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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멕켄지 Dec 03. 2022

내가 언제 이토록 내 아이를 간절하게 꽉 껴안아 봤을까

내가 언제 이토록 내 아이를 간절하게 꽉 껴안아 봤을까?

엄마가 되어, 아빠가 되어, 그렇게 부모가 되어 아이를 보듬고 안아주는 순간 수도 없이 많았지.

그런데 언제 이토록 내가 아이를 간절하게 꽉 껴안아 봤던가?

후회된다. 왜 그 전에는 이렇게 하지 않았는지...




내 인생에 늘 넘치는 에너지로 버겁다고 느껴지던 네 살 아들에게 안전사고가 일어났다. 하원 후에 아이가 몸 전체를 넣을 수 있는 커다란 튜브에서 퐁퐁 뛰어다니며 놀다가 앞으로 넘어졌는데 침대 가장자리에 앞으로 찍으면서 입술이 찢어졌다.


둘째 옷 갈아입히고 있는 와중에 이 쿵하는 소리는 내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들려오는 아이의 비명소리. 평상시 넘어지고 쿵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는 아들에게 이번만큼은 "조심히 놀았어야지~!" 훈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입술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이미 입안 가득 치아에까지 번져서 난리도 아니었다. 치아가 빠질 정도가 아닐까 할 정도의 소리였으니까 말이다. 소리가 나자마자 아이에게 달려가 끌어안고 지혈하기 시작했다. 입술 가장자리 끝에는 살점이 약간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이토록 아이를 간절하게 꽉 껴안아 봤던 적이 있을까? 안아달라고 늘 버릇처럼 다가오는 아이에게 엄마의 과업 완수하는 것처럼 형식적으로 대꾸하면서 안았던 나.


방금 전 하원한 어린이집에 다시 두 돌 동생을 맡기고 아픈 아이를 차에 태워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다. 역시나 봉합 수술해야 할 상처. 그런데 이게 무슨 일.  성형외과 의사들이 전부 지금 없다고 다른 병원을 소개해준다.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 1도 나지 않는다. 그냥 의사 없어서 다시 다른 병원으로 이 퇴근시간 러시 때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이 화가 나고 아픈 아이를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힘들게 해야 한다는 게 속상했다.


혼비백산해서 다른 형외과로 이동하는데 하필 갑자기 시작한 영하 날씨의 혹한 날. 아이의 아픔도 쓰리고 아이와 나의 마음도 얼얼할 정도로 아렸다.


당연히 마취주사만으로 가만히 있을 아이가 아니었기에 결국 수면마취까지 해서 봉합을 했다. 그리고 혹여나 아이가 깨서 버둥댈까 봐 팔다리를 수술대에 끈으로 묶었다. 스르륵 눈이 감겼을 때 나는 수술실을 나와서 기다렸다.


어른이면 그냥 간단히 마취주사 맞고 꿰맬 수술인데 아이가 어려서 이렇게 요란스럽게(?) 해야 했다. 머릿속으로 이런 필터를 끼워 아직 가라앉지 않은 내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잘 안됐다.


누구나 그렇듯 몹쓸 자책의 육아가 다시 시작됐다.

'최근에 내가 아이랑 친밀감 있게 잘 못 놀아줘서 정서적 허기로 이런 사고가 일어난 것 같다.'


봉합이 끝난 후 수면마취로 아직 정신이 몽롱한 아이를 들쳐 메고 약봉투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늘 그렇듯 미련한 인간은 알면서도 뻔한 실수를 한다. 건강하고 아무 일 없을 때 잘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내 아이에게 따뜻한 미소 보내기
짜증 내도 있는 힘껏 따뜻하게 안아주기
화내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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