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7월 서유럽서 느낀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의 수집기(다섯번 째)
자, 여기까지 운전한 거리를 정산해 봐야지.
Frankfurut(독일)에서 Hondrich(스위스)까지 450km, Hondrich에서 Milan(이탈리아)까지 270km, Milan에서 Rome(이탈리아)까지 620km, 전체 이동거리 1,340km. 현재까지 사고 없이 3개국을 잘 다니고 있음에 안도를 하게 된다. 우리는 국가별 이동만 렌트카를 이용하고 특정 도시에 도착하면 주차장에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마침 우리가 로마를 방문한 때는 무시무시한 땡볕더위가 이 곳 이탈리아를 강타하고 있는 그 시기였다. 2023년 7월 18일, 어제 이탈리아 로마 기상청에 의하면 로마에서 최고기온이 41.8도까지 올라 최고기록을 경신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로마에서의 날들은 오늘 그리고 내일 밖에 없다. 일정상, 모레 아침이면 저 멀리 니스를 향해 고속도로 어딘가를 달리고 있을 테니...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Villa Borghese! 이 곳은 로마에서 가장 큰 공원이라고 한다. 로마에서의 첫 지하철, 첫 버스를 갈아타며 우리 뚜벅이 가족은 작열하는 로마의 태양을 온 몸으로 느끼며 그 곳을 향해 열심히 호기롭게 나아갔다.
Villa Borgese의 입구는 생각보다 초라했다, 하지만 입구를 지나 내부로 들어선다면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에게 정겨움을 느끼게 해주는 푸른 나무들과 더 푸르른 잔디들은 곧 화려함을 선사한다. 정원 내부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뜬금없이 보이는 괴테의 조각상! 이건 뭐지? 괴테는 전 유럽적인 정신의 아이콘 아닐까? 나름 생각해본다.
잠시 쉬러온 까페 유리창엔 난데없는 San Francisco의 그림들. 이런 여러 문화의 뒤섞임이 좋다. 세계는 이렇게 맞닿아 있고 우연하게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이런 각각의 광경들이 주는 의외성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San Francisco의 그 가파른 언덕을 힘차게 왕복해주는 트롤리, 그리고 가파른 언덕을 구불구불하게 찻길로 갈라놓은 롬바르도 언덕, 게다가 빠질 수 없는 금문교까지.. 아마 여기 까페 사장님이 그 곳에 다녀오면서 사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며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이태리어로 알 수 없는 답변을 하길래 뭐 그러려니 하고 이 장소의 추억은 내 상상력에 맡겨두기로 했다.
다음은 Pincho Point다. 여기서 로마 시내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잠시 쉬면서 로마 시내를 내려다보는 이 기분은 황제가 수 많은 제국의 인민들을 발치에 두고 연설을 하기 위해 저 아래를 굽어보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내려오는 길에 두툼하게 생긴 사람의 조각을 보며 참 조각 같은 얼굴이다 라는 표현의 진부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더 정감이 갈 때도 있는데.. 바로 여기 이 지점에서다.
우리의 일상은 감정의 감옥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일상의 억압 속에 우린 다양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유교와 기독교 청교도 문화가 멋들어지게 한국식으로 결합되어 감정의 감옥을 만들어내고 있는 엄숙주의국가 아닌가.. 난 그러한 문화에 너무나도 순응된 나머지 그 자체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을 억압시키며 살아오고 있지는 않은지 깊게 자문해본다.
우린 어느새 스페인 광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왜 로마에 스페인 광장? 나중에 보니 17세기 스페인 대사가 이곳에 본부를 두면서부터 그런 명칭이 생겼다고 하더라는.. 이글거리는 태양, 다양한 인종의 우글거림, 화려한 옷차림의 수 많은 사람들이 40도가 넘는 로마의 한가운데서 그들의 자유와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여행은 사람구경이기도 하다. 이놈의 무지막지한 더위에도 왜 그리들 흥겨워보이던지.. 찰리 채플린이 그랬다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던...
광장 다른 쪽을 보니 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은 당연히 “로마의 휴일” 오드리 햅번을 떠올리게 만든다. 더불어 그레고리 팩의 젠틀하고 엉뚱한 장면들. 여기서 난 엉뚱하게도 오드리 햅번의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그리고 그레고리 팩의 “앵무새 죽이기”가 너무도 좋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두 영화는 내게 “애수” 와 “공감”이라는 감정의 향연을 맛보게 해주었다.
여기서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는 길들은 로마의 흥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나는 로마의 한 가운데서 작렬하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이 거리와 많은 사람들 사이를 어기적 거리며 다니고 있다는 이 사실에 뭉클해짐을 느꼈다. 이 감정은 뭐지? 지독한 더위에 몸은 달궈지고 얼굴은 벌겋게 익어갈지도 모르지만 내 인생의 이 순간만큼은 코스모폴리탄으로서 내 존재를 다시 한 번 각인하는 잊지 못할 순간이 된 것이다.
테베레강은 유유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 맑지 않은 강물의 색깔은 103세 노인의 모습과도 같은 그윽한 깊이를 품고 있음이 느껴진다. 장구한 역사의 순간들을 이 강은 견디어 내오고 있으며 그저 말없이 흘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름 모를 다리를 건너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림, 엽서, 책들을 파는 강변 가판대들의 모습은 정겹다.