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작심삼일에도 기다려주는 어른 되기 쉽지 않다
이번주 월요일부터 시작했다.
아이는 평일과 주말을 구분해서 핸드폰을 쓰기로 했다. 평일에는 집에 오자마자 핸드폰 놓고 할 일부터 하기. 할 일 다 한 후 30~40분 핸드폰 타임, 다만 토요일과 일요일은 완전 자유.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수요일인 지금 벌써 흔들리고 있다.
가능한 플랜인가. 아이는 성장할 수 있는가. 나는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가.
월요일은 그럭저럭 잘 넘어갔다. 마침 내가 좀 일찍 퇴근해서 오후 4시 30분쯤 귀가했다. 큰 아이의 귀가 시간은 4시 15분쯤. 아이는 핸드폰을 거실 거치대에 놓고 다른 할 일을 했다. 분위기 나쁘지 않았다. 할 일을 다 했다고 주장한 9시 이후 1시간 넘게 핸드폰을 붙잡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훨씬 나아진 모습이었다.
중요한 것은 하교 후 인터넷과 떨어져 자신의 할 일을 해보는 경험이니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약간의 자기 긍정이 목표니까. 본인도 바꿔보고 싶다 했다. 알긴 아는구나. 반년동안 스스로 하도록 뒀건만 하루 30분 하던 수학이 하루 10분으로 줄고, 한글책 소리 내서 녹음 10~30분 하던 것이 사라졌고, 영어책 듣고 소리 내서 녹음하기 매일 10~30분 하던 것도 이삼일에 5분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 시간은 고스란히 포키, 카톡, 카톡 프로필/펑 만들기, 유튜브로 대치됐지.
문제의 수요일 오늘. 작심삼일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매일 저녁 8시 시점 스크린 타임 확인하기로 했으나. 확인하지 않고 나왔다. 보나 마나. 4시에 집 와서 확인시점인 8시까지 쭉 일 테니. 숙제가 거의 안되어 있으니. 속이 터지고 한숨이 나와서 또 책 들고 집에서 나왔다.
마음이 불편하다. 하루 이틀 하고 말 것도 아닌데. 지난주 평균과 비교해 보면 스크린 타임 무려 60% 이상 줄어들었으니까 얼씨구나 할 법도 한데. 월, 화 넘어와서 수요일 무너지는 모습에 한숨이 나온다.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통해 알게 된 아이들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타투하고 피어싱 뚫고 오는 아이, 금고 속에 핸드폰 넣어도 비밀번호 바꿔서 새벽에 꺼내간다던 아이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그래. 아이는 아직 타투도 하지 않고 피어싱도 먼 일, 밤에는 핸드폰을 두고 잠을 잔다. 눈을 씻고 찾아보면 아직도 칭찬할 일이 있다. 마음을 다 잡고. 긍정적이고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이 된 다음에 집에 들어갈 거다. 글쓰기 만세.
아이가 스위치 켜고 끄듯 태세 전환하는 로봇도 아니고. 아이가 ‘항상’ 인터넷에서 방황하는 건 아니고 ‘오늘’ 그런 것이다. 문제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쾌적한 카페에서 혼자 끄적이니 이런 너그러움에 다다르는구나. 글쓰기 만세.
어제저녁 기분 좋은 시간에 아이에게 물어봤다. 엄마는 왜 네가 누워서 핸드폰 하면 화가 날까? 너는 어때? 엄마가 핸드폰 보고 누워있으면 화가 나? 아무렇지 않아? 아들은 잠시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답하며 웃음을 슬쩍 흘린다.
"그냥 엄마가 좀 더 부지런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
하. 그래 너도 그건 보기 싫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아이나 어른이나 사람들 마음에 고약한 사장님, 치사한 시어머니가 사나 보다. 직원이 일 안 하고 놀고 있으면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은 상사, 며느리가 부엌일 하지 않고 티브이 보며 낄낄거리면 심사가 뒤틀리는 치사한 시어머니 말이다. 물론 내가 다니는 회사의 상사나 우리 시어머니가 그렇단 얘기는 아니다.
그런 심보 고약한 어른이 되기는 싫다. 지적을 안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기다려주고 긍정해 줄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마음이 한 평 정도 넓어지도록 하는데 글쓰기가 특효다. 웃으면서 귀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쓰기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