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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우 Oct 24. 2024

9. 보이지 않는 별처럼 스치듯 아스라이 살겠다

20241024 살롱 드 경성_김인혜

“요즘 시크해졌어요”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부정적인 말들을 뱉어내는 게 일상이 되었음을 순간 인지했다. 왜 화가 났을까. 왜 불만이 가득할까. 이 부정들은 어디서부터 왔는가. ‘살롱 드 경성’을 읽은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모두 입을 모아 좋은 감상평을 남겼다. 하지만 나만 혀끝까지 차오른 욕을 차마 발설할 수 없었다.

“아, 씨.... 아, 씨....”

말끝에 차마 ‘발’을 붙일 수 없었다. 욕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욕이 입 밖으로 보임을 거부했다. 머릿속은 씨앗에 발이 달린 글자들만 가득했다.


           

예쁜 편집보다 글에 마음이 더 쓰였다     


책은 글과 그림, 그림을 그린 화가의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예쁜 그림과 사진들이 마음이 움직였다. 하지만 글을 이기진 못했다. 나는 그들의 관계에 몰입했다. 작가의 희귀한 일들에 빠졌다 나오기가 몇 번이었다. 이 글을 쓴 자는 누구길래 이런 비화를 많이 아는가. 미술계의 마당발이 아니면 도저히 쓸 수 없고 알 수도 없었다. 이런 뒷이야기를 알고 있는 작가도 분명 뭔가 있음(김인혜_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및 학예연구관으로 20년간 재직)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공부에도 영감이 필요하다     


“문제를 보고 풀 아이디어를 생각해야 해.”

사고력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는 딸에게 수학을 오래 전공한 내 친구가 말했다.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문제를 푸는데도 공부에도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수학과 글과 미술도 영감의 학문이었다. 그래서 화가와 시인이 통할 수 있음을 길어진 내 손톱만큼 이해할 수 있었다.(이해하기를 버렸다가 손톱만큼이라도 이해한다는 건 작아 보이지만 나에겐 커다란 이해의 폭이었다) 이 책에서도 화가와 시인의 우정을 1장에서 다뤘다. 이상과 구본웅, 백석과 정현웅, 정지용과 길진섭 등.           



그들만이 사는 세상   

  

그들만이 사는 세상이었다. 그들의 세상(1900년대)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생활의 방식이 그뿐이었으리라. 근현대사도 잘 모르는 판에 근대미술사라니. 나에게는 관심 밖이자 무지의 영역이었다. 이 시기 작가들의 끝은 탈북과 죽음이었으므로 북한으로 넘어간 작가들에 대해서 남한은 함구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였고 연대했으며 자손을 남겼고 정신을 이어갔다.           



불확실성+용기+도전=인생     


김병기(1916~2022)는 잭슨 폴록의 말을 인용하기를 좋아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기 전에 나는 내가 무슨 그림을 그릴지 알지 못한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 않나. 다만 그런 불확실성을 안고서도, 하루하루 용기를 내어 도전할 뿐! 그것이 인생이니까. 315p


아버지 김찬영(1893~1960)은 평양 최고 갑부 아들로 희대의 한량이었다. 김찬영은 중학생 때 도쿄에서 유학했으며 1912년에 도쿄 미술학교에 입학해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런 이의 아들 역시 도쿄에서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예술가 집단에 합류했다. 자유를 외치던 김찬영은 아들을 돌볼 일 없었고 김병기는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판단을 평생 유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훗날 김병기는 미국에서 반세기를 보내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감성과 이성, 구상과 추상, 아름다움과 추함 등등, 이런 종류의 단순한 이분법적 구분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 그것도 적극적으로 속하지 않기를 추구했다고 했다. 이것이 그의 삶의 방식이었다. 313p


잘하는 사람(김병기)으로서 속하기를 거부하는 것과 못하는 사람(나)이 그곳에 속하지 못함은 원천적으로 달랐다. 하지만 그게 못내 같기를 기대했다. 어쩌면 나에게도 천부적인 능력이 있음을 노력하지 않고 로또처럼 기대만 하고 있었다.          



생각과 행동의 일치     


“시대가 아무리 험난해도 부러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당당하고 행복하게 삶을 영위했던 이들이 있다. 이 부부(도상봉, 나상윤)가 그랬다. 한국 근대화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부분이 비극적인데, 이 부부처럼 소소하고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가 하나쯤 있는 것도 기쁘지 아니한가. 사실 ‘평범한 행복을 유지하는 삶’이야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행복이란 진정한 용기와 마음의 자유를 지닐 때 비로소 쟁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116p”

진정한 용기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마음과 행동이 일치다. 마음의 자유는 진정한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는 동기였다. 현대인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좇아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나 역시 행복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나 자신은 정작 행복하지 않으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척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빛나는 별 말고 빛나지 않는 별을 생각해     


하늘의 별을 떠올렸다. 머나먼 우주 밤하늘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과거 별빛이다. 그렇다면 지구까지 닿지 않는 빛을 지닌 무수히 많은 별들과 별이라고 불리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지구인이 기록하지 않은 그저 그렇게 아스라이 사라진 별이 아닌 것들을.      

결국 부정은 부러움이었다.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갔던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조선소에 끌려갔다가 몰래 부산으로 탈출했던 가지지 못한 자였다. 먹고살기 힘든 시대에 금수저를 물고 나와 사랑 때문에 부모도 버리고 그림 때문에 가족도 버리는 이런 이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마음이 동했던 것도 될 수 없었음에 대한 동경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들의 자녀가 손주가 조카가 성공하고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부러움. 내가 그들이 될 수 없었고, 내가 그들의 무리에 낄 수 없음에 한탄했다. 지금도 그런 이들의 모임이 있겠지만 나는 찾지 못하고 있고 속할 수 없음에 대한 부정. 그런 유명 인사가 되고 싶다가도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삶이 되고 싶기도 했다.


조용하게 풍족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이라 불리지 못하는 이름없는 것들처럼

스치듯 아스라이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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