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8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_데이비드 무어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목구멍 옆으로 다른 것이 부어서 목을 누르는 느낌이 무서웠다. 살아오면서 아파본 적이 없는 이름 모를 부위의 통증은 두려움을 일으켰다. 나에게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으니까. 나의 몸은 이상이 없어야 했고 건강해야만 했다. 몸은 쉴 틈 없는 (내가 만든) 일정으로 피로에 절여져 있었다. 감기로 생각해 이비인후과로 갔으나 의사는 목구멍은 내과로 가서 초음파를 보라고 권했다. 내과에서 약을 지었다. 그 약에는 ‘부신피질 호르몬제’가 들어있었다.
부신피질 호르몬이란
부신(신장의 뒤쪽에 있는 내분비 기관)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이는 글루코스 및 수분의 대사, 신경 및 근육의 기능 조절, 위산 분비,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 등의 작용한다. 부신피질 호르몬제의 단기적인 효과는 인정되고 있으나 유지 요법으로는 치료 효과가 없고 용량 및 투여 기간에 비례하여 부작용이 나타나므로 그 가치가 높게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지식백과terms.naver.com/entry.naver?docId=2836360&cid=56763&categoryId=56763)
나의 짜증은 이 호르몬제의 부작용일 거로 추측했다. 내과에 어르신들이 많이 앉아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약으로 몸이 괜찮다고 착각하게, 혹은 조금은 나아지게 만들 수 있어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약에 의지한다면 오래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들었다. TV 예능에서 김신영이 그랬다. “우리 할머니는 입만 열면 ‘내가 죽어야지’ 하면서 약은 한 움큼 드신다”라고. 몸이 불편해서 죽고 싶다고 느꼈다가도 살고 싶은 욕망으로 약을 먹어 생명을 연장한다. 물론 늙으면 나도 그렇겠지만 말이다.
현대의학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발전을 이뤄왔다. 하지만 우리가 먹고 있는 약들의 기능이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알아가고 있으므로 아무리 확실하게 증명된 약이라 할지라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따라서 책에서 나오는 모든 연구 결과가 사실이라 할 지라도 그것이 진실(불변하는 확실한 사실)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부신피질호르몬 안에는 코르티솔이라는 물질이 함께 있다. 이는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신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코르티솔은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으로 포도당의 대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글루코코르티코이드라고 한다. 문제는 스트레스를 지나치게 받으면 코르티솔의 혈중농도가 높아져 식욕이 증가하며 지방의 축적을 가져온다. 혈압이 오르고 고혈압 위험이 증가하며 근조직의 손상도 야기될 수 있다. 불안과 초조 상태가 이어질 수 있고 체중의 증가와 함께 만성피로, 만성두통, 불면증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면역 기능이 약화되어 감기와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에 쉽게 노출될 우려도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한 달째 먹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지나치게 받지도 않았는데 불안과 초조 상태였고 이는 아이들에게 짜증으로 이어졌다. 내 몸의 이상 반응에 (물론 애들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평소에도 적진 않았지만) 원인이 내과에서 지어와 먹는 그 약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먹지 않았던 약의 효과였다. 약을 내 멋대로 끊었다(의사와의 상의로 약 중단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는 짜증을 조금 절제할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옴을 느꼈다. 내가 먹는 약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책을 보면서 심각성을 깨우칠 수 있었다.
우리가 아는 유전학은 멘델의 유전과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온 학설이 현재 사실화되고 있어서 후성유전학이라 칭하는 학문은 생소했다. 유전자는 정해져 있다는 설에 상반되는 신기한 학문이 일상생활에서도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최근 SNS를 들여다보면 성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빠지지 않는 문구가 있다.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다.”
이 문구 역시 이 책의 한 챕터를 구성할 만큼의 중요한 문장이다. 먹는 게 미래의 나를 결정한다고 나오는데 사실 부정했었다. 내 핑계를 대자면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에너지 음료들과 최근에 나온 단백질 음료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코카콜라는 운동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최애의 음료로 손꼽게 되었다. 어릴 때는 안 먹던 과자들과 음료들. 엄마가 나에게 왜 못 먹게 했는지를 조금은 이해했다. 나이 들어 먹기 시작한 것들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 몸 하나는 뭐를 먹든 괜찮은데 아이들에게로 이어지는 음식 습관이 눈에 거슬렸다. 냉동식품을 조리해 주는 아이들의 반찬에 엄마의 죄책감이 담겼다. 사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자극적인 가공식품이 아니면 나물 반찬은 해줘도 먹지 않는다. 요리를 정성껏 해 줘도 소용없다. 엄마의 핑계는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몸에 좋지 않은 식품들을 준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책에는 후성유전학의 증거로 1997년 미니 연구팀의 어미 쥐들이 갓 태어난 새끼 쥐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예로 들었다.새끼를 핥고(Licking) 털 다듬기(Grooming)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일부 어미들의 새끼들은 핥고 털 다듬기(이후 Licking Grooming : LG)를 덜한 어미들의 새끼들보다 스트레스를 잘 견딘다고 설명했다. 혹시 유전적 영향일까 싶어 LG가 높은 어미와 LG가 낮은 어미들이 낳은 새끼를 생후 12시간 안에 바꾸었지만, 후천적인 어미의 LG에 따라서 새끼는 변화했다. 이 연구는 우리가 유전자 이외의 방식으로도 부모의 특징 일부를 ‘물려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156p
LG가 낮은 어미가 낳은 새끼를 LG가 높은 어미에게 입양되어도 그 새끼는 LG가 높은 성체로 자라난다. 그 때문에, 스트레스에 강한 쥐로 성장한다(책에서는 이 과정이 더욱 자세하게 전문적으로 다뤄진다). 이 스트레스가 바로 코르티솔이 연관되어 있고 부신피질호르몬까지 다시 이어진다.
“당신이 생물학의 올가미에 걸려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분투하라. 아이들을 주의 깊게 살피고 돌보아라. 환경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구축하여 지속적인 건강과 발달을 증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가라. 중요한 건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415p”
이 문구가 책의 핵심이다. 문구를 보자마자 떠오르는 건 사주에 맹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슷했다. 내 사주팔자(=DNA)가 이렇다 한들 우리는 그 안에서 안주하거나 적응하면 안 된다. 내 삶이 주어진 것에 대해 만족하지 말고 분투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DNA 역시 내 부족한 유전자 조합에서 어느 부분을 경험하고 어떤 음식을 먹으면 좋은 유전자가 켜지는지 알게 된다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물론 그 유전자 분석을 하기에는 아직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명리학에서 말하는 인간군상의 통계 안에서 내가 빠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대처방안을 아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나는 결코 그만두지 않는다.
나는 용감하다. 나는 리더이다.
나는 이 순간을 잡는다. 지금을 선택한다.
나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_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중 체임벌린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