짝 놀라서 잠에서 깼고. 이내 다시 내 머리는 또 그 어깨로 떨어졌다. 덜컹거리는 버스 속에서 내 머리는 꾸벅꾸벅 절구질을 했다.


그때 그 화들짝 하는 순간. 내가 정말 놀란 것은, 그 선배에게 예의에 어긋나게 해서가 아니었다. 어깨가 닿을 때마다 느껴졌던 명치끝의 싸한 짜릿함 때문이었다.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너무 강렬해서 놀랐고. 너무 졸려서 더 생각하지 못했다. 이야기의 전후가 어떻게 되는지 역시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아마 그로부터 얼마가 지나 우리는 좋아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아주 아주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갔다.


미련이 있다거나, 그 남자가 보고 싶은 것, 당연히 아니다. 그 순간의 화들짝 하는 느낌. 그것이 소중하다. 나이가 들수록 그게 얼마나 귀한 순간인지를 각성한다. 그때의 그 덜컹거림, 햇빛, 명치로부터 시작되어 온몸에 퍼지던 울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졸렸던 느낌. 이것 만큼은 적어두고 간직하고 잊지 않고 싶다. 스무살의 그 순간이 '사는 것이 싱거워질 때면' 소금이 되어주지 않을까나.


...

그저. 소금에 절여진 장아찌는 되지 않기를.


https://youtu.be/H2ncCtw2YxA?si=-jzKiNO-fqk6O_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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